때는 1873년. 안나 스패포드(Anna Spafford)라는 한 어머니가 네 딸과 함께 프랑스의 호화 여객선 빌르 드 아브르(Ville de Havre)란 배를 타고 항해하다가 그만 그 배가 충돌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배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곧이어 침몰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거의 다 물에 빠져 죽었고 그의 네 딸들도 다 물에 빠져 죽었는데, 이 스패포드의 아내 안나만 지나가던 배에 극적으로 구조되어 살아나게 되었다.
아내로부터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전보를 받은 남편 스패포드(H. G. Spafford)는 아내를 데리러 배에 승선하게 되었다. 그 배는 공교롭게도 조금 전에 사고가 났던 그 사고 현장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때 선장이 스패포드를 불렀다. “바로 이 지점이 조금 전 당신의 아내와 자녀들이 탔던 배가 침몰했던 지점입니다.”
다시 그 현장을 바라보는 스패포드의 마음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까? 졸지에 사랑하는 자식을 넷이나 잃어버렸으니 그 심정 오죽 힘들었겠는가?
자식들을 잃은 그곳을 바라보던 스패포드는 이내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니다!! 이게 아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내 생명도!! 내 자식들의 생명도!!...” 그는 “주신 자도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는 찬송 받으실 분이십니다!!”라고 찬양했던 욥처럼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순간 속에서부터 강력한 믿음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음에서부터 엄청난 찬양이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쓴 시가 바로 찬송가 470장이다.
1.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2.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3.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눈보다 더 정하겠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4.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려날 때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겠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내가 참 좋아했고, 즐겨 불렀고, 결혼식 특송으로도 자주 불러주었던 18번 찬양이다. 자식들이 문제없이 잘 자라고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출세 성공하는 것도 축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패포드의 경우처럼 뜻하지 않는 일로 예기치 않게 자식들이 세상을 떠나도 불평과 원망을 하지 않고 감사해야 한다. 욥의 열 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지금 우리보다 더 좋은 곳인 저 천국 아버지 집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비성경적이고 비신앙적인 용어들이 꽤 있다. 신앙생활 잘하던 이가 우리 생각에 비극적인 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 동정의 마음을 가지고 그런 마음으로 말들을 할 때가 많다. “쯧쯧 너무 일찍 갔어요.” “아직은 더 살 나이인데, 너무 가슴 아파요.”라거나, 심지어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저렇게 비참한 사고로 생을 마감했을까요?”라고 말하는 이들까지 있음을 본다. 당연히 이 땅에서의 이별, 그것도 너무 이른 이별은 극한 슬픔을 가져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을 소망하는 이들이 맞다면 그런 식으로 사자(死者)나 유족들을 동정하거나 판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짧게 살다 갔든 비극적인 사고로 갔든, 그가 믿음의 사람이 맞다면 그는 이 세상보다 더 좋은 천국에 우리보다 더 빨리 입성한 사람으로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대상이다. 천국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까닭에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그래도 영원 천국을 소망하고 사는 이라면 그런 식의 발상과 사고는 이제 버려야 한다.
‘다미선교회’와 같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잘못 뿌려놓은 것 때문에 지금은 ‘종말’이나 ‘재림’에 관한 설교를 찾아보기 힘들다. 또 ‘죽어서 갈 곳인’(not yet) 요단강 저편의 ‘천당’도 중요하지만 ‘이미 임한’(already) ‘하나님 나라’도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하다 보니 이젠 죽음 이후에 가야 할 하나님 나라인 ‘천국’에 대한 마음이 소홀해진 게 사실이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외쳤던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다시 소리치며 전도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과거 어느 선조들 시대보다 더 잘 먹고 더 편안하고 더 오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영원 천국보다는 이 땅에서의 삶에 더 큰 관심과 미련을 갖고 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치셨던 주님의 소리를 더는 듣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 버렸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종말과 재림이 언제 임하게 될지, 그 이전에 경험해야 할 개인의 종말이 언제 주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LA의 내가 잠시 살았던 곳 근처에서 크게 목회했던 척 스미스(Chuck Smith) 목사에게는 남다른 장점과 특징이 하나 있었다. 그와 함께 사역했던 부교역자들이 교회를 개척해서 나가면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지역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척 스미스 목사는 설교 시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는 종말 의식을 늘 심어준다는 것이다. 그걸 배운 목사들이 똑같이 강조해서 전하니 부흥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렇다.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종말과 우주적으로 다가오는 종말과 재림을 강조하면 영적으로 게으를 수 없고 잠들 수도 없다. 오늘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내 인생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시간과 삶은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엡 5:16)고 말씀한다. ‘오늘이란 시간을 잘 선용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하루도 허투루 낭비하지 말고 지혜롭게 잘 선용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보람 있고 의미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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