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길 교수
민성길 명예교수

1973년 미국에서 동성애가 정상화된 것은 학술적 근거에 의해서라기보다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의해서였다. 1969년 6월 28일 뉴욕의 한 게이바에서 경찰이 동성애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으로 인해 동성애자들의 폭동(일명 “Stonewall riots“)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게이인권운동 단체들이 미국정신의학회(APA)를 향해 동성애를 정신장애 분류에서 제외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하였다.

미국 Association of LGBTQ Psychiatrists의 자료에 따르면, 70년대 동성애자인 정신과의사들은 대체로 “내면화된 호모포비아”를 가지고 있어, 동성애가 병이라는 이론에 아마도 암묵적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게이의 새로운 젊은 세대는 달랐다. 그들은 동성애를 정신장애로 취급하는 것은, 동성애를 윤리나 종교 차원에서 벗어나게 한 점에서 바람직하나, 대신 의학의 이름으로 “동성애자”라는 별도의 인간군을 범주화하고, 병적이라는 말로 여전히 차별하고, 그래서 사회적 낙인을 영구화한다고 생각하였다. (현대의학은 “환자”의 인권을 존중한다)

그리하여 게이 운동가들은 APA의 1970년 샌프란시스코 학술대회부터 매년 학술대회장에서 1973년에 새로 개정할 예정이던 DSM-III에서 동성애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맹렬히 투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소위 “guerrilla theater”(게릴라식 연출) 방식의 시위를 펼쳤는데, 이는 체 게바라의 혁명정신에 기초하여, 월남전 반대, 권위주의 반대, 자본주의 반대 등을 목표로 하던 급진적 좌파운동의 시위방식이었다. 이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집단퍼포먼스로 나타났다. 즉 시위에 축제 같은 소란스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터부시되는 주제를 중심으로, 조롱, 풍자, 나체 노출, 신성모독 행동, 항의와 격돌 등을 연출하였다.

게이운동가들은 동성애에 대한 정신의학적 관점은 인종주의적이고 억압적이라 비난하였다. 특히 동성애에 대한 혐오치료(aversion therapy)를 비인도적이며 비과학적이라고 집중공격하였다. (그러나 혐오치료는 지금도 사용되는 치료방식이다) 그들은 엄숙한 학회장에서 “게릴라식” 시위를 벌였다. 세미나나 심포지움에 기습적으로 난입하여, 소리지르고 단상을 점거하고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외치는 등 소란을 피웠다. 그 와중에 동성애 전문가로 유명한 I. Bieber교수가 동성애자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전시장에 난입하여 혐오치료 관련 부스를 뒤엎었다. 1971년 APA 학술대회 때 그들의 한 지도자는 “정신의학은 우리를 몰살하려는 잔인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당신들은 이 말을 당신들에 대한 선전 포고로 받아들여라.”라고 외쳤다 한다. 그들은 이런 폭력적 행동들을 “일련의 극적 만남”(series of dramatic encounters) 또는 “shrink(정신과의사)들에게 잽을 날렸다”고 표현하였다. 신문들은 즉각 이런 상황을 선정적으로 보도하였다. 이런 난동은 1973년까지 매년 이어졌다.

게이 인권운동에 대응하여 게이정신과의사들 중 젊은 활동가들(The Young Turks)도 내부에서 활동하였다. 그들은 당시 학회를 주도하던 나이든 보수주의자들에 반대하는, 사회적 이슈(인권)에 감수성이 있는 새로운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소수지만 느슨한 지하집단을 형성하여 은밀하게 조직적인 활동을 하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농담조로 the GAYPA라 불렀다. 그들은 역시 게이였던 Dr. John P. Spiegel의 집에 모여 활동 방향을 논의하였다. 이들에 대해서는 APA의 바깥에 있는 게이활동가들은 잘 몰랐다. 특기할 일은 동성애를 옹호자들과 반대자들이 더불어 개최한 세미나에 정신과의사인 Dr. H Anonymous (본명 Dr. John E. Fryer)가 기괴한 가면과 복장을 하고 등장하여, 자신이 대학 정신과에서 차별받은 고통을 호소하였다. 당시 지도적 정신과의사였던 Dr. Judd Marmor 같은 인물들이 그들의 활동을 지지하였다. 혁명은 내부 권력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APA의 내부에서 DSM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전략으로 임원에 출마하기도 하였다. 학회 바깥에서는 게이 운동가들이 독자적인 세미나를 열기도 하였다.

당시 미국 사회의 열렬한 인권운동과 반권위주의적 문화의 분위기와 동성애자들의 폭력적 압력과 APA내 동성애자 회원들의 집요한 요청에 대해, APA이사회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정신장애 진단분류의 대표적 학자였던 Dr. Robert Spitzer와 기타 the APA Task Force on Nomenclature and Statistics 멤버들은 게이운동의 대표들을 만나 타협하기로 동의하였다. 또한 정신건강전문가들과 섹솔로지 전문가들의 특수위원회를 만들어 “과학적 증거들”에 대해 학술적으로 검토하였다. 그러나 위원회의 구성원에는 동성애 옹호자들이 많았고 특히 킨제이 연구소 연구원들이 “전문가”로서 참여하고 있었다. 여기서 거론된 “학술적 근거”는 1948년의 소위 킨제이보고서와 1957년 발표된 E. Hooker의 논문 등 두 편이었다, (앞서 밝혔듯이 이 논문들은 이미 과학적 신뢰성이 없다는 수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또한 위원들은, 동성애가 병이라는 주장들은, 동성애를 병으로 보고 치료받으러 온 사람들에 근거한 것으로, 전체 동성애자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병원에 오지 않은 정신장애자도 많다.)

1973년, 위원회의 검토의견을 받아든 APA이사회는 논란 끝에, 장차 개정될 DSM-III에서 동성애를 빼기로 하였다. 한편 Dr. Spitzer가 양쪽을 오가며 중재하여, 대신 “자아이질적 성지남”(ego-dystonic sexual Orientation)을 DSM-III에 남기기로 타협하였다. 이는 자신에게서 느껴지는 동성애적 성향이 싫은 경우와 자신이 혹시나 동성애자가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는 경우 등을 말한다.

그러나 회원 일부와 미국정신분석학회가 이사회 결정을 반대하며 전체 회원의 투표를 요구하였다. 만여명의 APA 회원 중 1/4이 투표에 참여한 상태에서 58% 대 40%로 이사회결정이 받아들여졌다. (당시, 투표 전 the National Gay Task Force라는 운동단체가 미국정신의학회 이사회의 이름을 도용하여 전 회원에게 이사회 결정에 대한 찬성투표를 독려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소문이 있다.) 1973년 12월 5일 성명에서 APA 이사회는, “증거들과, ... 사회적 규범의 변화와 증대되는 게이인권운동”을 언급하였는데, 게이운동가들을 뒤의 두 가지에 대해서 못마땅해 하였다.

그러나 의구심은 남았다. 당시 Dr. Spitzer는 말하기를 “우리가 동성애를 더 이상 정신장애라고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정상이라거나 이성애 같은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 하였다. 또한 1978년 2월 20일자 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1977년에 재조사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APA 회원 69%가 동성애는 정신장애라 하였다 한다(18%가 병적이 아니라 하였고, 13%가 불확실하다고 하였다). 또한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들보다 불행하며 성숙한 사랑의 관계를 더 잘 맺지 못하며(60%). 사회적 스티그마보다 내적 갈등이 더 문제라고 보았고(70%), 직업에서 신뢰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사실은 더 이상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에서 동성애가 정상화된 것은 학술적 근거에 의해서라기보다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의해서였다. 이리하여 “동성애 정상화”는 과학이 사회적 이슈에 굴복한 초유의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동성애가 더 이상 “병명”은 아니더라도, 그런 행동의 “열매”를 보아 그 행동을 병적이라고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분명히 동성애는 하나님 앞에 죄라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동성애자의 인권은 존중하지만, 동성애 행동은 문제행동으로 본다. 또한 당연히 우리는 “자아이질적 성지남”을 가진 동성애자가 전환을 원하면, 그들을 신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나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금지하는 것은 인권유린이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민성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