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중고등학교 시절인 1970-80년대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으면 꼭 빠지지 않고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기쁜 소식을'입니다. 이 찬송은 우리의 찬송가 중 보혜사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소원하는 찬양입니다.
이 가사의 원문 한 절을 나열합니다. Oh, spread the tidings round, wherever man is found, 오,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이 소식을 널리 전파하라. Wherever human hearts and human woes abound;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아픔이 가득한 곳 어디든 Let every Christian tongue proclaim the joyful sound: 모든 그리스도인의 혀가 즐거운 소리를 선포하게 하라. The Comforter has come! 위로자(보혜사 성령)가 오셨다!
이 찬송은 프란시스 보토메 ( Francis Bottome1823-1894)가 작시한 찬양입니다. 이 찬송시를 가지고 미국의 교회음악 작곡가 윌리엄 컬크페트릭 (William J. Kirkpatrick 1838-1921)이 곡을 붙여 1890년 찬송가집 "Precious Hymns for Times of Refreshing and Revival"에 이 곡의 가사 첫 부분을 딴 "O Spread the Tidings Round" 제목으로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지역 찬송 집에 처음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원제목은 "The comforter has come"입니다.
프란시스 보토메는 영국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1850년 미국의 성공회 감리교(Episcopal Methodist) 목사가 되어 목회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주로 찬송작가로 활동하였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미국의 3차 대각성 부흥 운동의 중간기로 당시에 크고 작은 부흥 집회들이 자주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교회들이 일어나 초대교회처럼 성령 충만을 받아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는 계몽을 펼치며 성도들을 일깨우기 위해 그는 찬송 시 를 쓰게 되었고, 그는 총 68곡의 찬송시를 남겼던 위대한 찬송 작가였습니다.
보토메 목사님의 찬송 시 "이 기쁜 소식을(O Spread The Tidings Round)"은 요한복음 4장 26절, 그리고 사도행전 2장 1-4절의 말씀을 소재로 삼아 가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내용은 예수님의 제자 중 한 명인 유다가 예수님 자신을 제자들에게는 보여주시고 세상에는 보여주시지 않느냐는 질문(요 4:22)에 주님이 주신 답변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 26) 이 말은 보혜사 성령이 세상에 임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바른 신앙을 유지하게 하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그것을 사도행전 2장 마가의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성령 사건을 통해 확실히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서론에 이야기했던 필자의 시간 정점을 다시 1970-80년대로 되돌려 보려 합니다. 당시 부흥회 때 이 찬송을 인도하셨던 목사님들, 그리고 그 당시 성도님들이 찬양했던 모습들을 주마등처럼 필자에게 떠올리게 합니다. 인도하시는 목사님은 강대상을 마치 큰 북 삼아 손을 힘차게 내리치며 연신 외쳐대는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 이에 맞장구를 치며 마치 고성에 가까운 듯 큰 소리로 외쳐대는 "성령이 오셨네 ~~~. 이 뜨거운 열기가 그때는 왠지 시끄럽게만 느껴졌는데 오늘날은 그 함성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정의 순간들이 많이 그리워집니다. 그것이 고귀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존 파이퍼(John Stephen Piper, 1946 - ) 목사님이 쓰신 책 '하나님께 굶주린 삶 (A Hunger for God)' 에서 그는 이야기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갈구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실컷 마시고 배불러서가 아니라 세상의 식탁에서 부스러기를 주워 먹은 지 너무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은 시시한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 위대한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 말이 오늘을 사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 같아 두렵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세상의 풍조에 떠밀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현실과 타협하며 부스러기, 찌꺼기들로 가득 배를 채우다 결국 하나님의 창조 목적의 본질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 맛을 잃고 지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깊은 돌이킴의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Sanctus Franciscus Assisiensi, 1181or1182-1226)는 그의유서에서 "내가 나병환자와 입 맞출 때 전에는 구역질 나던 것이 생명으로 바뀌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순간이 그에게는 "회심"의 순간이었고 "세상을 떠난"순간이었습니다. 이 말에 대해 리처드 로어 (Richard Rohr, 1943 - )는 "그에게 있어그것은 자신의 모자람을 제대로 맛보고 전과 다른 더 깊은 샘에서 물을 긷기 시작한결정적 순간이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고전적 그리스도교의성자가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가 그의 책 '영광의 무게 (The Weightof Glory)' 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두더지는 땅을 파고 수탁은 울어야 한다."라고말하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흔들리는 풍파 속에서 기독교인의 사명과 정체성을 바로알고 지키며, 바른 예배자로 서서 열심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우리의 예배와 일상에서 불리는 찬양 가운데 성령을 사모하는 가난함을 갖고 열심히찬양하므로 깊은 영성의 찬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