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확신
도서 「견고한 확신」

저는 ‘신자의 삶’을 형성하는 토대가 교회임을 확신합니다. 동일한 환경 가운데 살고 있는 듯 보여도, 어떤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가가 그 사람을 형성합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도, 그가 ‘어떤 그리스도인인가?’ 하는 것은 교회를 통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네 교회는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약간 바꾸어 “우리 교회는 무엇을 가르치는 교회인가?”라고 말해도 괜찮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지만 동일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나의 그리스도인 됨’을 만드는 것이 바로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적어도 개신교회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개혁해 나온 이후, 이 교회들은 항상 신앙고백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견고케 하는 일의 절정일 즈음에, 교회 안에 항상 있어 왔던 펠라기우스적 사고를 결정화한 인물이 등장했고(아르미니우스), 교회는 이에 저항하여 신앙고백을 작성했습니다. 도르트 신조가 바로 그것입니다.

윤석준 – 견고한 확신

그리스도인으로 잘 사는 법
도서 「그리스도인으로 잘 사는 법」

우리의 마음은 왜 이렇게 부패하게 된 것일까?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탄의 미혹으로부터 지켜 내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내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는 ‘사탄의 지배’ ‘죄의 법칙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이 이토록 비참해진 이유, 부패한 이유다. 그리고 그것이 귀신 들린 소년이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이 세상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귀신 들린 인간의 ‘부패한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모든 문제 해결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이다(처방). 하나님 말씀의 강력한 선포와 가르침은 하나님이 부흥의 불을 지피시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이것이 부흥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도구로 성령의 감동을 불러일으켜 사람들의 부패한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죽어 있는 영혼 가운데 부흥을 일으키신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말씀 중심의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이태희 – 그리스도인으로 잘 사는 법

지복지관
도서 「지복지관」

인간의 최종적인 목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 이 진리는 자명해 보일 수 있다. 어떻게 우리가 그보다 더 큰 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이 책의 모든 독자가 이런 주장에 즉각 공감하리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무모한 일이 될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영생에 대해 하나님 뵙기(visio Dei)라는 은유를 사용하는 것의 타당성에 도전하고 싶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본다는 전망은 교부 시대와 중세 시대의 성서 독자들에게 핵심적인 것이었을 수 있으나 우리로서는 근대 이전 세계관의 여러 요소를 버려야 했던 충분한 이유가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천상적인 것에서 세상적인 것으로 변화되면서 “하나님을 본다”(seeing God)라는 개념은 종말을 묘사하는 데 타당하지 않은 은유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칼뱅에게 하나님에 대한 대면 직관은 지복직관의 동의어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대면 직관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친밀함에 대한 표현, 즉 어느 정도의 강도를 허용하는 그 무엇으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칼뱅이 “대면하여”와 “공개적으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구원사와 하나님의 교육을 강조한다.

한스 부어스마 – 지복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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