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는 예배의 의미를 다음 몇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그 뜻에 따라 예배는 다양한 의미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얼마나 폭넓은 우리의 자세를 요구하는지 알 수 있다.
첫째 ‘샤하(Shachah)’이다.
성경은 예배의 의미를 뜻하는 몇 가지 단어를 보여준다. 구약 성경에서 예배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샤하”이며 ‘절하다’, ‘엎드리다’. ‘내려놓다’, ‘복종하다’의 의미로 모두 172회 사용되었다. 가장 먼저 언급된 곳은 창세기 18:2이며 아브라함이 세 명의 방문객을 경배했던 내용이 나온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주님이셨다.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창 18:2)
그리고 사무엘하 12:20의 ‘경배’란 단어가 ‘샤하’다.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삼하 12:20)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합당한 자세라고 생각하여 강조했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왕하 5:18)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느니라”(느 8:6)
일반적으로 엎드리는 것이 소위 패배를 인정하는 굴복의 모습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고대 사회에서 무릎을 꿇는 행위는 복종만이 아니라 도우심을 구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즉, 상대를 높임과 동시에 그 높으신 분에게 긍휼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출 4:31)
“그 잔을 너를 괴롭게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찍이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에게 네가 네 허리를 땅과 같게, 길거리와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사 51:23)
한편 킹제임스(KJV) 성경은 “샤하”를 “엎드리다, 절하다, 경의를 표하다, 경모하다, 예배하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 가운데 “예배하다”라는 표현이 가장 빈번히 사용되었다. 이들 표현은 대부분 몸동작을 요구하는 행동어휘다. 즉 이들 용어는 노래나 태도를 가리키지 않고, 몸동작을 통한 표현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다양한 모습으로 예배에 참여하게 되는데, 앞에 나와서 예배를 이끌어나가는 데에 참여할 수도 있고, 다양한 봉사를 통해 예배를 섬길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통해 나의 헌신이 드러나고 인정받기를 원한다거나, 나의 모습이 더 멋지게 보이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면 그것은 예배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드러나지 못함’으로 인해 시험에 들거나 서운함을 느끼는 경우, 갈등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배를 드릴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내가 지금 드리는 이 예배가 ‘내가 나타나는 예배’, ‘나를 위해 드리는 예배’로 전락하는 것이다. 예배 가운데 높아져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기억하자. 진정한 경배는 하나님을 높이면서 나도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낮아져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샤하’가 의미하는 그 엎드림의 영성이 오늘날 우리 예배 가운데 살아나야 한다.
‘샤하’가 담고 있는 ‘엎드린다’는 의미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완전히 복종해야 하는 존재임을 가르쳐준다. 그런데 예배의 자리에서 엎드림으로, 즉 낮아짐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행위가 진실한 것이 되려면 그 엎드림이 순종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존귀하신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것은 예배 시간 내의 우리 행위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일상에서 순종의 열매로 이어지려면, 예배드리는 가운데 철저한 결단이 필요하다. 엎드림과 동시에 내 삶을 드리겠다는 결단이 수반되어야 우리는 ‘샤하’의 예배자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샤하’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에 무릎 꿇고, 그 뜻에 순복하겠다는 진실한 선언이 필요함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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