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시작을 하나님께로 마음을 열고 경배하며 찬양으로 영광 돌리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함께 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일상의 삶은 순탄하지 않으며, 어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 불명확한 삶이다. 평온했던 일상의 삶을 깨뜨리는 슬픔과 고통, 어려움은 예배자들에게 일상과 다른 시간이다. 4중 구조의 예배에서 ‘만남’과 ‘말씀’ 이후에 ‘성찬’이 이어진다. 성찬은 빵과 포도주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 생명과 호흡이 있어 예배 드릴 수 있음을 감사하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 의미를 더 강하고 깊게 한다. 포도주와 빵을 함께 나누는 성찬의 시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은혜를 상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붉은색의 포도주를 마시며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을 생각하고, 빵을 뗄 때마다 예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 예배 공동체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게 된다.
일상에서의 성찬은 첫째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시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평상의 삶에서 자칫 잊고 있었던 의미들을 되살리는 시간이다. 사람의 속성은 평안할 때에는 감사하기 쉽지 않다. 모든 것이 나의 생각과 뜻대로 흘러가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는 더욱 어렵다. 또한 우리가 슬픈 일을 당하거나 힘든 일로 어려울 때에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 일상이 평탄치 않을 때 대화하기 원하신다. “나, 너와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온전한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민감한 영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저 무덤덤한 일상으로 휩쓸려갈 수밖에 없다. 일상 가운데 새로운 변화는 더 깊은 하나님과의 교제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미건조한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우리를 서로 다른 모양으로 창조하시고 빚으셨다는 뜻은 우리 모두를 각 달란트대로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사랑하신다는 뜻이다.
둘째, 일상의 성찬은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말씀하시고자 할 때 우리에게 보내시는 신호다. 하나님은 그의 예배자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변함없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본질이자 진리다. 하나님은 본래 좋으신 분이며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시다(요 10:14-15).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잘못되기를 전혀 원치 않으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일상의 삶이 어그러지거나 힘든 길로 들어설 때 가만히 있지 않으신다. 이것을 믿는 것이 참된 믿음이며, 신뢰의 관계는 예배의 기초가 된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든 자들의 기본자세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라 선언한다(히 11:6). 이 믿음 위에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더 나아가 어려움과 핍박, 고통, 슬픔까지도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루 일상에서의 성찬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특별한 일들이다. 우리 삶 속에 평상적이지 않은,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일들이 있다. 갑자기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아프다든지, 사고가 난다든지, 심지어 길을 가다가 넘어지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일보다 보이지 않는 내적인 일들도 많이 있다. 직장 상사와의 갈등이 일어나거나 가족 간의 불화가 있거나 여러 관계 속에서 오는 마음의 고통들은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신호들은 우리가 좀 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바라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새로운 일들이 우리를 예배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축복의 간섭임을 인정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필요하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들이 하나님의 축복과 연결되어 열매로 맺혔음을 증거 한다. 요셉은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거치면서 승리했고 가족을 구하고 민족을 건졌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애굽으로 팔렸을 때의 요셉의 상황은 하나님이 버리신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원대한 큰 그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방의 의인이었던 욥의 고난이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서 어떤 열매를 맺혔는지도 마찬가지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0-22)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들의 미시적인 눈으로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선한 분이심을 믿는 자들에게는 축복의 계획임을 알게 된다.
또한 바울의 고백은 그가 참된 예배자였음을 증거 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이 얼마나 가슴 벅찬 고백인가! 이 같은 바울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고난이 축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서만 가능함을 느낀다.
데이비드 폴리슨(David Powlison)은 자신의 책 『일상의 성화(How Does Sanctification Work?』에서 인생의 고통과 어려움, 고난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 우리 삶에 깊이 개입하신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더 찾게 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필요로 하게 된다. 신앙은 어려운 현실을 통과하면서 실제가 되고 믿음은 더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88)
하나님과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교제하고 믿음의 관계가 된다면 우리에게 당면한 모든 문제들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섭리임을 인정하게 되고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밖에 없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한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축복의 길이다. 주님의 피와 살을 함께하는 ‘성찬’의 삶을 기쁘게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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