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니람 저드슨 선교사님의 이야기이다. 그는 매사추세츠의 한 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16세에 브라운 대학교에 입학해 4년 과정을 3년 만에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그처럼 탁월한 성적을 낼 정도로 그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자기보다 더 똑똑하고 재능 있는 제이콥 에임즈라는 친구를 만나면서 그는 기독교를 맹렬하게 반박하는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고 만다.
아도니람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저버린 채 방황하면서 세월을 헛되이 낭비했고, 졸업 후에는 유랑 극단에 들어가 방랑자처럼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드슨은 마음의 괴로움과 허무함을 견디지 못하고 먼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행 도중 어느 한 시골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그날 밤은 그에게 악몽 같은 밤이었다. 바로 옆방에서 밤새도록 죽어가는 사람의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신음소리는 더욱 커지더니만 마침내 절망 섞인 극심한 비명소리로 바뀌게 되었다. 그 소리에 저드슨은 밤새 한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죽어가는 남자의 끔찍한 신음과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자신도 죽음의 막다른 골목에 빠진다면, 두렵고 무섭고 의지할 곳 없어 저렇게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겠구나. 만일 성경이 옳다면 저 죽어가는 남자가 천국이나 지옥 중 과연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나는 죽음의 문 저편으로 갈 준비가 돼 있는가?’
저드슨은 자신도 모르게 죽음 이후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만일 자기가 그런 유치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그의 천재 친구가 안다면 얼마나 자신을 우습게 여길까를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저드슨이 숙박비를 지불하는 틈을 타서 옆방 사람에 대해서 물었더니, 여인숙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사람 죽었어요. 프로비던스 대학원에 다닌다는 젊은이였어요. 이름이 에임즈였습니다. 제이콥 에임즈”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드슨은 일생일대의 큰 충격을 받았고, 에임즈의 논리에 치명적인 잘못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결국 자기 삶의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바로 여행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와 앤도버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비로소 기쁨과 평강을 얻을 수가 있었으며, 남은 인생을 주님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하게 된다.
저드슨은 미얀마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마음 먹었고, 그의 평생 사역을 통하여 7,000여 명이 넘는 미얀마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리고 그 지역은 백오십만 명이 넘는 크리스천들이 있는 지역으로 변화되었다. 저드슨 한 사람의 변화로 엄청나게 많은 영혼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다.
죽음 앞에서 큰소리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죽했으면 프랑스 절대군주였던 루이 14세 역시 죽음을 두려워해서 자신 앞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밤에 죽음의 천사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침실 창에 두터운 커튼을 치게 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리고 20세기의 유명한 화가 피카소는 죽음 공포증에 걸려, 죽음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이고 만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선생님,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질문하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 세상의 일도 다 모르는데 하물며 어떻게 죽음 다음의 일을 알겠는가?"
그러나 일자무식 촌동네 어부 출신이었던 베드로는 죽음 이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0-11)
이전 문맥을 살펴보면 ‘삶의 열매(행함)를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드러내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알고 사는 사람과 죽음 이후에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고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에 있어서의 차이는 실로 크다.
소망 없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참 소망이 무엇인지, 참 소망의 사람이 어떠한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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