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귀신 들린 인간의 “부패한 마음”을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청결한 마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2) 모든 문제 해결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의 강력한 선포와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부흥의 불을 지피시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을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던 강퍅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2:37-38) 부흥이다.
고넬료 가정에서 베드로가 설교할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성령이 임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행10:44-46)
성령 하나님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사람들의 부패한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죽어 있는 영혼 가운데 부흥을 일으키신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말씀 중심의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우리의 부패한 마음이 고침을 받고 변화를 받아 죽어 있는 우리의 삶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열방이 다시 살아나는 부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 말씀을 듣는 우리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마13:14-15)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15:8)
그래서 예수님은 눅8장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비밀은 두 가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나라가 담겨 있는 씨, 즉 “하나님의 말씀”이고, 두번째는 그 씨가 뿌려지는 “마음”이라고 하는 밭이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눅8:15)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이 우리의 “귀”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떨어지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의 마음 밭이 항상 착하고 좋은 마음 밭이 되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착하고 좋은 마음 밭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마음”이다. “믿는 마음”을 줄여서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내 마음에 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마음으로 “아멘”하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만 우리의 부패한 마음이 변화를 받을 수 있는 이유, 우리의 마음이 변화를 받아 죽어 있던 우리의 삶이 다시 살아나고, 죽어 있던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부흥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한 점 한 획도 빠짐없이 전부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부패한 마음을 고치시고 죽어 있는 나의 삶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다시 살아나게 하실 수 있는 “생명”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요11: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26)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11:27)
유대 회당의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를 보고는 발 아래 엎드린다. 유대 회당의 회당장이 예수 앞에 무릎을 꿇다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도대체 이 회당장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자신의 어린 딸이 죽을 병에 걸리게 된 것이다. 회당장은 예수님에게 간곡하게 부탁한다. “제발 한 번만 자기 집에 오셔서 자기 딸 위에 손을 얹으셔서 죽어가는 내 딸을 살려 주옵소서.”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회당장을 따라 그 집으로 가시는데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어 예수님을 둘러싸고 밀어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인파 중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12년 동안이나 혈루병을 앓고 있었던 여인이었다.
이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는 무리 가운데 끼어 들어가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댔다. 지금 이 여인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왜 그런 행위를 했을까?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마9:21)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막5:29)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셨을 때에는 이미 그 딸은 죽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회당장에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시고는 모든 사람을 다 내보내시고 가족들과 함께 죽어 있는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달리다굼” (막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막5:41)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마음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 때 우리의 부패한 마음이, 우리의 죽어있는 삶이 다시 살아나는 부흥을 경험케 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만 하는 이유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주시는 말씀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2-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일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시다. (성경 우상화가 아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배울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다.)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에는 우리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9-10)
교회 안의 많은 프로그램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교회를 살리는 분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우리들의 부패한 마음을 변화시켜 죽어 있는 인생을 다시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이다. 물론 교회가 현대인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더 시급하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일이다. 그런데 부흥을 위해서 말씀과 반드시 짝을 이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도다.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부흥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 성령 하나님은 말씀과 기도라고 하는 양날개를 가지시고 비둘기 같이 우리 가운데 임재 하신다. (계속)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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