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험하고 소통하는 삶이 참된 예배이며 찬양이라고 생각한 경건주의자들은 당시 많은 교회에 영향을 주었으며, 성령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은사주의 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으로 영국 출신의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후, 복음적 회심을 경험했으며, 유럽에서 모라비안 교도들을 만나 성령 운동을 체험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 올더스게이트(Oldersgate) 거리에 있는 한 모라비안 교도의 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심으로써 일어나는 변화에 대하여 설명할 때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웨슬리는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했으며, 비로소 완전한 구원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요한 웨슬리를 중심으로 한 은사주의적 복음주의(Charismatic Evangelical) 운동은 개인적 복음과 사회적 복음의 입장을 지닌 감리교회로 발전했으며, 당시 국가 교회인 영국 국교회가 성공회로 전환되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교회가 교리로만 안주하는 것이 아닌 복음주의적 생명력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이후 웨슬리의 사역은 감리교의 활동만이 아니라 19세기 성결 운동과 20세기 오순절 운동 및 기독교 사회복지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찬양을 즐겨 부르고 대중 집회 때마다 자주 사용했던 웨슬리는 매우 어렵던 교리와 사상을 쉬우면서도 전인적으로 배우고 경험하는데 찬양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찬양은 집회의 강력한 통로가 되었으며,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은혜가 넘치는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후 개인의 신앙적 고백과 체험, 신앙생활들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으며,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과 교리를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웨슬리의 찬양에 대한 깊은 관심은 예배자들이 찬양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중요한 통로로 인식되었으며 예배에서 찬양이 점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성결교와 오순절 교회의 성령 운동에 찬양의 역할이 더 강조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찬양이 예배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아갈 수 있었다.
하나님을 예배에서 경험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촉발된 ‘경건주의’는 대륙을 넘어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제 2차 대각성 운동(The Second Great Awakening Movement)’은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유럽을 휩쓴 경건주의가 18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가 극적인 영향을 일으킨 대표적 신앙 부흥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인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는 영국의 신학자이자 설교자로 18세기 영국 존 웨슬리와 감리교 운동을 시작했으며, 개혁주의적 감리교 신학을 주장해 그 기틀을 다졌다. ‘제 2차 대각성 운동’은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뉴잉글랜드의 메마른 합리주의와 중부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예배 의식에 집착한 형식주의, 그리고 남부의 목회 감독 소홀 등에 반대하고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계약을 새롭게 하고자 일어났다. 초교파적인 이 운동은 회개의 외적 증거와 내적인 영적 체험을 강조했으며 성경 연구와 전도에 주력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제 2차 대각성 운동’은 유럽에서의 경건주의 운동과 함께 수동적 신앙생활과 교리 중심의 정형화된 형식적 예배로부터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한 실제적인 영성의 삶을 중시하는 운동이었다.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하는 열망은 이후 1906년부터 1931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아주사 거리에서 일어난 ‘아주사 부흥운동(Azusa Rivival)’으로 연결되었다. 이 운동을 시작한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 1870–1922)는 아주사 거리의 모퉁이 창고에서 성령을 사모하는 집회를 갖기 시작했다. 1906년 4월 9일부터 12일까지 금식으로 진행된 집회에서 방언을 사용해 기도하기도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며 밤을 새면서 기도가 계속되었다. 피상적이 아닌 체험적 신앙과 성령의 은사를 갈급해하는 사람들과 영적으로 굶주린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집회는 강력한 영적 운동이 되었다.
아주사 거리 예배는 24시간 내내 진행되었으며 자발적이었다. 그 부흥회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성결교뿐만 아니라 침례교, 메노나이트, 퀘이커, 장로교 교인도 있었다. 이곳에서 성령의 은혜 받은 사람들이 전도와 선교를 위해 흩어졌으며, 선교사로 또는 전도자로 헌신 되었다. 약 50개국이 넘는 나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교사들이 넘쳐났으며, 현대 오순절 운동과 오순절교단(기독교 하나님의 성회)의 시초가 되었다.
한편 영적 침체에 빠져 있던 18세기 영국은 웨슬리와 같은 위대한 인물로 말미암아 새로운 부흥기를 맞게 되었으나 세월이 흐르자 다시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20세기 초에 영국을 부흥시킨 강력한 성령 운동이 1904년 웨일스 지방에서 일어난 ‘웨일스 부흥운동(The Welsh Revival)’이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13살 때부터 탄광 일을 돕던 이반 로버츠(Evan Roberts, 1878-1951)는 1904년 “Lord, bend us(주님 우리를 굴복 시켜주소서)”란 설교를 듣고 성령 체험을 했다. 그는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는 말씀을 통해 성령과 부흥을 강렬히 갈망하게 되었으며, 그 후 5년 만에 웨일스 지방 이곳저곳에서 10만 명이 참석하게 되면서 영국 오순절 운동과 부흥 운동, 그리고 20세기 세계 부흥 운동에 불을 붙이게 되었다. 아주사 부흥 운동과 웨일스 부흥 운동은 형식적인 관념적 예배를 거부한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하는 갈급한 심령들이 성령의 은혜 속에 일어난 성령 운동이자 은사주의 운동이었다.
초대교회 이후 수도원 운동을 거치면서 교회가 가지고 있던 영성은 종교 개혁 이후 경건주의의 영적 운동과 존 웨슬리를 비롯한 여러 부흥 운동에 기초가 되었으며,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하는 예배 영성의 흐름을 지속해 나갈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예배자들이 영성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영적 능력을 소유해 영향력을 나타내는 참된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고 세우는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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