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을 지내고 고난주간이 시작됐다. 예수님의 고난과 관련해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내용에 관한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십자가의 잔을 내게서 옮겨주소서”란 내용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창조주 중의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그런 기도의 내용이 너무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예수님에 관한 신앙으로 인해 목이 잘려 순교하는 이들도 많은데, 예수님은 그들보다 못한 것일까?
이런 질문들이 많이 제기가 되고 있다. 나 역시 어릴 때 그런 궁금증과 의문점을 지니고 홀로 답답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최근 학교 새벽기도회에서 고난주간을 앞두고 감람산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에 관한 내용인 눅 22:39-46절으로 설교한 적이 있다. 십자가를 눈앞에 두신 상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 몇을 데리고 감람산으로 가셔서 고뇌에 찬 기도를 하신 내용이다.
그냥 스쳐 지나가기엔 너무나 안타깝고도 송구할 정도로 고뇌에 가득 찬 예수님의 무거운 모습이다. 예수님의 생애에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워 하신 때는 없었다. 예수님의 생애에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기도를 한 적 역시 그때밖에 없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은 기도를 하시다니! 가당키나 한 것일까?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과연 이것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기도가 맞는 걸까?
‘과연 예수님의 기도가 맞는 걸까?’라는 의심은 물론, 큰 실망마저 안겨다 주신 예수님의 유약해 보이는 기도 내용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의 실망스러워 보이는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실망이 아니라 그저 고맙고 감사해서 절로 눈물이 터져 나오게 된다. 그러면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는 ‘죄의 삯’이란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조차도 두려워 떨 만큼 무시무시한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며칠 간의 짧은 기간이나마 성부 하나님과 처음으로 단절되고, 또 그분으로부터 죄인이 당해야 할 엄청난 십자가 형벌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저 목숨이 아까워서 고뇌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성경에 기록은 없으나 당시 마귀가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얼마나 강하게 예수님을 유혹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 끔찍한 형벌을 피하라는 마귀의 유혹을 어떻게 이기셨을까? 예수님이 감람산에 들어오시자마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마귀의 유혹을 이기기 위한 비결은 ’기도하는 것‘이다. 누구에게 기도하란 말인가? 하나님께 기도하란 말이다. 즉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란 것이다.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라”(눅 22:41)는 뜻이다.
무릎을 꿇고 어느 정도로 심각하고 깊게 기도하셨을까?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 얼마나 힘쓰고 애썼으면 땀이 핏방울같이 떨어졌을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43절엔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고 되어 있음을 보라. 자칫 별 의미 없이 넘길 수 있는 구절이다. 성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 곁에서 힘을 보탤 정도로 예수님이 마셔야 할 잔은 혹독하고 힘겨운 것이었음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기도의 과정과 천사가 돕는 과정은 예수님이 그저 힘든 시늉만 한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단지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고난과 고심이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심판은 원래 누구의 몫이던가?
우리 자신이 치렀어야 했을 우리 자신의 몫인 심판과 징벌이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대신 지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이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련의 모습들이 실망스러워 보이는가? 아닐 것이다. 날 대신하여 고뇌하시고 피같은 땀을 흘리시고 십자가 위에 못 박혀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분이 우리 주님이시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처럼 감사한 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예수님은 다가오는 십자가 수난을 잘 이겨 내기 위해 온몸과 마음을 다하여 기도로 하늘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신 반면, 제자들은 이때 뭐했을까? 모두가 잠에 빠져버린 상태였다. 시험에 들지 않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는 말씀은 온데간데없이 그냥 곯아떨어져 버렸다. 그 결과 제자들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예수님을 부정하고 배신하고 말았다.
그렇다. 오늘 우리에게도 사탄의 유혹은 끊이질 않고 집요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탄과 세상이 주는 유혹을 떨쳐버린 채 날마다 승리할 수 있을까? 막 9:22절은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한다. 그렇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도’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라는 말이다.
고난주간을 맞아 주님처럼 ‘기도’를 통해서 유혹에 빠지지 않음은 물론, 하나님을 위해 멋지게 승리하며 잘 살아 내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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