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지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 한 25년 전, 우연히 그의 책을 발견한 후 그가 쓴 책이면 닥치는 대로 사서 읽곤 했다. 원래 그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사(修士)의 길에 들어서 빈자(貧者)들의 뒷골목에서 그들과 함께하며 긍휼의 사역을 펼쳤다. 가난한 자들 속에서 낮에는 육체노동을 하고 밤에는 기도와 묵상에 잠기곤 했다. 1970년대에는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캠퍼스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다가 알콜중독으로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다.
알콜중독자 치유센터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재각성을 통해 그의 몸과 영혼은 온전히 치유되고 회복되었다. 은혜의 복음'에 대한 뜨거운 감격으로 그는 사제직을 내놓고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의 전도자가 된다. 그는 행함으로 하나님께 공덕을 쌓으려는 인간의 공로주의, 실적주의에서 피난하여 탕자 아버지와 같은 하늘 아버지의 은혜의 가슴에서 안식할 수 있었다.
그는 가톨릭의 수행주의 체제 하에 있어보았기 때문에 은혜의 복음의 달콤함을 그 누구보다도 절감한다. 사도 바울이 외쳤고, 마르틴 루터가 재발견했던 ‘오직 은혜’의 슬로건은 아직도 율법에 의지하고 인간의 실적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오늘 우리의 교회와 우리의 신앙을 개혁하고 바로잡아준다고 그는 확신한다. 현재 그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경계를 넘어서서 탁월한 강연과 저술을 통해 북미 및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별히 개신교의 영성작가들과 지도자들이 그의 삶과 저작들로부터 영적 통찰과 영감을 얻고 있을 정도로 그의 글은 심오하고도 진솔하게 펼쳐진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그로부터 오늘 감동적인 내용의 글을 읽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전쟁의 가장 치열한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던 1952년 겨울, 적진으로 100미터쯤 들어가 있는 어느 전방 관측소벙커에 해병대 상병 둘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잭 로빈슨과 팀 케이시는 친구가 된 지 거의 1년이 되었다. 둘은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탄약 및 폭약 학교에서 만나 휴가도 함께 다녀오고, 얼마 후 캘리포니아주 캠프 팬들턴으로 옮겨 상급 보병훈련을 받았다. 그들의 소속 연대는 1951년 가을, 부산에 도착했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가벼운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둘이 벙커에 웅크리고 앉아 담배를 주고받고 있는데, 수류탄이 정확히 두 사람 중간에 떨어졌다.
북방 25미터 거리의 미처 눈에 띄지 않은 곳에서 북한 병사가 던진 것이었다. 케이시가 수류탄을 먼저 보았다. 그는 태연하게 담배꽁초를 휙 던지고는 수류탄 위에 엎드렸다. 수류탄은 즉각 터졌으나 케이시의 복부로 폭발이 흡수되었다. 그는 로빈슨에게 찡끗 눈짓을 보내고는, 그대로 전사했다. 4년 후 로빈슨은 성직의 길에 들어섰다.
정식 서원을 공표하던 1960년,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의 상징으로 자기 이름을 새로 지었다. 팀 케이시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그 자기희생의 정신을 그대로 본받고 싶은 마음에 잭에서 케이시로 개명한 것이다. 그는 케이시의 홀어머니에게도 친구가 되어, 크리스마스 휴가 때면 로드아일랜드 본가와 시카고의 케이시 여사를 양쪽 다 방문했다.
어느 여름, 케이시 로빈슨 신부는 불시에 케이시 여사의 집에 들렀다. 당시 그는 매우 기력이 없고 우울했다. 여느 때처럼 둘은 줄곧 손을 잡고서, 함께 오후의 텔레비전 연속극들을 보았다. 저녁식사 후 둘은 거실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팀이 살아 있던 시절을 회상했다. 신부의 우울은 가실 줄 몰랐다. 그가 뜬금없이 물었다.
“어머니, 케이시가 정말로 저를 사랑했을까요?” 여사는 웃었다. “잭,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약간 아일랜드 사투리가 묻어났다. “농담으로 하는 소리지?” “진담입니다.” 로빈슨이 대답했다.
여사의 눈빛에 두려움이 서렸다. “잭, 어른을 놀리면 못써.” “놀리는 게 아닙니다, 어머니!”
여사는 믿어지지 않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이내 두려움이 분노로 변했다. 케이시 여사는 평소 욕지거리를 하거나 주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은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그날 밤에는 벌떡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제기랄, 팀이 너를 위해 그 이상 뭘 더 해줄 수 있단 말이냐?” 그러더니 여사는 의자에 털썩 앉아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똑같은 말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자꾸만 그의 뇌리에 윙윙거렸다. “팀이 너를 위해 그 이상 뭘 더 해줄 수 있단 말이냐?”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여사가 보일락 말락 엷게 웃으며 가만가만 말했다. “잭, 누구나 이따금씩 그렇게 다시 확인해야 되는가 보다.”
그날 밤으로 케이시 신부는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있던 자그마한 의심과 불안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참된 신뢰와 확신에 뒤따라오는 온전한 평안을 얻었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이렇게 말했다. “마귀가 가장 기뻐할 때는 하나님의 종에게서 마음의 평안을 앗아갈 때다”(Brennan Manning, The Importance of Being Foolish, 80-82)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씩 하나님의 존재나 사랑에 대해 의심이 갈 때가 있다. 마귀가 주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뢰 부족 때문이기도 하다. 자기 욕심이 강하다 보면 인내의 결핍으로 인해 주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이 갈 때가 있다.
하지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위해 희생시키신 것 이상 우리가 하나님께 뭘 더 바랄 수 있겠는가? 영원한 지옥에서의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의 모든 죄를 한 몸에 지고 성부로부터 저주 받음을 마다하지 않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 이상 뭘 더 주님에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의심이란 ‘걸림돌’이 불신으로 귀결되지만 않는다면 확신의 바닥을 더욱 탄탄하게 다져주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심의 구름이 몰려올 때마다 언제나 기억하자. “팀이 나를 위해 그 이상 뭘 더 해줄 수 있단 말이냐?”란 케이시 여사의 말과 같이, “예수님이 너를 위해 십자가의 희생 그 이상 뭘 더 해주실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확신과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삶들이 연속되었으면 좋겠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