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세기 중반 우리 민족이 희비의 대조를 이루었던 두 개의 사건을 기억합니다. 하나는 1945 년 8월 15일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조국의 광복을 맞게 된 희극의 사건이요, 다른 하나는 1950년 동족상잔의 고통으로 점철되는 6.25 전쟁 비극의 사건 이었습니다. 그 사건들을 직접 경험했던 세대는 점점 줄어들어 당시 우리 민족의 해방이 주는 희열과 전쟁의 그 비열한 참상들을 이제는 전언으로 들으며 기억하고 기념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사건에 대한 단순한 정신적 회상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 과거의 일을 현재로 적용하여 그 역사적 사건을 우리 이야기의 일부로 만들어 큰 교훈으로 가슴에 담게 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헬라어로 아남네시스(anamnesis-remembering)로 정의하게 됩니다.
미국의 노예 역사를 보면 1619년 8월 버지니아 식민지의 제임스 타운에 네덜란드 국적선의 노예선 한 척이 도착해서 20명의 흑인을 팔아넘기면서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863년 에이브러헴 링컨(Abram Lincoln, 1809-1865) 대통령이 노예제도를 폐지한 때까지 약 250년 동안 미국에서는 노예제도가 지속되었습니다. 이때 노예들에 의해 불린 찬양 중 "거기 너 있었는가(Were You There)"가 대표적인 "아남네시스 찬송"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찬송은 미국의 아프리카 노예들이 만든 유명한 영가(Spirituals)중 하나입니다.
당시 일부 노예들은 자신들의 불행을 하나님 탓으로 돌렸습니다. 하지만 많은 노예는 이러한 고난의 현실을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간절함을 갖고 찬양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 중 "거기 너 있었는가" 찬송은 당시 흑인 노예들이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의 과거 사건을 현재로 가져와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을 기억(아남네시스, anamnesis )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빛으로 그들을 변화시키려는 의미로 "그곳에 있었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몸과 무덤에 묻히시고 부활하신 것을 상기시키려 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그들이 그분께 더 가까이 가기로 선택하며 이런 찬양했던 것입니다.
찬양 속에 담긴 그들의 고통과 아픔이 벧전4:1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하셨으니 그와 같이 너희도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라. 이는 육체 안에서 고난을 당한 자가 이미 죄를 그쳤기 때문이니" 이 서신의 저자 베드로는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로 인한 산 소망을 제시하여 그 역경 속에서도 담대하고 흔들리지 말라고 격려하려는 목적을 갖고 이 베드로 전·후서를 썼습니다. 이 서신 가운데 특히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 그리스도와 같이 인내와 희망을 품으라는 권면을 보게 됩니다.
당시 미국의 흑인들(Afro. American)은 노예생활을 당하며 그 고통 속에서 이와 같은 인내와 소망을 갖고 "거기 너 있는가"라고 진하게 질문했던 것입니다. 그 이면을 보면 그들은 비록 자신들을 노예로 삼은 저들이 많은 자유를 빼앗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찾는 자유는 결코 빼앗을 수 없을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그 현실을 저항하며 외쳤던 울림이었을 것입니다
이 곡은 회중교회 목사이며 작가인 윌리엄 바튼, William Eleazar Barton, 1861-1930)이 1899년 "오래된 식민지 찬송(Old Plantation Hymns)"이라는 찬송가집 안에 처음 출판하여 대중에게 알리게 된 것으로 작곡자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이 곡이 점점 더 대중화가 되면서 다양한 교회 찬송가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40년 버전에 최초로 이 노래를 성공회 찬송가에 포함 시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 시대 노예들의 고통과 아픔들을 통해 나타난 음악들이 후에 미국 음악 뿌리의 근간으로 나타나 두 가지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하나는 블루스입니다. 들판에서는 종종 침울하고 애절한 방식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하여 블루스 스타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가스펠입니다. 교회에서 노래는 고양되고 즐거운 방식으로 불렸습니다. 그리하여 가스펠 음악 스타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영가의 깊은 울림 속에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것이 고난 속에 나타난 역설의 하나님 찬양에 대한 열매들입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는 네 박자 형태를 가지고 전형적인 두 박자 형태의 블루스 리듬과 함께 많은 루바토를 사용하여 표현하게 되는 곡입니다. 이러한 리듬 형태를 보이고 멜로디로 표현되는 것 안에 노예의 서러움과 애절함 속에 슬픔을 담아내는 멜로디로 구슬픈 울림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사는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을 상기시키며 자신들의 아픔을 대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찬양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의 고난은 저주받은 자가 아니라 축복받은 자라는 사실을 일깨우게 합니다. 그래서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는 "고통은 베일을 벗기고 반항하는 영혼의 요새 안에 진실의 깃발을 꽂는다"라는 역설의 빅토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올해의 사순절 기간을 지내며 그리스도의 수난의 순간들을 기억하고 가슴에 새기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고통을 기억(아남네시스(anamnesis)하며 복음으로 인한 진실의 깃발을 꽃는 시간들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내 것이 아닌 하나님 것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마땅한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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