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의 원칙은 얼핏 보면 정당해보이나 사실은 매우 잔인하다. 그 복수를 당하는 이에게보다도, 자신이 당한 만큼 복수하겠다고 마음 먹는 본인에게 사실 더 잔인하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송혜교)이 학교폭력 가해자 박연진(임지연)에게 “나의 꿈은 너야”라 한 것처럼, 복수심은 본인의 삶을 없앨 수도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그리고 어떻게 하면 복수를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으로 일생의 방향이 맞춰진다. 정말 그 사람의 꿈은 그 가해자가 된다. 문동은의 집이 가해자 사진들로 가득 채워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문동은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도 아까워하고 이보다 더 크게 갚아주리라는 다짐을 20년간 해왔기에 더할 것이다.
〈더 글로리〉는 그간 대한민국에서 개봉된 복수 관련 콘텐츠를 많이 보고 그것들을 뛰어넘으려 노력한 게 보인다. 복수하려다 중간에 어떤 계기로 복수를 멈추거나 무언가 틀어져서 복수를 실패하는 등, 그간 대한민국에서 꽤 많이 사용된 장면이 〈더 글로리〉 Part 1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문동은이 박연진 딸의 교사가 되기까지 교대 입학과 학교 이사장과의 비리 등 모두 쉽지 않았을 텐데 잘 진행되었고, 문동은 자신처럼 복수심에 가득 찬 강현남(엄혜란)과 주여정(이도현) 등이 복수의 조력자로서 함께 모였다.
〈더 글로리〉는 하나님에 대한 복수를 다룬 영화 〈밀양〉(2007) 또한 뛰어넘었다. 〈밀양〉 이신애(전도연)는 아들을 죽인 가해자가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며 떳떳하게 잘 사는 걸 보고 정신을 잃는다. 가해자에게 복수가 아닌 용서로 대하려 했으나 가해자가 이미 죄책감에서 풀려난 것을 본 데에서 온 충격은 하나님에 대한 복수심으로 번져갔다. 반면, 〈더 글로리〉 문동은은 가해자 이사라(김히어라)가 대형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하나님을 앞세우며 이미 죄책감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밀양〉 이신애처럼 충격받지 않는다. 문동은은 그것보다 더한 충격을 받아봤기에 아무렇지 않아 하고 오히려 이사라를 가지고 논다. 특히 문동은은 초등교사다 보니 교대생 시절 교육자로서 가져야 할 윤리관에 대해 배우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문동은은 복수를 위해 교사가 되려 한 거니 교육 윤리도 그녀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이로써 3월에 개봉될 〈더 글로리〉 Part 2에서 문동은의 복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더 주목된다. 드라마에서 ‘복수’라는 행위를 최종적으로 어떻게 다룰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의 원칙을 끝까지 지킬까?
사실, 〈밀양〉의 살인자와 〈더 글로리〉 이사라 모두 기독교 윤리에 어긋난 삶을 살고 있다. 〈밀양〉의 살인자가 정말 자신의 죄를 회개했다면 피해자 유족에게 용서부터 구했어야 했다. 유족 앞에서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하는 건 진짜 회개가 아니다. 위선에 불과하다. 〈더 글로리〉 이사라는 학교폭력 가해자에 이어 마약 중독자가 되어 버렸으니 말할 것도 없다. 이와 같은 기독교 비하를 통해 〈밀양〉과 〈더 글로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와 ‘용서’를 매우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있고, 이에 관한 선한 콘텐츠를 모두 뛰어넘으려 노력했다. 물론, 회개와 용서에 대해 애초에 왜곡되게 그려놓고 넘은 것이기에 정말 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더 글로리〉는 그저 기독교 비하라는 틀 안에서만 웬만한 건 다 넘은 상태다.
또한, 〈더 글로리〉가 뛰어넘으려 시도한 흔적은 보이나 차마 완벽히 넘지 못한 드라마가 있다. 2013년에 방영한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그렇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1화에서 민준국(정웅인)은 박수하(이종석)의 아버지를 죽이는데, 그 현장을 장혜성(이보영)이 목격한다. 그리고 장혜성이 이를 고발하자 민준국은 교도소에서 장혜성을 노리며 살인 계획을 세운다. 민준국은 출소 후 실제로 장혜성을 찾아가는데, 박수하가 장혜성을 지켜준다. 이후 드라마에서 대반전이 등장한다. 사실 박수하 아버지가 먼저 민준국 아내를 죽게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민준국이 박수하 아버지를 죽인 것, 그리고 장혜성을 죽이려 하는 것 모두 복수심에 의한 것이었다. 장혜성의 조력자로 박수하가 등장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장혜성의 더 큰 조력자는 장혜성 어머니 어춘심(김해숙)이었다. 민준국은 장혜성을 잡지 못해 어춘심을 죽이려 하는데, 살인 현장에서의 어춘심에게 딸 장혜성과 전화할 기회를 준다. 어춘심은 민준국 바로 앞에서 장혜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혜성아, 네 그거 아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법대로 살다가는 이 세상 사람들 모두 다 장님이 될 거다. 너한테 못하게 하는 사람들 너를 질투해서 그런 거다. 네가 하도 잘나가 부러워서 그런 거다. 그런 사람들 미워하지 말고 어여삐 여기고 가엾게 여겨라. … 너 약속해라. 사람 미워하는 데 네 인생 쓰지 마라. 한 번 태어난 인생, 예뻐하면서 살기도 모자란 세상이다.”
어춘심은 장혜성에게 살려달라 하지 않고 이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민준국은 황당해하며 “안 무서워?”라 묻는데, 어춘심은 민준국에 이렇게 말한다.
“안 무섭다. 그냥 나는 네가 못나고 참 가엾다. … 평생 누구를 증오하면서 살아온 것 아냐. 그 인생이 얼마나 지옥이었을까.”
민준국의 속셈은 어춘심이 살려달라 하게 해 장혜성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고 더 나아가 민준국은 복수심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 큰 회의를 느낀다.
장혜성은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간다. 박수하가 장혜성을 지키기 위해 민준국을 죽이려 칼을 들 때 장혜성이 달려가 그 칼을 대신 맞았다. 결과적으로 민준국이 지켜졌지만 사실 장혜성은 박수하를 지키고 싶은 것이었다. 박수하가 민준국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더 글로리〉가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이 장면들을 뛰어넘으려 시도한 부분이 있었다. 문동은이 박연진에게 복수해 박연진 딸이 문동은 자신에게 다시 복수하더라도 복수하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여기서 두 드라마의 결정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는, 어쩌면 복수심으로 불탈 수 있었던 장혜성과 박수하를 다독여주는, 어머니 어춘심으로 대표되는 ‘가정’이 있었다. 〈더 글로리〉 문동은에게는 없는 가정, 매우 안타까운 설정이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가정도 없고 학교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니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엇나갔다.
〈더 글로리〉 문동은에게 필요한 건 그녀가 말한 “칼춤 추는 망나니”가 아니었다. 남편에게 복수하길 원하는 강현남, 살인 당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집에 수십 개의 칼을 두고 다니는 주여정 이 두 사람이 그녀에게 나타난 것은 그녀의 계획을 완수하는 데에 도움을 줄 뿐 그녀의 인생에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문동은과 같은 사람 앞에서 정죄할 수 있을까? 정죄했다가는 〈친절한 금자씨〉(2005)의 금자(이영애)가 말하듯 “너나 잘하세요” 같은 말만 듣는다. 크리스천이라면 그런 아픔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내려는 이들에게 건전한 공동체가 되어주어야 한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버림받은 이들에게 교회가 되어주어야 한다.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게 하는 이기주의도 아니고, 무리에 강제로 끌어들이는 전체주의도 아닌, 건강한 개인으로 성장시켜줄 수 있는 건전한 공동체를 선물해주어야 한다. 교회가 그들에게 가정이 되어주어야 한다. 가정이 바로 서 있다면, 상처로 얼룩진 이들에게 치유와 회복을 선물할 수 있다. 복수심에 불타 가해자에게 “나의 꿈은 너야”라 한 문동은처럼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비전을 찾으며 이전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멋진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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