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수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찬양과예배학과 교수)

성경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한국교회의 다음 세대를 위해 두 번째로는 설교 본질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예배에서의 설교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구원의 사역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문화가 점점 발전할수록 우리의 설교는 복음보다는 점점 복잡해져가는 삶의 교훈이나 그 삶을 나누는 시간으로 점점 할애가 많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설교 말씀이 현재의 삶을 비추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건 복음의 말씀으로 기초가 튼튼한 설교 위에서다.

최근 청중들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좋은 설교자는 재미있게 설교하는 목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커져 왔는데 이는 분명 소비자지향적인 설교(Consumerism Sermon)라 할 수 있다. 청중들이 원하는 설교는 원칙적으로 소비자 지향적인 설교다. 우리는 정답을 가지고 설교해야 하며 설교의 정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이고, 하나님 이야기들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살아있고 성령님은 설교 시간에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시며 감동의 은혜를 부어주신다. 믿고 나아가는 분명한 신뢰가 필요하다.

사도바울은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가 되어야 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설교의 기초재료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어야 하며 세상을 향한 말씀 즉 구원의 선포로서의 시작점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설교자는 ‘대사(Ambassador)’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께서 설교자의 입과 마음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를 마크 래버튼(Mark Labberto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설교자는 자신의 권위나 언변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들은 이 세상의 탁월한 웅변가나 선동가, 연설자보다 더욱 위대하신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설교에 기름을 붓고 오늘날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삼으셨다. 설교자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그분의 권능과 은혜로 입을 열 뿐이라고 고백할 따름이다. 모든 하나님의 대사들(ambassadors)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귀한 것들을 드릴 특권이 있다.”

설교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하며, 그 말씀을 입으로 수행하는 설교자들은 그 말씀의 본질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셋째, 말씀의 선포가 되어야 한다.

예배의 정의가 하나님의 이야기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그 이야기를 지금 기억하고 재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말씀 또한 ‘그 이야기’를 재현해야 하는 것이 설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그것이 ‘선포(Kerygma, 케리그마)’다. 초대교회 사도들의 이야기, 즉 사도행전의 설교들은 선포였다. 그 내용들은 ‘그 이야기’다.

때가 왔다. 메시야가 오셨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장사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승천하셨고, 모든 악을 심판하시러 다시 이 땅에 돌아오실 것이다.
회개하고, 침례(세례)를 받으라, 성령을 받으라.
교회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람들이다.

요즘 들어 설교에서 사람의 이야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설교는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선포여야 한다. 사람의 이야기를 선포라고 하지 않는다. 설교 내내 우리의 이야기로 대부분 채워졌다면 그건 강의이지 말씀의 선포가 아니다. 말씀의 선포는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의 순수성에 대해 라마 보쉬맨(Lamar Boschman)은 그의 저서 “Experience a Rebirth of Worship(워십 리바이벌)”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설교자는 청중의 상황이나 자신의 주제에 맞추기 위해 성경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설교자는 성경말씀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그에 복종할 수 있게 인도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말씀의 주제와 강조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설교자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를 전해서는 곤란하다. 말씀의 의미를 그대로 풀어 말하기만 하면 말씀이 역사하기 시작한다. 그래야만 개인적인 해석이나 의심스런 결론을 방지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해 서구의 부흥하는 교회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부흥하는 대부분의 교회는 ‘복음적인 교회’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성경적 본질의 강화가 가장 큰 부흥의 원동력이었다. 특히 설교는 매우 복음적이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보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공생애, 고난, 죽으심, 부활, 재림에 관한 이야기였다.

갈수록 우리는 설교에 부담을 느낀다. 청중의 태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좋지만, 그들이 설교의 주제가 될 순 없다. 좋은 이야기와 감동의 이야기도 좋지만, 그리고 흥미롭고 많은 사람에게 매력 있는 이야기들도 좋지만, 그건 이야기들의 한 종류일 뿐이고 ‘선포’가 될 수 없다. 강의와 같은 교훈적인 말씀은 잠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지만, 말씀의 선포는 우리의 심령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것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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