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하나님은 도대체 왜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일까? 하나님은 도대체 왜 사도 바울에게 그 위대한 사명과 함께 그 사명을 치명적으로 공격하는 육체의 가시를 함께 주신 것일까?
하나님은 사도 바울이 자만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셨다. 여리고 성에서 승리한 이후 아이성에서 패배했던 이스라엘처럼, 왕이 된 이후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던 사울처럼,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사명을 행하는 과정에서 자만해지고픈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될 것임을 알고 계셨다.
하나님의 종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만함” “교만함”을 불어 넣는 것은 사탄 마귀의 가장 핵심적인 전략이다. 왜냐하면, 자만함과 교만함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만들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마른 가지와 같이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허락하신 사명과 지극히 큰 계시로 말미암아 자만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고,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이 자만해지지 않도록 “사탄의 사자”를 보내셔서 그의 몸을 치고 계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탄의 본래 계획이 아니다. 사탄은 사도 바울이 자만해지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자만심을 부추기기를 원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하나님의 사역을 훼방하고 무너뜨리기를 원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육체를 쳐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자 하는 사탄 마귀의 계략을 이용하셔서 오히려 바울을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그래서 더욱 강력하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고 계신 것이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 지식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12:8-9)
사탄 마귀의 원래 계획은 사도 바울의 육체를 질병의 가시로 찔러서 하나님의 사명과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탄 마귀의 계략을 사용하셔서 오히려 사도 바울의 사역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러 있게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향한 사탄의 공격을 사용하셔서 오히려 사도 바울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주신 것이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본 것이다. 그래서 사탄이 찔러 놓은 그 육체의 가시로 말미암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송을 돌려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고후12:10)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가 사탄 마귀의 역사를 통해서 이뤄가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다.
하나님께서 사탄의 가시를 통해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일하고 계심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나의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오히려 기뻐하게 되고, 그와 같은 기쁨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한 목사님께서 일본에서 목회하실 때, 어떤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는데, 예배 중에 남성 중창단의 특별 찬송 순서가 있었다. 그런데 찬양하러 나온 세 명의 남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야쿠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큰 체구에다가 걸어나오는 자세나, 입고 있는 라운드 티, 그리고 팔과 목에 있는 문신들이 보기에도 위압적이었다. 그런데 막상 찬양을 부르기 시작하자, 그들의 너무나 아름다운 목소리에 또 한번 놀랐다. 감동이었단다. 그들이 찬양을 부른 후에 그 중의 한 사람이 짧은 간증을 했다.
“우리에게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다 야쿠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는 아내가 다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었고, 남편인 우리를 위하여 기도를 많이 하고 금식하여 결국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셋째는…” 하면서 세 사람이 다 왼손을 앞으로 펼쳤는데, 모두들 깜짝 놀랐다. 모두 세끼손가락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일본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모두들 숙연해졌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은혜를 알고 나니, 그들이 비록 야쿠자의 간부였지만 더 이상 그 생활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야쿠자 두목에게 찾아가서 조직에 더 이상 몸담을 수 없다고, 자신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기에 조직을 떠나겠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야쿠자의 두목이 농담으로 알고 믿어주지 않다가 결국 진심임을 알고 모든 조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사실을 발표했다. 그리고 앞에 있는 탁자에 칼을 꽂더란다. 그들은 그 칼로 자신들의 손가락을 자르고서야 조직에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신의 일화를 나눈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기 위하여 무엇을 잘라내었습니까?” 저는 지금껏 제가 들었던 예화 가운데 이보다 더 살벌한 예화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저는 이 예화를 읽으면서, 이 험상궂게 생긴 야쿠자의 입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의 찬양이 흘러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새끼 손가락을 잘라냈는데 그 목소리가 어떻게 은혜롭지 않을 수가 있었겠어요?
사탄 마귀는 이들의 삶을 해하려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사탄 마귀의 계략을 사용하셔서 오히려 더욱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신 것이다. 그들의 잘려진 새끼 손가락은 사도 바울에게 허락하셨던 육체의 가시였던 것이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50:20)
사탄이 어떤 뜻을 품을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감소시키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망가뜨리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탄에게 그런 행위를 허락하실 때 하나님의 계획은 그의 영광을 드높이고 그의 백성의 궁극적 유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요, 그것을 통해서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합당한 찬송과 예배는 감사하는 것이다.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힘이 없는 상황에서도 힘을 내라. 기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기쁨을 내라. 감사를 내라.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믿음을 내라. 그것이 사탄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길이요,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 머물러 있게 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것이 복 있는 자, 형통한 삶의 비결이다. (끝)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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