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학술원이 16일 오후 제15회 신진학자포럼을 온라인 줌을 통해 개최했다. 이날 먼저, 박동진 박사가 (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 조교수) 마틴 로이드 존스의 부흥 신학과 칼빈주의 성령 학파’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박 박사는 “20세기 개혁주의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 1899-1981)에게 성령 세례(the baptism with the Spirit)와 부흥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며 “그는 부흥을 많은 수의 사람들이 동시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성령 세례란 강력한 성령의 부으심을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며, 부흥은 이와 같은 체험을 집단적으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며 “이러한 점에서 로이드 존스의 성령 세례 교리는 그의 부흥 교리의 개인화된 형태(an individualized version of his revival doctrine)라고 할 수 있다. 로이드 존스에게 성령 세례와 부흥의 본질은 신자들이 구원의 온전한 확신, 양자됨,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경험적으로 누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로이드 존스의 성령 세례 교리는 오순절주의와 동일하다거나, 이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16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설파되었던 ‘구원의 확신’과 ‘부흥’이라고 하는 개혁주의 전통의 두 교리에서 파생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했다.
이어 “로이드 존스는 구원의 확신 교리가 현대교회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개혁주의 가르침이라면, 성령 세례 교리의 또 다른 한 축인 부흥 신학은 한때 널리 보급되었으나 19세기 이후에 거의 사라졌거나, 아니면 심각하게 왜곡된 또 다른 개혁주의 교리라고 주장한다”고 덧붙였다.
박 박사는 “부흥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그의 설교와 강연에서 자신의 부흥 교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뉴잉글랜드 청교도와 스코틀랜드 개혁주의 신학자와 같은 18, 19세기의 개혁주의 전통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였다”고 했다.
이어 “17세기 청교도들에게는 부흥 신학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로이드 존스의 주장과는 달리, 개혁주의 부흥 신학은 17세기 비국교도 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되었다”며 “그리고 노샘프튼 부흥과 1차 대각성 운동의 한 복판에 있었던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에 관한 저작들을 통하여 부흥에 대한 칼빈주의적 해석이 체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록 에드워즈의 부흥 신학은 19세기 찰스 피니의 부흥주의의 등장으로 인해 쇠퇴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영적 침체기 이후에 성령의 새로운 부으심이 교회의 생명 가운데 주어지며, 이러한 부흥들은 항상 복음 설교를 통하여 일어난다”고 믿는 칼빈주의 성령 학파에 의해 오늘날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의심의 여지없이 로이드 존스는 20세기에 자신의 설교와 강연을 통하여 이와 같은 개혁주의 부흥 신학과 부흥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영향력 있게 전파한 칼빈주의 성령학파의 20세기의 주요한 인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어서 ‘오페레이설(Overijssel) 주 총대단의 의사 결정 과정: 시벨리우스의 일지에 나타난 단서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제한 홍주현 박사(새에덴교회 목회연구소, 연구목사)는 공식 회의록과 일부 총대들의 개인 기록을 통해 명확하게 확인이 가능한 도르트 총회의 진행 절차와 방식과는 달리, 모든 총회 결의의 근간이 된 각 총대단의 견해서 작성 방식에 대해서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퍼레이설주 총대였던 카스파르 시벨리우스가 작성한 개인 일지에 포함된 일부 자료가 각 총대단, 적어도 오퍼레이설주 총대단의 견해서 작성 방식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 주는데, 시벨리우스 일지에 포함된 결정적 단서를 통해 오퍼레이설주 총대단의 견해서 작성 방식을 합리적 추론 과정을 통해 재구성했다.
마지막 발제 순서로 ‘롬8:19-23의 출산 문맥 다시 읽기’라는 주제로 발제한 김형태 박사(주님의보배교회 담임)는 “제목으로 롬 8:19-23의 창 3:16-19에 대한 인유에 근거해서, 많은 학자들이 이미 인식하고 있듯이 22절의 συνωδίνειν(고통을 함께 겪다)이 산고의 고통을 암시할 뿐만 아니라 ματαιότης(허무함, 20절), φθορά(썩어짐, 21절), συστενάζειν(함께 탄식하다, 22절), ἀπαρχή(첫 열매, 23절) 등도 출산의 문맥에서 읽힐 수 있음을 보이고, 이 해석이 로마서 8장 후반부에 나타난 바울의 논의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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