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 강북에 있는 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님과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교회가 있는 지역이 수년 전에 수용되었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교회 본당 좌석이 약 1,000석인데, 3, 4년 후 새롭게 건축할 때 좌석을 500석으로 정했다고 했다. 처음 건축위원회 위원들이 최소 1,500석을 주장했던 것을 설득하느라 힘들었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이 목사님의 말이 매우 신선했다. 오래전부터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준비에 있어서 다운사이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기에 이런 생각을 가진 분을 오랜만에 접했기 때문이다. 나는 매우 잘했다는 말과 함께 다시 한번 한국교회의 현실이 어른거렸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대부분은 ‘교회 성장’이라는 캐치 플레이를 내걸고 매진해왔다. 교회 예배당과 주보마다 앞으로 몇 년 후엔 몇 명을 목표로 전도하고 등록시키자는 문구가 실려있었다. 대형 교회 중심으로 버스를 운행하면서 먼 거리에 사는 성도들을 싣고 내리는 모습도 자주 보았던 광경이다. 베이비붐 시대와 맞물려 활력은 넘쳐났고, 모든 사회, 경제가 그렇듯 교회 또한 성장지상주의에 심취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장주의는 곧 종료될 예정이다. 우리의 의지도 그동안 약해졌지만, 그보다는 사회와 환경의 지표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은 “교회 십자가가 병원보다 많다”라는 비아냥거리는 말을 자주 해왔다. 하지만 날이 저물어 갈 때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나노라면 빨간 십자가가 하나둘 눈에 띄게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내 맘엔 힘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다. 꼭 교회를 알리고 전도를 위해서의 목적을 차치하고서라도 단지 빨간 십자가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많았을 것이다. 지금은 주위의 눈치와 사회적인 배려의 목적에 따라 빨간색을 희색으로 바꾸거나 아예 십자가 등을 켜지 않는 교회가 많아졌다. 문제는 십자가 불빛과 더불어 그렇게 많은 교회도 자의 반 타의 반 하나둘 없어져 간다는 사실이다. 참고 이겨내는 목회적 사명감의 부재도 원인이겠지만 그보다는 알고 보면 현실적 이유가 더 크다. 더 나아가 가장 안타까운 점은 재정적으로 어려워 교회 문을 닫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결론적으로 조금 더 나은 지역의 교회들이 주위 어려운 교회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면에서 말이다. 예를 들면 교회마다 선교도 좋고, 행사도 좋지만, 옆에 있는 작은 미자립교회들이 재정적으로 쓰러져갈 때 돕는 것이 우리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 중 하나라고 믿는다. 세상 법칙으로 음식점은 음식점이 모여야 잘된다고 한다. 옷 가게도 마찬가지고 같은 종류의 업종들이 모여 있을 때 사람들도 더 많이 찾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의 교회가 세상 논리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십자가 종탑들이 많이 밀접 되어 있을 때 그 지역은 복음의 탄력과 힘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가 문을 닫고 승자 교회가 그 지역에 최후로 남아 더 많은 성도가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주위의 교회들이 문을 닫고 점점 떠나버리게 되면 그 지역은 복음의 힘을 잃어버리게 되고 남은 교회마저 생명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주위 교회가 잘돼야 우리 교회도 잘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들이 마치 알을 품어주듯 ‘인큐베이터(Incubator)’ 역할을 해야 한다. 미자립교회를 비롯해 교회의 성도들이 많지 않고 재정적으로 어려운 작은 교회들을 능동적으로 품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마음이 우선이다. 물론 목회 지향점이 다르고 교단도 다르지만, 우선 하드웨어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면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교회 유지가 안 되어 문을 닫아야 할 처지의 교회에게 시간대를 달리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교회를 일부 내어준다든지, 소예배실을 사용하게 해주는 것도 가능하다. 정 안되면 토요일, 또는 주일 저녁이나 그 이외의 시간을 내어 예배드리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교회가 서로 마음이 어느 정도 맞는다면, 차후에는 공동집회나 특별 세미나, 수련회도 같이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교회 입구 간판이나 주보에 함께하는 교회를 소개하고, 한 건물 이곳저곳에서 드리는 서로 다른 예배의 시간을 알려주고 공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교회가 사회와 이웃을 위해 개방한다는 말이 많은데, 나는 우선 지역에 함께 있는 교회를 위해 건물을 개방하고 함께하는 것이 그리스도 공동체에 더 부합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지역 주민들에게 더 신선한 영향을 나타내며 교회가 더 이상 이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해답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 공동체는 사랑의 공동체다. 이웃을 대할 때도 사랑의 섬김으로 대해야 하지만, 같은 목적,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하나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안에서 서로의 존재와 공동체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위에 있는 어렵고 힘든 교회와 지체들에게 그 누구의 관심보다도 나눔과 사랑과 섬김을 실천할 바로 옆 이웃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하다. 이제 서로의 교회가 반목과 경쟁과 외적 성장과 같은 세상의 논리가 아닌 그리스도 공동체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라면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죽으시기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신 무조건적인 사랑과 겸손을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참된 교회다. 교회는 성장이 아니라 섬기는 곳이고, 그 대상은 가장 가까운 우리 예배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다. 성장을 포기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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