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곳곳에 성탄을 축하하는 트리가 세워지고 성탄 축하 노래, 캐럴이 울려 퍼지곤 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길거리에서 캐럴송이 사라지면서 세밑의 풍경이 썰렁해지고 있다. 이는 음원 저작권이 강화되면서 각 매점에서 캐럴송을 재생하는데 상당한 정도의 로열티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작년 연말 모처럼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한교총이 협력하여 캐럴활성화를 계획하였으나 불교측의 항의와 소송제기로 차질을 빚게 된 것은 매우 유감이다. 불교는 정교분리원칙상 특정 종교행사에 대한 정부지원은 불법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오히려 법원은 국가가 불교종단의 연등회 행사 등 다른 종교단체의 유사한 종교적 행사에도 보조금을 지급해온 점 등에 비추어 문화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은 종교적 행사에 대한 지원으로서 정교분리원칙이나 공무원 종교중립의무 등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법원결정과는 별개로 문화부는 불교계의 항의에 장관이 조계종을 찾아가 백배 사죄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12.21. 2021카합21880 결정
◈사건의 개요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한국교회총연합,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문체부의 예산지원하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 따뜻한 연말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캐럴 활성화 캠페인 '12월엔, 캐럴이 위로가 되었으면 해'를 2021년 12월 25일까지 진행하기로 하였다.
지상파방송사와 음악서비스 사업자(멜론 등)가 찬송가인 캐럴을 가급적 많이 재생할 것을 요청하고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의 참여 및 협조를 요청하였다. 이에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법원에 성탄 캐럴 켐페인 행사중지 가처분신청을 하였다.
◈불교의 주장
[1] 국가가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특정 종교 편향적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것으로 헌법 제20조의 정교분리원칙, 공무원 종교중립의무, 헌법 제11조의 평등원칙에 위반되어 불교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2] 국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성탄캐럴이 끊임없이 일반 국민들에게 홍보된다면 불교의 사회적 명성과 신뢰를 훼손하여 불교의 명예권을 침해하며,
[3] 행복추구권 중 개인의 일정한 사적 사안에 관하여 국가로부터 간섭을 받음이 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4] 사회 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법 감정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한계를 초과하여 그 자체로 불교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결정의 내용
[1] 명예권, 행복추구권(자기결정권) 침해 여부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어떤 특정한 사람 또는 인격을 보유하는 단체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사실이 적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불교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캐럴 캠페인은 불교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 보이고, 현재까지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캐럴 캠페인으로 인하여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관한 사회적 평가가 훼손되거나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캐럴 캠페인으로 인해 행복추구권에서 발현되는 불교의 자기결정권이 어떻게 침해되었다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2] 평등권 침해 여부
헌법상 평등권 규정은 사법상 일반원칙을 규정한 민법 조항들의 내용을 형성하고 그 해석 기준이 되어 간접적으로 사법관계에 효력을 미칠 수 있을 뿐, 헌법상 평등권 규정으로 인해 개개의 국민에게 직접 구체적인 사법상 권리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불교가 주장하는 사유만으로 불교가 국가에 대하여 성탄캐럴 캠페인으로 인하여 직접 헌법상 평등권에 근거하여 행사중지를 구할 사법상 권리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
[3] 불법행위 성립여부
국가는 불교종단의 연등회 행사 등 다른 종교단체의 유사한 종교적 행사에도 보조사업의 형태로 같은 취지의 보조금을 지급해온 점 등에 비추어 문화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은 종교적 행사에 대한 지원으로서 정교분리원칙이나 공무원 종교중립의무 등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금지청구권을 불교에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을 찾을 수 없으므로 신청을 기각한다.
◈법원의 결정에 대하여
[1] 정교분리, 명예훼손 주장
우리나라와 같은 다종교국가에서는 정교분리원칙은 종교차별 금지와 직결되며, 특히 공직자들의 종교적 중립의무, 국가의 특정 종교에 대한 차별적 지원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 시설이나 행사에 대한 지원은 헌법상 문화국가원리에 비추어 비록 종교적 요소를 포함하더라도 정교분리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가령 불교사찰들이 시행하는 템플스테이 사업이 문화, 관광행사라는 이유로 정부가 예산지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종교별 지원예산 현황(문화재 보수·정비비는 제외)에 따르면 2008∼2012년 총 997억5000만원의 예산지원액 가운데 불교가 지원받은 예산이 430억원(43.1%)이며 유교가 271억원(27.2%), 민족종교가 106억5000만원(10.7%)이었으며, 기독교는 천주교를 포함해도 82억2000만원(8.2%)에 불과하다. 이처럼 해마다 문화재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막대한 정부 예산을 독차지해온 불교가 불과 10억원의 캐럴켐페인 지원을 문제삼아 법원에 가처분까지 신청한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 아닐수 없다.
그나마도 법원의 결정문에서 보듯이 성탄캐럴은 종교적 색채보다는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잡은 행사이므로 정교분리나 공무원의 종교중립의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더구나 성탄캐럴 행사로 인해 불교의 명예가 침해되었다는 주장에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불교의 연등회 행사로 인해 기독교인의 명예가 훼손된다는 말인가 ?
[2] 문화재관람료 강제징수와 정교분리 위반
전국 대부분의 국립공원 입구에는 경내에 소재하는 사찰들이 매표소를 설치하여 이른바 “문화재관람료”라는 명목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이 매표소에서는 사찰 방문과는 상관없이 국립공원에 입장하려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있어 국민들의 원성이 자자하며 정부의 묵인하에 이루어지는 이러한 문화재관람료 징수는 정교분리원칙 위반의 소지가 크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은 2013년 지리산 천은사 사건에서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징수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입장객에게 관람료를 돌려줄 뿐 아니라 위자료 10만원 지급과 이를 어길 경우 백만원의 이행강제금까지 부과하는 판결을 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찰들은 국립공원이 불교 토지임을 내세워 정부의 묵인하에 계속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고 있다. 얼마전 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문화재관람료를 ‘봉이 김선달’에 비유하는 발언이 나온 배경이다.
[3] 다종교사회와 종교간 평화
2015년 정부의 종교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개신교가 약 1천만명, 불교가 7백만명, 가톨릭이 3백 5십만명 정도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드문 다종교사회를 이루고 종교간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종교는 서로 협력해서 현세의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제공하며 영원한 내세를 지향하는 윤리적 삶의 지표를 제공함으로서 이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높이는 긍정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서헌제(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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