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의 저자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간단하게 소개합니다(유다서 1절). 전통적으로 유다는 야고보의 형제 중 한 명이며, 나사렛 예수의 형제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초기 사역에 함께 하던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어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 짧은 편지는 교회 내 거짓 선생들에 대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준동하던 영지주의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면서 유다는 이성 없는 짐승, 암초, 열매 없는 나무, 유리하는 별 등등의 묘사를 써가며 매우 강한 어조로 영지주의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몰래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잠입하여 방탕한 삶을 살며 이단적인 교리를 가르쳤습니다(유다서 4절). 유다는 이 서신을 받는 수신자들에게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권고합니다(유다서 3절).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당연하게 여겨지거나 가볍게 치부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 선생들이 복음을 위협하면 우리는 진리를 위해 힘을 다해 싸워야합니다. 유다는 이러한 쟁점을 전달하기 위해, 오늘날 설교자들이 다양한 출처를 통해 실제 사례를 사용하는 것처럼 성경과 성경 외의 사례들을 사용하며 유대교 전통을 폭넓게 끌어옵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해 마귀와 변론한 일은 모세의 승천이라는 책에 있었다고 하고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옛날부터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내용이었다고 봅니다. 천사장 미가엘이라도 마귀에 대하여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했는데 저 이단자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고 비난하였습니다. 주께서 주신 교회의 합법적 권위자들을 정당치 않게 비난하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유 9-10절)
우리가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하나님의 진리가 위협받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맞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진리라는 그 개념 자체에 대한 의심이 일어날 때, 우리는 먼저 절대 진리가 있으며, 둘째로 그 진리는 오직 예수님으로 오신 하나님 안에 있음을 확실히 알려야 합니다. “진리는 존재한다”는 우리의 ‘절대주의’나 “진리는 오직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는 ‘배타주의’ 모두 인기를 끌 만한 내용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성도에게 맡겨진 ‘믿음을 위한 싸움’에서 피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유다는 그의 짧은 서신을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에 감동을 주는 찬양으로 마무리합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유 24-25절)
이 찬양의 감격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축복하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설 때 우리는 흠이 없고 기쁨으로 충만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단 옹호자들과 방탕한 자들과 싸우기만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최종 승리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구주”를 찬양하며, 세상에 다른 진리는 없습니다. 우리가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수호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학이나 변증론도 올바른 방법으로 쓰인다면 예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우리의 마음이 새로움을 받아 주의 진리를 위한 싸움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유 25절)
유다의 짧은 편지는 거짓된 가르침에 대한 강력한 경고지만, 동시에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예배에 관해 가장 아름다운 표현들 중 하나로 글을 맺고 있습니다. 유다는 구원의 영광을 높이는 긍정적인 내용의 편지를 쓰기 원했지만, 초대 교회들에 침투하고 있는 악한 영향이라는 위급한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룬 이후에 유다는 하나님의 본질에 관해 기술하면서 우리를 예배하도록 부르고 있습니다. 편지의 말미에 유다는 넘치는 찬양의 ‘송영(Doxology)’으로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능력으로 우리를 지키십니다. 그는 ‘통치하시는 주님’을 통해 그의 끝없는 은혜를 보여주시며, 우리에게 믿음의 진리를 맡기셨습니다. 그는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이시며,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를 그분의 영원한 임재로 이끌기 위해 ‘수만의 거룩한 자들과 함께’(유 14절) 주 예수를 보내실 때, 택함 받은 자들을 구원하려 다시 오실 분이 바로 이 하나님이십니다.“
유다서의 마지막 절은 기독교 공동체의 축도의 원형입니다. 또한 가톨릭이나 정교회, 성공회등에서 사용하는 기도문인 영광송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기도 합니다.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유 25절)
믿는 자들에게는 그날이 큰 기쁨의 시간이 되겠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구세주 하나님은 또한 그 마지막 날에 공의로운 심판자가 되셔서 불경건한 자들과 반역하는 천사들을 단죄하실 것입니다. 유다서의 이 엄중한 선언은 우리와 우리의 예배 공동체를 돌아보는 기폭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유다서를 통해 몇 가지 예배의 통찰을 배웁니다. 첫째, 예배는 오직 복음의 진리에 충실한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유 3절)
둘째, 예배는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반영해야 합니다. “5.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5-7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 15절)
셋째,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커지는 마음의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20.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 20-21절)
넷째, 기쁨의 예배는 우리가 그분의 영광스러운 임재 안으로 들어갈 때 천국에서도 계속됩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유 24절)
다섯째, 참된 예배는 하나님 그분 자체에 집중합니다.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유 25절)
기도를 포함해 모든 예배는 성령님을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유다는 독자들에게 ‘성령으로 기도할 것’을 촉구함으로써 우리에게 이 점을 일깨워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유 20절)
유다는 그들이 마치 ‘성령에서 벗어나’ 기도하는 것인 양 열등한 방식으로 기도한다고 나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유다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에서 믿을 만한 수단, 즉 “성령 안에서”라는 신령한 능력을 말함으로써 더욱 열심히 기도하도록 격려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위해 모일 때마다 성령님께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2.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 3:2-3)
모든 그리스도인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그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힘주셔서 예배의 모든 순서를 진행하도록 하십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성령님은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부분이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12.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2-13)
그리고 영적인 진리를 이해하도록 하셨습니다.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0-13)
또한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을 확신시키셨습니다.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5-16)
그리고 우리가 힘들 때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6-27)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통로를 여십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교회를 세우신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그리고, 성령님은 예배를 포함하여 공동체의 모든 삶의 영역이 기능하도록 교회에 은사를 내려주십니다. “11.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1-13)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모였을 때 성령의 임재는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영에 큰 확신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찬양과 예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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