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 로리 목사는 21일(현지 시간) 크리스천포스트(CP)에 기고한 칼럼에서 “여왕 폐하는 영국과 그 너머에 도덕적 등대였다. 이것은 그녀가 공개적으로 자주 언급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결과였다”고 했다.
이어 “봉사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일생 동안 수백만 명과 접촉하게 했지만, 관계를 키워갈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이 수준의 리더의 위치는 가깝거나 친한 친구가 거의 필요치 않다”며 “하지만 빌리 그래함이 그들 중 한 명이 되었음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로리 목사는 “그들의 우정은 1955년에 시작되었고, 영국에서 기독교의 미래를 만든, 그래함의 역사적이며 큰 승리를 거둔 십자군 운동이 있은 지 1년 후였다. 영국에서 그의 설교는 영국 시민과 그들의 군주에게 부흥과 같은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했다.
1954년 십자군 원정은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이 그래함 목사를 개인적으로 초청한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이후 그래함 목사가 여왕과의 첫 만남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빌리와 여왕은 60년에 걸쳐 우정을 누렸고, 그는 여왕의 신앙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의외의 동지애였다”며 “그래함은 비밀리에 프로 야구 선수가 되기를 바랐던 낙농가의 아들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0세기와 21세기에 늘 그녀 자체만으로 유명했던 유일한 한 사람”이라고 했다.
로리 목사는 빌리 그래함 목사에 대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결코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 그는 항상 대화를 남에게 돌리고, 타인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다”고 회고했다. 또 여왕은 “높은 직함과 지위에도 불구하고 이와 비슷한 성품을 지녔었다. 침착함과 우아함, 진정한 겸손과 예리한 유머 감각을 가졌다”고 했다.
로리 목사는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의 말을 인용, “부친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보기 드문 겸손과 품성을 지닌 여성’이라고 말씀했다. 또 여왕 폐하의 개인적인 신앙이 그녀의 삶과 통치에 있어 닻을 내린 원동력이라고 하셨다”라며 “여왕은 수십 년간 영국 국교회를 이끄는 일을 도왔고, 자랑스럽게도 ‘신앙의 수호자’라는 직함을 지닌 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왕의 공식적인 직위를 감안할 때, 어떤 종교나 목회자를 편애할 수는 없었지만 때때로 힘과 격려를 얻기 위해 빌리에게 의지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녀가 빌리 그래함의 동행과 조언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아울러 “영국은 빌리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였고, 여왕을 자주 방문할 기회를 제공했다. 빌리와 루스 그래함은 설교 약속을 잡기 위해 윈저와 샌드링엄에서 최소 12번 이상 여왕을 만났다. 여왕은 심지어 피드백을 받고자 연례 크리스마스 방송의 연설 연습을 그에게 들어봐 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이어 “그 방문은 그들의 우정과 동료애를 더욱 깊게 했다. 그래함은 여왕과 그녀의 가족을 위해 매일 기도하기로 서약했다”며 “그래함은 점차 그녀의 신앙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덧붙였다.
로리 목사는 끝으로 “둘의 우정은 상호 존중과 존경의 우정이었다. 그들은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수백만 명의 마음에서 존경받으며 두 사람을 인도한 신앙을 공유했다”고 결론지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