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어린 시절에 당시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참 순수했던 것 같다. 반면 요즘 아이들은 너무 무섭다.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하고 꾀도 많고 약았다. 예수님이 오셔서 지금 아이들을 보신다면 “누구든지 어린아이 같지 않고는 절대로 지옥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을 것 같을 정도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천국에 들어가는 최적의 모델로 제시하신다.
눅 18:15-16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2]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 아이 같은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마 18:4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3]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 아이들 같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눅 18:15절에 ‘어린 아기’라는 말이 나온다. 이 헬라어는 ‘브레포스’(βρέφος)란 중성명사이다. 문자적 의미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유아’를 가리킨다.
[4]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가 8번 사용되었는데, 이 구절 외에 6번이 ‘아기’ 또는 ‘유아’ (baby or infant)로 사용됐다. 눅 18:16절과 마 18:4절에 나오는 ‘어린 아이’라 번역된 헬라어 ‘파이디온’(παιδίον)은 ‘어린 아이’(child)라기보다는 ‘아기’(infant)라 번역해야 한다(눅 18:17). ‘아기’(infant)와 ‘어린 아이’(toddler)는 다르다. ‘어린 아이’(toddler)는 ‘걸음마를 시작한 1살에서 4살까지의 아이’를 말한다.
[5] 정리하면, ‘βρέφος’는 ‘갓 태어난 아기’(new born baby)를 말하고, ‘παιδίον’은 그보다는 조금 더 자란 아기(infant)를 뜻하고, ‘어린 아이’(toddler)는 그보다는 더 자란 ‘아이’(child)를 의미한다. 눅 18:15-17절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존경하는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아기들을 그분께 데리고 오자 피곤하신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고 막았다. 그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기’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어린 아기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면서 이유를 밝히신다. 그 이유를 유아는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우리도 아기들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기와 같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말이다.
[7] 이때 ‘하나님 나라를 어린 아기와 같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다윗이 기록한 시편 131편이 큰 힌트를 준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기’가 그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8] 이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이다. 하나님이 계신 존전에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기뻐하며 지은 시이다. 그러면서 1절에서 다윗은 자신을 겸손히 낮춘다. 마음의 교만을 제하고 눈에 오만을 빼낸다. 자신이 이룬 큰 일, 업적을 내세우는 등 자신을 높이는 일을 하지 않는다. ‘어린 아기와 같은 겸손’을 뜻한다.
2절에서 다윗은 어린 아기같이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원한다.
[9]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어머니를 완전히 믿고 의지하여 고요와 평안을 누리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다고 한다.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고 철저히 그분을 믿어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자 말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린 아기’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의 모습다.
톰 라이트(Thomas Wright)는 이렇게 설명한다.
[10]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은 엄마 젖을 먹고, 엄마와 눈을 맞추면서 환하게 웃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그렇다.
다윗은 3절에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불러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라라”고 권면한다. 여기서 ‘바라다’는 ‘기다리다’, ‘소망하다’란 의미를 갖는데, 여호와께 믿음을 두고 그가 이루실 것을 확신하며 기다리는 것을 뜻한다.
[11] 이것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자세이다. 그분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가지란 뜻이다. 젖 뗀 아기가 어머니를 신뢰하여 그 안에서 온전한 평안을 누리듯,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이와 같다. 혼자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제 멋대로 일을 처리하다가 사고를 치는 ‘꽤 자란 어린 아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12] 평소 우리가 생각했던 ‘다 자란 어린 아이’가 아니라 베이비처럼 ‘자기의지나 자기주장이 전혀 없는 어린 아기’를 뜻한 것임에 주의해야 한다. 막 9:33절에 보면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라 되어 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 하나를 직접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셨다’고 표현한다. 7살 정도로 다 큰 아이가 아니라 ‘겨우 일어설 수 있는 어린 유아’임을 볼 수 있다.
[13] 다시 말해서, 부모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의지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어린 아기나 유아처럼 되어야 천국백성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오늘 나는 어떤 사람인가?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며 혼자서 자기 생을 영위해가려는 어린 아이인가, 아니면 그 어린 아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성숙하고 완전하다고 생각하며 제 멋대로 살고 있는 성인인가?
[14] 오늘 말씀을 통해 어린 아이도 성인도 아닌, 철저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영적 아버지 되신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어린 아기’나 ‘유아’ 같은 자로 살아야겠다 다짐해본다.
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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