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피아노를 위한 멜로디를 주의 깊게 읽어 보았습니다. 몇 개의 한국식 반음계로 이루어진 5음 음조로 쓰여진 멜로디 곡선들로 인해 멜로디들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노래 성격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반주 또한 그러했습니다.
당신은 면학 장학금을 받고 프랑스어와 서양 음악기술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프랑스인들에게 한국 음악을 알리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당신이 파리예술학교 우리 학과의 학생으로 입학하게 된 것을 기꺼이 환영하는 바입니다."
1953. 9. 24. - 올리비에 메시앙(파리국립음악원 음악분석 교수)
위 글은 20세기 유명한 프랑스 출신의 현대음악 작곡가 올리비아 메시앙(Olivier Eugène Prosper Charles Messiaen,1908-1992)이 1953년 9월 어느날 파리 예술음악학교 작곡과에 지원한 나운영 에게 그가 제출한 작품 중 "아흔 아홉양" 이란 곡을 보고 평가한 글을 "나운영 기념 사업회" 사이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20세기 초 부터 서양음악이 한국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이래 초기 대표적인 교회음악 작곡가들 중 한 인물을 꼽으라면 나운영 선생님(1922-1993)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 6.25 전쟁의 혼란스러운 한국의 역사속에서 젋은 시절을 보내며 음악의 재능을 발견하고 일본에서 음악을 공부고 좀 더 깊은 음악학문 연구를 위해 프랑스 유학을 결정하고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셋째 형인 나순영 (경성제대 의학부 졸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 조교수)이 6.25때 북한군에 의해 납북됨으로 인해 가족이 연좌죄에 적용되어 파리 국립음악원으로 부터 공식적으로 입학을 허락받았지만 유학이 좌절 되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한국적인 우리 전통 음악과 서양음악을 통합하여 여러 찬송가 시편가들을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교회음악 발전에 좋은 영향력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가 쓴 작품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성가곡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로 이 곡은 오늘날 까지도 교회에서 많이 애창되고있는 극히 한국적인 시편 성가곡입니다. 한 편 이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내면에 담긴 깊은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 곡은 우리 민족이 전쟁으로 인해 황폐되고 암울했던 배경속에서 하나님이 나운영 작곡가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삶이 평탄하든 험하든 상관 없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생수를 마시는 법을 우리 민족에게 배우게 한 소중한 메시지를 주셨던 작품으로 필자에게 다가옵니다.
"나운영 기념 사업회" 에 나타난 기록에 의하면 그 때가 6.25전쟁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던 1953년 5월 3일 주일, 당시 나운영 선생님은 전쟁으로 인해 부산으로 내려가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던 때 였습니다. 그 곳 해군 정훈학교 채플( Chapel) 에서 찬양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채플에 담임으로 섬기고 계신 분은 정달빈 목사님(후에 초대 해군 군종감이 되심) 이셨는데 그가 나운영 선생님에게 "외국의 명 성가들도 좋지만 한국인이 만든 성가를 만들어 한국의 정서가 깃든 음악을 만들면 어떻겠는가?" 라는 주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피난 보따리로 가득찬 4식구가 비좁게 지내고 단칸방으로 돌아온 그는 그 날 밤 아픔과 고통속에 있는 우리 민족에게 시편 23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로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영감을 받은대로 오선지에 멜로디를 써 내려갔습니다. 4분이 채 못되는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곡을 완성짓게 되었고 그 이후로 이 곡은 한번도 수정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습니다.
쥬세피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1813-1901) 가 오페라 '나부코(Nabucco)' 를 만들어 자신의 민족이 오스트리아로부터의 정치적 속국이 지속되고 있는 아픔을 그리며 이태리적인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는 중세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에 빗대어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걸작이라는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를 만들어 독일의 민족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본 윌리암스(Ralph Vaughan Williams, 1872-1958)는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자 1차 대전의 참전 용사였던 본인이 또 본인의 조국인 영국이 전쟁으로 인한 큰 아픔을 겪었던 슬픔을 기억하며 평화를 호소하는 칸타타 '주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옵소서 (Dona Nobis Pacem)' 라는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 민족의 얼과 혼을 기반으로 하나님이 주신 창조성을 기발하게 사용하여 자신들의 언어와, 선율이 담긴 음악으로 독특하게 만들어 민족음악을 드러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운영 선생님은 당시 우리 민족의 아픔을 국악의 선율은 아니지만 전형적인 한국의 목가적 형태로 서양적 작곡기법에 우리 민족의 선율을 천재적인 영감으로 담아놓은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명한 성경 주석가요 신학자인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Charles Haddon Spurgeon,1834-1892)은 시편 23편을 "이 시를 새에 비유한다면 종달새에 비유할 수 있을것이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이유는 종달새는 노래하면서 날아오르고, 날아오르면서 노래하고, 마침 멀리 날아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노래소리는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나운영 선생님도 이곡의 시상을 떠올리며 이와 같은 마음을 가졌던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전쟁의 폐허속에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끊임없이 사랑하시기에 우리는 어떤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송축하는 노래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선율속에서 담아놓았던것 같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향해 주시고자 하는 교훈을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의 말을 인용해 담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주된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려는데 있는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우리를 그의 사랑에 아주 기쁘게 머물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드시려는데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마음에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윤임상 교수(월드미션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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