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로’(Sola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Soli Deo Gloria)의 다섯 가지 기치인 ‘오직’(Only)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기본적이며 핵심적인 원리 중의 하나인 ‘만인 사제직’은 모든 신자는 사제의 중재 없이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벧전2:9, 계1:6, 5:10). 그러기 위해선 모국어로 성경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모국어로 찬송하며 예배드려야 합니다. 이의 실현을 위해 루터는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였고, 기존의 라틴어 독일어 미사로 전례 개혁을 했으며, 독일어 회중 찬송인 코랄을 만들었습니다.
독일어 성경
루터는 그리스도 교인들의 신앙생활의 유일한 토대로 성경을 강조하였습니다. 전통이나 교황의 교서가 신앙의 중심이 되어선 안 되고,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성에 피신하여 머무는 동안 헬라어 신약성경과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각각 독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신약전서는 1522년 9월에 처음 출판되었고, 1534년에 외경과 함께 구약과 신약전서를 담고 있는 완전한 성경이 출판되었습니다. 루터는 1545년까지 본문을 계속 개선했습니다.
루터의 목표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루터의 번역은 동시대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읽기 쉬운 문체였고, 당시 여러 방언으로 나뉘어 있던 독일어를 표준화시켰습니다. 영어판인 흠정역(KJV)과 같이 루터의 성경은 독일어 정립을 도와준 문학적인 고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루터의 번역은 최고로 훌륭한 독일어 작품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구텐베르크는 그가 발명한 인쇄술로 면죄부도 출판하였지만, 루터의 성경을 출판하여 더 멀리 보급되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로써 종교개혁은 교황과 교회가 아니라 성경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독일어 미사
루터는 1523년 미사의 전례를 개혁했습니다. 그는 당시 익숙한 전통적인 의식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선 라틴어 미사를 그대로 존속시킨 채, 주로 덜 교육되고 신학 문제에 대한 경험이 적은 사람들을 위해 ‘독일어 미사’(Deutche Messe) 전례를 만들었습니다. 독일어 미사는 회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참여할 수 있었으며, 공적 기도문도 대부분 모국어로 드려지게 되었고, 찬송도 성가대와 회중이 음악을 적절히 나누어 부르게 하였습니다.
루터교 예배는 1526년부터 16세기 말- 17세기까지 서로 다른 두 가지 전례를 함께 실행했습니다.
다음은 루터가 과감하게 수정하여 만든 ‘독일어 미사’(1526) 순서입니다.
초입송(Introit Spiritual Song or Psalm) - 기도송(Kyrie eleison) - 인사와 짧은 기도(collect) - 서신서 – 찬송(German Hymn) - 복음서 봉독– 신앙 고백(Creed) – 설교 - 성찬 성례전 - 주기도 해설 – 친교(Service of Communion) - 성만찬 제정에 대한 말씀 봉독과 분병, 분잔 - 성만찬(Verbna Testamenti(Sanctus or Agnus Dei) - 성만찬 후기도(Thanksgiving Collect) – 축도(Aaronic Benediction)
루터는 ‘기도송’은 교회력 계절에 따라 다양한 멜로디를 사용하도록 허용했습니다. ‘영광송’(Gloria in excelsis)은 전례 순서에 넣거나 생략하거나 지역 목사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전통적인 ‘영광송’이 보류된 후 처음 행한 1725년 대림절 독일어 미사에선 ‘기도송’에 이어 데시우스(Nikolaus Decius)의 코랄 ‘하늘 높은 곳에 영광’(Allein Gott in der Höh'sei Ehr)이 추가되었습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에 ‘알렐루야’ 금지 관행에 대해서 루터는 “알렐루야는 그분의 고난과 승리의 기념이 영원한 것처럼 교회의 영원한 목소리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단 부속가(Sequence)에 대해선 전례 순서에 넣거나 생략하거나 지역 목사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분병과 분잔 후에는 루터가 1524년에 지은 코랄 ‘하나님을 찬양하고’(Gott sei gelobet und gebenedeiet)와 ‘예수 그리그도 우리 구주’(Jesus Christus unser Heiland)를 찬미토록 하였으며, 가능한 한 회중이 미사 중 삼성송과 아뉴스데이 직후에 노래할 독일어 찬송이 많기를 바랐습니다. 바울이 언급한 것(골 3;16)처럼 복음적이고 영적인 노래가 많이 만들어지기를 원했습니다.
루터는 성만찬 예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성만찬 제정사에 포함시켜 단순화했고, 성만찬 기도와 그와 관련된 전통적인 요소들을 대폭 감소시켰습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예배의 틀은 오늘의 루터교 예전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코랄
시인이자 음악가이기도 했던 루터는 코랄을 종교개혁 운동에 기둥으로 생각하여 그 목적에 어울리는 찬송 시와 멜로디에 어울리는 레퍼토리를 만들고자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루터는 회중이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투철한 신념에 바탕을 두고 모국어인 독일어 가사와 단순하게 노래하기 쉬운 코랄 멜로디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루터는 회중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세속 가곡과 같이 한 개의 음표에 한 개 음이 들어가는 음절식으로 된 단순한 멜로디를 만들었습니다. 회중은 코랄 멜로디를 유니즌으로 부르게 했지만, 합창으로도 노래할 수 있도록 혼성 4부로 만들었습니다. 긴 멜로디는 페르마타를 두어 회중이 한숨에 한 구절을 쉽게 노래할 수 있도록 악구(樂句)를 구분했습니다.
많은 코랄의 자료가 필요했던 루터는 세 가지 방법으로 코랄을 만들었습니다.
첫째는 원래 불러 익숙한 라틴어 찬송 시의 대부분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개조하였습니다. 라틴어 시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여’(Veni redemptor gentium)는 ‘Nun Komm der Heiden Heiland’으로, 테데움(Te deum laudamus)은 ‘주님이신 하나님이여 우리는 주님을 찬송합니다’(Her Gott, dich loben wir)로, ‘이같이 기쁨 넘치는 날’(Dies ist laetitiae)은 ‘Der Tag, der ist so freudenreich’로, ‘니케아신조’(Credo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는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Wir glauben all’ an einen Gott)로 번역하였습니다.
둘째는 창작된 독일어 찬송 시를 라틴어 성가나 세속 가곡 선율을 빌려 만들었습니다. 콘트라팍툼(Contrafactum)이란 방법입니다. ‘높은 하늘에서 내려오셨네’(Vom Himmel hoch da komm ich her)는 ‘낯선 땅에서 찾아왔네’(Aus freedom Landen komm ich her)이란 세속 춤 곡에 붙였고, 찬송 시 ‘오, 세상이여, 이제 나는 떠나야 한다’(O Welt, ich muss dich lassen)는 ‘인스부룩, 나는 떠나야 한다’(Innsbruck, ich muss dich lassen)란 곡으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찬송가 145장, ‘오 거룩하신 주님’(O Haupt voll Blut und Wunden)은 하슬러(Hans Leo Hassler)의 연가 ‘내 마음은 그 소녀 때문에 설레이네’(Mein G'müt ist mir verwirret)의 곡조에 붙인 것입니다.
셋째는 자신과 동료들과 함께 성경 본문을 기초로 찬송 시를 짓고, 멜로디를 작곡하는 창작입니다. 시편 46편에 의한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 시편 124편에 의한 ‘하나님이 우리 편이 아니라 하셨다면’(War Gott nicht mit uns diese Zeit), 시편 130편에 의한 ‘내가 깊은 곳에서’(Aus tiefer Not schrei’ ich zu dir) 등은 루터가 창작한 코랄입니다.
루터는 코랄을 예배에 사용하기 위해 기존의 많은 찬송 시와 멜로디를 보존하며 전통을 계속 구축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523년에 이미 예배에 코랄을 사용하고 있었고, 계속하여 240여 편의 코랄을 만들었습니다. 루터는 모두 약 37편의 찬송 시를 지었고, 직접 작곡까지 하였습니다.
코랄의 초기 자료는 1524년에 출판된 2권으로 ‘8개의 성가곡집’(Achtliederbuch)과 ‘엔키리디온’(Enchiridion order eyn Handüchlein)입니다. 모두 회중이 유니즌으로 노래한 코랄 선율만 되어 있습니다.
코랄은 16C 프레토리우스(Michael Praetorius)의 다합창 작품(polychoral pieces)과 하슬러의 시편 작품(psalm settings)을 출발점으로 쉿츠(H.Schutz)는 코랄 텍스트를 기반으로 수난곡과 마니피카트를 썼으며, 요한 쉐인(Johann Schein)의 종교 마드리갈과 사무엘 샤이트(Samuel Scheidt)의 오르간 음악도 루터 작품의 후손입니다.
18세기 초 노이마이스터(Erdmann Neumeister)는 루터교 전례 음악에 낭송과 아리아로만 구성된 칸타타 형식을 도입하였고, 이후 코랄을 기반한 교회칸타타로 발전했습니다. J.S.바흐는 칸타타, 수난곡, 모테트, 오르간곡으로 독일 바로크 시대의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텔레만, 북스테후데의 작품을 시작으로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와 교향곡, 스포, 마이어베어, 리스트, 라프, 생상스, 브루크너, 브람스, 타네예프, 부조니, 잔, 말러 ...
루터의 코랄은 세기를 너머 음악의 원천입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