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화성에 피카르디 3도(Picardy third) 혹은 피카르디 종지(Picardy cadence) 라는 하모니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조음악을 마지막코드에3음에 반음을 올려 장조로 전환해서 끝내는 방법입니다. 르네상스 이전에 작곡가들이 단조의 화성으로 곡이 끝나는 것은 무언가 완벽하지 못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이러한 종지를 사용하여 환희와 기쁨 그리고 완벽을 표현하며 음악을 종결하려 했습니다.
이 용어는1768년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곡가인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에 의해 처음 공식적으로 이름을 붙여 작곡가들이 이 화성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음악가 베토벤(L.v Beethoven 1770-1827) 의 생애를 보면 이 피카르디 종지를 떠오르게 됩니다. 아울러 그가 쓴 유일한 수난 오라토리오(Passion Oratorio Music) Christus am Ölberge(Christ on the Mount of Olives), Op.85를 보면 또한 이 종지 화성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 속에 승리의 부활을 나타내며 복음의 완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은 중도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았던 불행한, 그러나 위대한 음악의 유산을 남겨 인류역사에 큰 공헌을 한 결코 불행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작곡가였습니다.
CS 루이스(C. S. Lewis 1898-1963)) 가 "제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인간의 타락을 믿기 때문입니다" 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반대를 표방하며 역설을 펼치는 것처럼 베토벤은 음악가 중 자신의 고통을 승리로 승화시켰던 대표적인 역설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 원동력은 그가 갖고 있는 부활 신앙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위대한 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20대 후반부터 점점 심해지는 청각 장애로 인해 사회 생활과 음악인으로서 큰 어려움, 그리고 큰 슬픔을 겪자 급기야 자살 충동까지 느끼게 되었다고 그가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인 "하일리겐 슈타트(Heiligenstadt)" 를 통해 밝혔습니다.
베토벤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프랑스 시인 알프레도 드 뮈세(Alfred de Musset 1810-1857)는 마치 베토벤이 고통을 통해 깨달은 모습을 연상하듯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인간은 견습생, 고통은 그의 스승이니 고통받지않는 한 그 누구도 자신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참기 어려운 법칙이지만, 최고의 법칙이다. 세상 처럼 오래된 법칙인 것이다. 이 법칙은 우리가 불행의 세례를 받고 슬픈 값을 다 치른 후에 사야 하는 운명이다."
한편 "시시각각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마음의 작은 틀어짐과 소요 속에서 또 인생의 배가 뒤집힐 만한 거친 풍랑 속에서 예수의 품을 파고 들라고 우리를 다독인다"고 이어령(1934-2022) 선생님이 표현한 글이 당시 베토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필자는 생각되었습니다.
결국 베토벤은 큰 고통의 대가를 치르고 나서 그의 내면에 담겨있는 아직 꺼내지 못한 예술의 세계를 담아야 한다는 깊은 깨달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급기야 1801년경 그는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고통의 절정을 치르고 난 이후로 깊은 영감을 음악으로 담아내어 주옥 같은 명곡들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그 선율들을 통해 오늘날 까지도 우리에게 슬픔을 위로해 주며 희망과 환희를 선사해 주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삶에 극적인 전환이 된 1년 후인 1802년에 드디어 그의 생을 표현하듯 그의 수난 오라토리오를 작곡하게 됩니다. 베토벤은 이 시기가 예수 그리스도 생애의 마지막 생애를 극적으로 묘사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론을 증명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작곡자들이 수난음악을 쓸 때 그리스도의 수난 만을 집중적으로 음악으로 묘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이 수난 오라토리오를 작곡하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수난 과정을 극적으로 재 구성하고 마지막에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크게 부각 시키려 하였습니다. 그것이 이 오라토리오의 마지막 곡인 "할렐루야 합창"으로 베토벤 특유의 웅장함으로 부활의 대 서사시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천사들이 할렐루야로 찬양하는 모습을 표현하며 수난 오라토리오의 대미를 장식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최대의 형벌이라는 십자가 그 불행의 세례를 받고 모진 고통의 댓가를 치루셨습니다. 그리고 난 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복음의 완성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안겨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려는데 있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우리를 그의 사랑이 아주 기쁘게 머물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드시려는 데 있다는 창조목적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이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이 가장 뜨거웠던 때는 그리스도의 행적을 직접 목격했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였습니다. 이 부활신앙의 전통이 이어져 카타콤 기독교인들은 그 혹심한 핍박 속에서도 매 번 서로 만나면 첫 인사가 'He is Risen(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였다고 합니다. 이들이 가졌던 그 부활신앙이 1세기 후반부터 4세기 전반부까지 장장 250여 년의 혹심한 박해 속에서도 기독교가 절대 말살되지 않고 건재하게 되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진리는 영원 불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 이것이 기독교가 주는 분명한 메시지 입니다" 라고 C.S. 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초기 기독교 교인들은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고난, 그리고 부활을 매일의 삶 속에서 확인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부활신앙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똑같아야 한단 말입니다. 혹독한 오늘의 현 실속에 바른 진리들을 사수하며 사는 것이 정말 힘듭니다, 그런가운데 우리가 모든 것을 잃더라도 한가지는 결코 놓치지 말아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주는 분명한 메시지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 입니다.
2022년 부활의 시즌을 맞아 영원히 불완전할 것 같은, 그러나 완전하게 종지를 만든 피카르디 종지 화성을 기억합니다. 결코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암울한 고통을 벗어나 화려하고 웅장하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천사들의 합창으로 할렐루야를 표현했던 베토벤을 기억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만의 우아함과 화려함, 그리고 웅장함을 갖고 기독교가 주는 분명한 메시지 즉 그리스도의 부활을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 교인들이 일상에서 외쳤던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He is Risen!)" 이것이 우리 일상의 외침이 되어 그 부활의 정신을 따라 사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윤임상 교수(월드미션대학교)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