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트만의 신학
도서 「볼트만의 신학」

신학은 언제나 신앙을 동반하면서 말을 해야 하고, 신앙은 언제나 신학을 통하여 검증 받아야만 한다. 모든 신앙은 이미 나름의 신학을 포함하고 있다. 신학은 하나님을 통해 결정된 자기 실존에 대한 학문적인 자기 성찰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신학은 단순한 신앙 속에 이미 있는 그것을 학문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신학은 신앙 자체의 움직임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을 믿는다는 것은 순수하게 인간적인 모든 안정성을 포기함이며, 그 안정성을 오로지 하나님에게서만 찾겠다는 과감성이다. 다시 말해, 말을 믿는다는 것은 안정성을 볼 수 없는 곳에서의 안정이다. 그러므로 불트만은 인간의 결단과 희생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그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결단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려는가라는 막중한 이것이냐 저것이냐 앞에 세워져 있다.

박정호 – 볼트만의 신학

21세기 팬데믹 시대의 교회
도서 「21세기 팬데믹 시대의 교회」

1920-30년대 부흥 운동의 특징을 꼽자면 그것은 개인의 영적 지도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이전에 있었던 부흥 운동, 즉 1903년의 부흥 운동이나 1907년의 부흥 운동은 어느 특정한 개인이 주도했다기보다는 불특정 다수에 의해 진행된 집단적 신앙체험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65 그러나 1920년대 이후에는 특출한 개인에 의해 부흥회가 이끌어지는 유형으로 전개되었다.66 이 같은 현상은 조선 교회가 점차 외적 제도와 조직에 매달려 내적 생명을 상실해 가는 교회의 말기적 증상을 보여 주는 것이며, 민족적 현실은 3.1 운동 등 이후 패배주의와 허무주의로 표현되는 부정적인 것이어서 제도교회의 사회적응 능력에는 한계가 드러났다. 이런 때에 내적 신앙체험이 강조된 부흥 운동이 전개된 것이다.67 물론 그 이전에도 부흥 운동은 존재했었다.

최경식 – 21세기 팬데믹 시대의 교회

죽음같이 강한 사랑, 아가서
도서 「죽음같이 강한 사랑, 아가서」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여우들은 포도나무 가지, 뿌리를 파헤치거나 상하게 했다.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수정되어야 가을에 포도를 수확할 수 있는데, 작은 여우들은 포도원에 있는 들쥐를 잡아먹으려고 땅을 모두 헤쳐 버리거나 잔가지들이나 잎사귀를 씹고 꺾어 뿌리를 상하게 하고 심지어 포도 열매를 따먹기도 해 농사를 망쳐 놓았다. 그런데 솔로몬왕은 2:15에서 자신과 술람미를 위해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명령한다. 그러면서 지혜롭게도 솔로몬왕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포도원이라고 말함으로써 어려운 짐을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암시하는 듯하다. 참으로 놀라운 배려이자, 깊은 표현이다. 바로 이런 암시가 후에 술람미로 하여금 그녀가 사랑하는 자를 찾을 수 없을 때 스스로 길을 찾는 단서가 되고 술람미가 아름답게 회상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홍성아 – 죽음같이 강한 사랑, 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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