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의미
도서 「광야의 의미」

성령이 예수님께 내려오신 후,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약간의 혼동이 올 수도 있는데요. 바로 ‘예수님은 이미 광야에 계시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또 그것을 선포하기 위해 광야로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곳에서 요한을 만나셨고 세례도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이 예수님을 또다시 광야로 몰아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마태복음의 끝부분에 이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있는 다른 산에 서서(마 28:16),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라고 선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받는 고난과 죽음은, 예수님에게 마귀가 제시한 권세보다 훨씬 더 큰 권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마귀는 이 세상, 이 시대에 해당하는 일시적인 권세를 제시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결국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영원한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마귀가 제시한 권세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깨뜨리고 그 대신 마귀를 경배하는 조건으로 주어지는 권세였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28장에서 예수님에게 주어진 권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충성하고 순종함으로 받는 권세입니다.

폴라 구더(저자), 이학영(옮긴이) - 광야의 의미

질문과 함께 배우는 설교
도서 「질문과 함께 배우는 설교」

이천 년이 넘는 교회 역사는 교회의 성장과 배후에는 참된 설교가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교회 역사상 위대한 운동이 일어날 것을 알렸던 전조 현상은 언제나 참된 설교가 되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은 설교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설교는 교회를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은혜의 수단입니다. 설교는 서로 관련 없는 여러 가지 개념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주제를 구심점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개념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해돈 로빈슨은 “설교는 명중탄이 되어야지 산탄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설교는 하나의 과녁, 즉 중심주제를 겨냥해야 합니다. (중략) 중심주제가 분명한 설교는 청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기쁨을 선사합니다. 설교자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내용이 아니라 프레젠테이션, 바로 구조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설교의 차이는 내용이 아니라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좋은 설교구조에서 좋은 설교가 나옵니다. ‘무엇을 전할 것인가’뿐 아니라 ‘어떻게 전할 것인가’도 설교자의 임무입니다. 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땀 흘리고 수고하는 설교자의 설교는 마침내 불붙은 논리가 될 것입니다.

조광현 – 질문과 함께 배우는 설교

경계에 선 사람들
도서 「경계에 선 사람들」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많은 사람이 그리한 것처럼 적지 않게 놀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떻게 성경의 그 유명한 교회들이 이처럼 유적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 돌봄조차 받지 못하는 곳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원형이나 또한 모형이 된 것입니다. 강화 순례가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모형이 아닌 원형입니다. 성경은 원형이나 모형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또한 원형이 되어야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사회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을 앞두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미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진입하였습니다. 코로나 19처럼 이전에는 낯설었던 AI(인공지능), VR(가상현실), 메타버스, 자율주행과 같은 용어들이 코로나와 더불어 일상화 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전보다 더 빠르게 진입하는 일만이 남은 상황입니다. 코로나는 분명 위기이지만 단순히 이 어려움을 견디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세상은 달라지고 있고,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임경묵 – 경계에 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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