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그릇
©도서 「깨어진 그릇」

더 이상 절망과 슬픔의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여전히 병과 함께였지만 주저하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신앙이 우리가 마주한 인생의 문제를 해석하는 힘을 주었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인생의 위기를 한때 지나가는 소나기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며 가던 길을 계속 가기로 결정했다. '네 깨어짐 때문에 내가 너를 택했단다.' 나를 택해주셨다고 하셔서 더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다. 부서지고 실패한 내 인생에 찾아오신 예수님이 사랑과 희생으로 내 실패와 수치와 죄악을 모두 덮어주시고 가려주셨다. 삶으로 말해야 진짜다. 결국 말하는 습관과 표정, 행동에서 다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나님의 꿈으로 살고, 예수님의 성품을 내 인격으로 삼고, 성령께서 그분의 뜻대로 마음껏 일하시도록 내어드리는 내면', 이것들만 천국에 가져갈 수 있다.

김태훈 - 깨어진 그릇

욥, 모든 질문이 사라지던 날
©도서 「욥, 모든 질문이 사라지던 날」

오직 믿음은 비인격적 비감정적 복종이 아니라 온전하게 인격적이고 온전하게 동기까지 승복하는 힘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욥을 의롭게 보시는 이유가 발견된다. 욥은 진정한 믿음의 투쟁을 이제 막 시작했고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자기에게 일어나는 불신에 대한 분노와 불의도 다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이 불의해 보이는 현상에 의해 욥의 안에 있던 불의가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논쟁은 더욱 극단적으로 달리며, 그 결과 이 감정 깊은 곳의 불의와 불신을 더욱 드러내면서, 은연중 하나님 대신 자리한 '좋아 보이는' 세계관이 자신의 삶에 주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이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지 않고 해를 비추시고 비를 내리시는' 자유와 주권을 가지신 분이다.

김리아 - 욥, 모든 질문이 사라지던 날

복음의 회복과 세상 속의 교회
©도서 「복음의 회복과 세상 속의 교회」

예수 믿고 건강의 복, 물질의 복, 자녀의 복을 받는 것을 복음이라고 말하면, 그런 복들을 받지 못한 신자들은 예수님을 잘못 믿은 것이 된다. 또한 그렇게 해서 받은 복들을 제쳐두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할 때, 그렇게 해서 받은 복들보다 예수님의 뜻을 더 좇아야 할 때, 그런 복들을 쉽게 놓지 못한다. 왜냐하면 예수 믿은 목적이 그런 복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이 사라진다면, 예수 믿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이런 신앙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가 없다. 물론 예수 믿고 복 받자고 하는 신앙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부차적이고, 종종 복을 받기 위한 조건에 그친다. 정말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자신이 받은 복들을 놓아야 할 때, 그런 신앙은 좌초한다. 목적과 결과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채영삼 - 복음의 회복과 세상 속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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