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독교서회(서진한 사장)가 5일 오후 3시 구세군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한글과 조선예수교서회 간행물’이라는 주제로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30주년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개회식에서 환영사를 맡은 서진한 사장은 “대한기독교서회는 기독교 선교기관으로서, 1890년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제가 적산으로 몰아 거의 폐쇄되는 상황에서도 많은 서적을 발행했다”며 “그런데 그 서적들은 놀랍게도 신앙서적에 국한되지 않았다. 수학, 역사, 지리, 문학, 교양서적들을 두루 펴냈다. 그 뿐 아니라, 간호학, 해북학, 등 100여 종에 이르는 의학서적도 발행했다. 또한 「임산부 위생」이나 「간이 편물법」, 「열병든아희치료법」 등 당시 헐벗고 고통당하는 민초들에게 도움이 될 많은 서적들을 펴냈고, 권서인 등을 통해 이를 널리 배포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서적들이 한문이 공식 언어였던 시절에 한글로 출판되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어 “곧 한글날을 맞이한다. 한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연구에는 큰 공백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한글에 대한 대중의 상상력은 세종대왕이나 집현전 학자, 일제하의 한글 연구모임 정도를 맴돌 뿐”이라며 “하지만 15세기에 반포한 한글은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던 20세기 초가지 수백 년 동안 단 한 번도 공식 언어로 인정받거나 사용된 적이 없었다. 한글은 단지 아녀자들이 중·하층민들이 사용하는 비주류 언어였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나라를 잃은 지 30년이 지나지 않아 이 비주류 언어가 이 겨레의 주류 언어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선각자들이 한글 연구를 통해 독립운동을 펼치려 했던 것이나, 일제가 한글 사용을 강압적으로 금지한 것은 이미 한글이 우리 겨레의 주류 언어가 되었고, 그 언어에 민족혼, 독립정신이 담기게 되었다는 반증이다. 이 20~30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것이 창립 130주년을 맞는 우리의 질문”이라고 했다.
더불어 “이 대전환의 주요 동인(動因) 중 하나가 기독교였다는 것은 학계가 대개 인정하지만, 기독교의 역할에 관한 연구는 성경의 한글 번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우리의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며 “대한기독교서회는 초기부터 한글 출판의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많은 영역과 종류, 많은 부수의 책을 한글로 펴내고 널리 보급했으며, 특히 한영자전은 당시 서구 문명을 한글을 통해 받아들이는 역할을 함으로써 한글이 새로운 시대의 주류 언어가 되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한 연구는 대한기독교서회의 초기 출판물이 조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히는 것이지만, 동시에 한글 역사의 가장 극적인 시기를 밝히는 중요한 연구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어서 권재일 회장(한글학회)은 개회식 축사에서 “한글학회는 1908년에 창립, 일제강점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만들고, 표준말을 사정하고, 큰 사전을 편찬하면서 우리말, 우리글을 가꾸고 지키는 일에 온 힘을 다해 왔다. 비록 한글학회와 대한기독교서회가 하는 일에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말, 우리글을 가꾸어온 길은 하나였다고 생각한다”며 “학술회의가 대한기독교서회의 한글 보급 정신을 계승하여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귀중한 행사로 자리매김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후 발표회에선 허경진 교수(연세대 문과대학 명예교수)가 ‘한글과 조선예수교서회의 교양·문학 도서’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허 교수는 “한글은 한자의 대립어이다. 한글은 1894년 갑오개혁 때 우리나라 공용어가 되었으니, 조선성교서회가 설립된 1890년은 공식적으로 한자 시대였다”며 “갑오개혁 때 국문(한글)을 공용어로 선포했지만, 국가 문서에서 공식적으로 쓴다는 뜻이지 국민들에게 모두 한글을 사용하라는 뜻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고종실록」에서 말한 교양은 한문교육을 가리키며, 교양이 없는 군졸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국문으로 교과서를 편찬하여 가르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국가에서 한글 교과서의 효용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례”라며 “그해 11월 21일에는 고종이 칙령 제1호로 공문식제(公文式制)를 반포하였는데, 공문식 제14조에 ‘법률·칙령은 모두 국문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漢文)으로 번역을 붙이거나 혹은 국한문(國漢文)을 혼용한다’라고 했다. 한문을 공용어로 사용하고 필요한 경우에 언해를 덧붙이던 문자생활이 대전환을 이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후 1896년에 창간한 「독립신문」은 한글 전용이고, 1898년에 창간한 「황성신문」은 국한문 혼용이었다. 이 시기에 조선성교서회에서 간행한 책들도 필요에 따라, 또는 독자층에 따라 한글 전용을 하거나 국한문 혼용을 했다”며 “영국 Religious Track Society(성교서회)의 설립자 조지 버더가 주일학교에서 글을 배워 읽기 시작한 독자들이 어려운 내용의 성서보다는 저질 서적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성경보다 쉽고 명쾌한 언어로 쓰인 데다가 삽화도 들어간, 재미난 기독교 서적을 보급할 필요’를 주장했는데, 예수교서회의 교양서적이 바로 그러한 책”이라고 했다.
그는 “서회의 가장 큰 업적은 조선시대 양반 지식인들에게 천대받던 한글의 가치를 발견하고, 기독교의 진리를 다양한 형태의 쉬운 한글 책으로 번역 출판한 것”이라며 “선교사들이 예견했던 것처럼 한글로 제작된 전도서가 누구에게나 읽혀졌고, 한글 출판물은 늘어나지만, 한문 출판물은 재고가 쌓여갔다. 독자의 시대가 교체되면서 한문 독자는 점점 줄어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국가가 서적 출판을 통제하여 한문으로 경전 중심의 유교 독서물만 출판하고, 백성들에게 도덕을 권장하는 「삼강행실도」 류의 책만 한글로 찍었으며, 그나마 읽지 못할까 염려하여 삽화를 편집했다”며 “서점이 없다 보니 국가, 불교 사찰, 민간(종가와 서원)에서 간행하는 책은 무상으로 배부하는 것이 기본이었으므로 투자금이 순환되지 않아 출판문화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구텐베르크가 독일어 성서를 출판하고 판매 대금을 재투자하여 채색 그림이 들어간 화려한 책을 제작하게 된 것과 달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성경보다 쉽고 명쾌한 언어로 쓰고 삽화도 들어간, 재미있는 기독교서적을 보급하자’는 RTS(성교서회)의 설립자 조지 버더의 생각을 받아들여, 서회에서는 쉬운 한글로 번역하고 그림을 넣어서 게일의 「텬로력졍」, 베어드부인의 「동물학」, 「식물학」 등을 출판했는데, 이 그림들은 지금도 재미있고 유익한 볼거리”라며 “서회는 영업을 기본으로 하는 출판사지만, 교회뿐만 아니라 병원, 학교, 감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출판물을 비치하여 책과 거리가 멀었던 일반인들에게 독서 습관을 정착시키는 데도 큰 몫을 했다. 1903년 한성감옥서에 설치된 최초의 감옥 서적실에 서회가 기증한 책이 가장 많았으며, 이 책들을 읽은 많은 개화파 지식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했다.
허 교수는 “서회는 한자의 효용성도 인정하여, 전도서라든가 어린이들의 독서물은 한글 전용으로 편집하여 누구나 읽어볼 수 있게 하고, 강의나 강연 교재들은 국한문 혼용으로 편집하여 제한된 지면에 많은 정보를 전달했다. 그리고 좋은 읽을거리나 출판사가 없던 19세기 말에는 어떤 책이든 제작하면 독자가 있고 판매가 되었지만, 좋은 기획을 세우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했다”며 “서회와 같은 시기에 출발한 The Trilingual Press는 자체 인쇄기도 마련하여 좋은 책과 신문, 월간지, 전도지 등 다양한 형태로 출판시장의 선두가 되었지만, 경쟁자가 늘어나고 교단 연합을 이루어내지 못해 수요가 줄게 되자 문을 닫고 말았다”고 했다.
아울러 “한글 전용의 큰 틀을 세우고 선교사와 한국인이 함께 번역하여 출판 시장을 넓혀간 서회는 기획과 필자 확보, 교단 연합과 지원, 편집과 판매라는 출판사의 여러 가지 필수적인 요소를 모두 확충하면서 기독교인이 아닌 독자들도 찾는 출판사가 되었다”고 했다.
한편, 이후에는 안예리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가 ‘근대 한국어와 게일의 한영자전’, 서신혜 교수(한양대 인문대학)가 ‘한글과 조선예수교서회의 여성·아동 도서’, 여인석 교수(연세대 의과대학)가 ‘한글과 조선예수교서회의 보건·의학 도서’라는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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