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청소년기에 해방을 맞이했지만, 곧 한국전쟁으로 피난민 신세가 됐고, 전후 폐허가 된 땅에서, 그것도 폐결핵으로 죽음을 기다리던 한 소년에게 전해진 복음은 그 소년의 생각, 꿈, 믿음, 말 속에서 큰 나무로 자랐습니다.
조 목사님께서 남의 밭을 빌려 천막을 치고 시작한 교회는 기독교 2천 년 역사상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1970년대 한국인이 해외에 나가기조차 쉽지 않던 때부터,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에 순종해 72개국에 1,500만 명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이루 셀 수 없는 기록적인 인파가 운집했고,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 치유와 기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한 사람이 이루었다고는 볼 수 없는 구제, 사회복지, 인권, 환경 등에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 목사님을 이런 업적보다는 '성령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2016년 10월 10일 미주 복음화를 위해 LA를 방문하셨을 때, 성회를 마치신 후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기뻐하셨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예배당을 가득 채운 각국 사람이나 언론의 관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예배에 성령 하나님이 충만히 임재하시는 것을 보았다"는 그 한 마디뿐이셨습니다. 2019년 한국에서 찾아뵈었을 때도 부족하고 못난 제자의 손을 꼭 붙잡고 기도해 주시는 것으로 위로와 사랑을 대신하던 분이셨습니다.
이제 조 목사님은 떠나셨습니다. 20대 청년이던 저의 가슴에 불을 붙여 파라과이, 브라질, 미국에 선교사로 보내셨던 그분을 더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 목사님과 함께하신 성령께서, 이제는 우리가 그 남겨진 사역을 감당하라고 명령하심을 깨닫습니다. 그토록 사모하던 하나님 품에서 편히 쉬십시오. 조용기 원로목사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나성순복음교회 담임 진유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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