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작가 '엘리아스 A. 슬락센'(Elias A slaksen) 씨가 이 달 갓튜브(godtube)에 올린 '악한 판단'과 '의로운 판단'의 차이점에 관한 글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 요한복음 7장 24절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 요한복음 8장 1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 요한복음 9장 39절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 요한복음 12장 47절 - 48절
<악한 판단>
두 가지 종류의 '판단'(Judgement)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빈번하게 하는 것으로서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데...'라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행동을 꾸짖고 나무라는 판단이다. 흔히 이런 판단 후에는 누군가가 그렇게 안 좋은 행동을 했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을 드러내고, 그 사람의 행동과 대비되는 자신의 점잖은 모습을 자화자찬하는 식의 행동으로 흘러간다. 보통 이런 종류의 판단은 우리가 '뒷담화'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 있다. 이는 육체를 따르는 심판이다. 이런 판단은 쓰디쓴 맛을 동반하며, 경우에 따라 증오, 시기, 무정함, 무자비함 등을 내포하기도 한다.
<의로운 판단 - 경건한 판단>
첫번 째 판단과 대조되는 두 번째 판단은 경건한 판단이다. 이 판단의 목적은 듣는 이를 위해 진리를 증언하는 데 있다. 이 경우, '자기 자신'(Self)을 심판자 위치에 놓는 첫번 째 판단과 달리 '진리 그 자체'(The truth itself)가 심판자 역할을 한다. 죄인인 자신이 심판자 노릇을 하는 첫번 째 판단은 악한 판단인 반면, 진리가 심판자 역할을 하는 두번 째 판단은 의로운 판단이자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이다. 첫번 째 판단은 파괴가 목적인 반면, 두번 째 판단은 은혜를 베푸는 구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심판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 목적은 죄인을 돕는 데 있기 때문이다("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심판을 두려워하나이다" - 시편 119편 120절) 불의를 기뻐하고 거짓을 사랑하는 사람은 의로운 심판을 미워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의 마음과 행위가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심판을 싫어하는 사람은 불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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