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소장 윤여상 박사, 이사장 신영호 박사)가 ‘북한인권 가해자 정보 및 책임규명 모색 세미나’를 19일 오후 서울 중구 소재 광화문 센터포인트에서 개최했다. 이날 첫 번째 발제자로 김가영 NKDB 연구원이 '북한인권 책임규명을 위한 가해자 데이터 축적 프로젝트’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해당 프로젝트는 지난해 8월부터 1년 간 신규 탈북민 300명을 대상으로 직·간접적 인권 유린의 경험 및 북한 정부기관 근무자의 증언을 조사해 북한 인권침해 가해자로 지목된 350명을 신규 확보했다. 그런 뒤 NKDB 보유 데이터와의 교차 검증을 거쳐 그 범위를 350명에서 30명으로 좁혔다. 이후 북한법·국제인권법 전문가의 법률 자문 및 검토를 반영해 최종 결과를 내놓았다.
조사에 참여한 탈북민 300명 가운데는, 구금 및 신체적 자유 박탈 경험자가 113명(35%), 고문 경험자는 69명(22%)이었다. 성폭력 경험자는 9명(3%)이 포함됐다. 반면 북한인권 가해자 대부분은 시·군보위국 소속(21명)이었다. 이어 교화소·노동단결대·집결소 등 다양한 기관에 소속된 양상을 보였다. 당초 가해자들의 인적사항에는 이름·특이사항·거주지·직업 등과 함께 구체적인 가해 경위나 사건이 기록됐지만, 이날 발표에선 증언자 보호를 위해 소속과 직위만 공개됐다.
이날 NKDB가 공개한 비주얼아틀라스(Visualatlas.org) DB에 따르면, 북한의 인권유린 행태 가운데 고문·살해는 각각 보위부 및 교화소에서 주로 이뤄졌다. 주요 발생 장소는 함경북도 온성군 보위부(고문 667건), 함경북도 회령시 보위부(고문 265건), 평안북도 신의주시 보위부(고문 317건), 평안남도 개천시 개천 1호 교화소(살해 105건), 함경북도 회령시 진거리 12호 교화소(살해 424건), 함경남도 함흥시 함흥 9호 교화소(살해 159건)다. 강제낙태는 평안북도 신의주시 집결소에서 56건이나 이뤄졌다. 공개처형은 체육관·비행장·장마당 등 공공장소에서 총 2,972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김 연구원은 “북한인권 가해자의 구체적인 정보를 취득해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는 국제사회와의 협력 구도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와의 협력 구도에 북한당국의 동참을 유도하고, 지난 70여 년간 북한 정권이 저지른 반인도적 정책 및 행위에 대한 책임성을 강조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진 발제에서 한명섭 변호사(법무법인 한미)는 “유엔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제기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북한은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며 “올해 결의안 채택에 대해서도 북한 당국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특히 한대성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 대사는 지난 3월 23일 열린 UNHRC(유엔인권이사회)에서 ‘진정한 인권보호 증진과 인연이 없는 정치 모략 문서로 전면 배격한다’고 연설하기도 했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이라는 사실과 결의안을 보면 북한 인권은 매우 열악하며, 그 개선을 위해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현 대한민국 정부는 3년째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현 정부는 적어도 북한 인권에 대해 국제사회의 책임과 거리가 먼 모습”이라고 했다.
한 변호사는 “언젠가 통일이 되면 북한 내에서 발생된 인권침해 문제는 통일한국 자체의 문제이자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그런 점에서) 북한 인권침해 기록의 필요성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북한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유엔 등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하고, 북한 당국에 인권 개선을 압박하도록 돕는 기능”이라고 했다.
이어 “둘째, 통일 이후 제기되는 과거청산을 위한 기능이다. 독일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처럼 북한인권기록센터나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형사소추를 위한 예비적 조사기관의 기능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며 “인권침해 기록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역사적 기록이자 피해자의 각종 보상 등에도 활용될 중요한 자료”라고 했다.
또한 “북한 인권침해의 기록은 그 자체로 북한 내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기능을 갖는다. 동독은 서독의 중앙기록보존소 운영에 대해 '주권 개입'이라며 비난하고 해체를 요구했었다. 심지어 동독 형법은 해당 기관 직원에 대해 최대 10년 징역형을 규정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동독의 인권 침해 가해자들은 서독 중앙기록보존소에서 자신들의 인권침해 사실이 기록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행동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 변호사는 “2011년부터 1년 간 국가인권위원회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에 접수된 834명의 사례를 정리해 2012년 '북한인권침해사례집'을 발간하기도 했지만, 이후 북한인권 관련 활동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며 “통일연구원도 매년마다 '북한인권백서'를 발간하고 있지만, 그 실태 조사는 발간 목적에 필요한 제한된 인원만 조사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북한인권침해에 대한 실태 조사를 체계적으로 이행해 기록·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NKDB의 인권침해 사건 누적 건수는 2021년 4월 기준 약 79,000건으로 서독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가 30년 간 집계한 규모인 41,000여 건을 능가했다”며 “그 만큼 북한의 인권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통일 이후 북한 인권침해 기록이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형사소추까지 생각한다면, 인권개선에 대한 강력한 효과를 창출 할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 북한인권법이 형사소추 기능과 전혀 무관한 통일부에 자료 수집을 담당하는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설치하도록 한 것은 법 제정목적을 유명무실하게 했다는 비판도 있다. 북한 인권침해 가해자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위해선 해당센터를 법무부로 이관해, 검사들이 담당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했다.
또한 “2016년 통일부 산하 북한인권기록센터는 탈북민들을 면접 조사해 정책 수립 참고용으로 비공개 보고서를, 2018년·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직전년도 인권실태보고서를 비공개 내부용으로만 발간했다”며 “외부 비판이 이어지자 통일부는 2020년 9월 공개용 보고서의 발간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며칠 뒤 번복하고 결국 발간 계획은 좌초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일부의 인권기록 비공개는 과연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북한인권법은 해당 센터의 설립목적이 북한주민의 인권상황과 증진을 위한 정보 수집·기록을 위한 것(제13조 제1항)이라고 밝혔다”며 “그런데 이러한 정보를 (통일부가) 3급 비밀정보로 취급하면서 공개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으로 북한인권법의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특히 “통일부는 민간단체인 NKDB의 북한인권기록 참여를 제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1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서도 북한 인권침해의 책임규명을 위해 국가는 시민사회 등과 협력해야 하고 지원해야 함을 강조했다”며 “북한인권침해의 기록 목적은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에 있다. 이를 위해 북한 당국의 불법행위를 묵인해선 안 되고 인권 개선을 적극 촉구해야 한다. 이에 통일부는 북한인권 기록 수집의 독점을 중단하고, 민간단체의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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