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홍정 목사) 언론위원회(위원장 권혁률)는 ‘7월의 주목하는 시선 2021’으로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과 한국 지식인 사회의 빈곤’을 선정했다고 최근 밝혔다.
NCCK 언론위는 “2021년 6월 26일 토요일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925동에서 청소를 마친 이씨는 ‘씻고 가겠다’는 인사를 동료와 나누고 헤어진 뒤 연락이 끊겼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이 씨를 휴게실에서 발견했을 땐 이미 숨진 상태였다.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며 “유족은 이 씨가 기저질환 없이 평소 건강했다고 한다. 그녀는 2020년 건강검진 종합소견에서 ‘정상A’ 판정을 받았다. 그녀의 남편은 ‘심장 기능은 정상인보다도 더 좋게 나왔다’고 기억했다. 그런데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심근경색은 과로사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다. 기저질환 없이 건강한 사람이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사망했다면 그가 처했던 노동환경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며 “서울대에서 시설관리직으로 같이 근무하는 남편이 아내 유품을 정리하러 생활관에 들렀다가 동료들에게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사고가 있기 26일 전(6월 1일) 관리자가 바뀐 이후 고인을 포함해 모든 청소노동자들이 힘들어졌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7월 7일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남편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새로 부임한 기숙사 안전관리팀장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업무와 무관한 행동들을 요구했다. 난데없이 필기시험을 치르게 하고 회의 참석시 ‘드레스 코드’를 강요하면서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것”이라며 “이 소식은 언론과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다. 관리팀장은 필기시험에 ‘현재 속해 있는 조직의 명칭을 한자로 작성하라’, ‘영어로 작성하라’ 등 청소업무와 무관한 문제 열 개를 내고 문항 당 10점씩 채점해 빨간 펜으로 점수를 매겼다”고 했다.
아울러 “관리팀장은 필기시험장에서 ‘점수는 근무성적평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는 안내문을 공지했고, 직원 중 한 명은 낮은 점수가 공개돼 동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사례도 있었다”며 “매주 수요일 열린 ‘미화 팀 업무회의’에는 드레스 코드가 등장했다. 남자 직원은 ‘정장 또는 남방에 멋진 구두를 신고 가장 멋진 모습으로’ 여자 직원은 ‘회의 자리에 맞게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하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NCCK 언론위는 “노조 발표에 따르면 안전관리팀장이 새로 부임한 이후 군대식 ‘청소 검열’이 시작됐다. 안전관리팀장 등 교직원 3~4명이 방학을 앞둔 22일부터 직접 현장을 방문해 청소 상태를 확인했다. 이 씨는 이 검열에서 지적 받기 싫어 숨지기 직전 이틀에 걸쳐 925동 전체 건물을 대청소했다고 동료가 증언했다”고 했다.
아울러 “서울대의 보직 교수들이 소셜미디어에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하면서 논란은 확산됐다. 먼저 학생생활관의 직속 책임자인 구민교 학생처장이 (7일 유가족 등이 주최한) 기자회견 이틀 뒤인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반박문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것이 역겹다. 악독한 특정 관리자 얘기는 모두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며 “안전관리팀장의 2014년 논문 지도교수였던 행정대학원 모 교수는 ‘이씨 죽음이 갑질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할 근거가 없다’고 강변했다. 기획시설부관장인 남성현 교수는 ‘해당 관리자를 마녀 사냥식으로 갑질 프레임을 씌우는 불미스러운 일이 진행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고 썼다. 서울대 인권센터도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중간관리자인 안전관리팀장을 두둔하는 태도를 견지했다”고 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판단은 달랐다. 노동부는 지난달 30일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일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있었다’고 했다. ‘필기시험 문항에는 청소 업무와 관계가 없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됐고 행위자(관리팀장)는 근무평정 제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임의로 시험 성적을 근무평정에 반영한다는 내용을 게시했다’고도 밝혔다”며 “청소노동자들의 복장을 점검하고 품평을 한 것도 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봤다”고 했다.
NCCK 언론위는 “이번 사건은 잘못된 조직문화와 열악한 노동환경이 빚어낸 결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인사회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폭로된 현장이기도 하다”며 “문제의 안전관리팀장은 2014년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았고, 그 지도교수가 학생처 보직 교수로 기숙사 업무에 관여하고 있을 때 교직원에 지원해 채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새 팀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전에 없던 조치들을 취했다. 청소 현장을 군대식으로 검열했고, 필기시험을 통해 직원들의 점수를 매겼으며, 복장까지 통제하려고 했다. 그의 관리방식은 1970~80년대 권위주의 시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상대적 약자를 타자화함으로써 자기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일종의 계급의식이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심각한 문제는 그가 속한 서울대 공동체의 대응방식이다. 보직교수들도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기 의견을 적극 개진했다. 보직교수들의 이런 행동은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며 “서울대의 ‘명예’를 앞세워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려 드는 조직적인 방어 활동인 셈”이라고 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서울대로 대표되는 한국 지식인 사회의 빈약한 밑천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이 너무 값싸게 유통돼왔다. 이름 난 학교나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름나게 대접해주는 문화가 있었다. 그 문화가 모래 위의 누각 같은 성찰 없는 지식인사회를 만들었다”며 “스스로 성찰하지 못하는 집단은 더 이상 지식인사회라는 타이틀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 타이틀만 믿고 주위에서 질문하고 점검하기를 멈춰서도 안 된다”고 했다.
끝으로 “지식인사회가 공동체에 기여하려면 그에 맞는 윤리의식과 소통 능력을 갖춰야 한다. 지식인으로 공동체에 기여하기 원한다면, 생각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다가가는 방법 또한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지식인사회도 공동체 안에 존재함을 인정한다면, 스스로 공동체에 다가가 자기 지식을 공동체를 위해 사용할 때 비로소 존중도 받고 명예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지식인과 지식인 사회의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대”라고 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