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환경에는 언제나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에게도 형제 간 살인이라는 비극이 있었고 장자의 명분을 얻어 축복을 받았던 야곱도 에서의 미움을 받아 도망가는 신세가 됐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박해가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지켜 주심으로 이겨내며 강하고 거룩하고 능력 있게 살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치료의 능력을 보고 자신들을 신처럼 대하려는 사람들에게 그가 나음을 입은 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었다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자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행4:4)
당시 예루살렘의 인구를 8만 명 정도로 추정할 때 남자 오천 명은 상당한 변화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예루살렘에 있는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일어나서 너희가 무슨 권세로 행하느냐며 사도들의 활동을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사도들은 성령에 감동하여 대답했습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행4:10)
교권주의자들이 인간적인 지식과 이성으로 신비한 것을 정죄하고 대적하며 박해할 때도 사도들은 눌리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4:12)
사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치유와 회복의 능력과 구원이 있다고 했습니다.
1. 성령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행4:13~14)
사도들을 통해 나타나는 치료의 역사와 지혜를 보고 사람들은 놀라워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실체가 있습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있고, 순종하는 만큼 축복으로 나타나는 표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서 하나님과 교통해야 합니다.
이 땅에는 어둠의 세력에 지배받는 사람이 있고 육체는 땅에 있지만 그의 영과 지식과 가치관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아합왕 때 활동했지만 그는 하나님께 속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모세도 비록 애굽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왕국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세상의 권세가 그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알고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세상의 권세 아래서도 당당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의 지식은 인간적 신념이 아닌 위에서 내리우신 것임으로 권위가 있습니다.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행4:14~16)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기도보다 의논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의논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과 소통해야 합니다. 의논하는 것보다 기도가 먼저인 것을 알고 항상 깨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2.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박해도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2:2)
세상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주장함으로 진실이 있는 곳에는 왜곡시키는 자가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사탄의 대적도 일어납니다.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행4:17)
이 땅에는 환경, 헌법, 문화를 통하여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이 많이 있으나 성령의 사람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병자가 치료 되고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이 전파됨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잘못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사도들의 입을 권력으로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행4:18)
예수의 이름이 능력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율법으로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제자들을 힘으로, 권력으로 짓누르면서 진실을 막으려고 했으나 자기 사람들에게는 물질로 그들의 진심을 샀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는 군병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했을 때도 신변 보호를 약속하고 돈으로 매수했습니다.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마28:14~15)
3. 믿음의 사람에게는 지지자들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행4:19~20)
사도들은 지식의 진원지를 알았고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고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10)
사도들의 삶은 하나님 앞에 있는 삶입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기쁘게 할 대상과 순종해야 할 대상을 바르게 알았고 제사장의 압력에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환경, 물질, 제도, 세속의 권력, 불의한 세력에 지지 않고 주일을 성수하며 기도생활, 전도, 연보생활을 회복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행4:22~23)
백성들이 사도들을 지지함으로 공개적으로 함부로 할 수 없어 위협하고 놓아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도들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위협을 당할 때도 함께 했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행18:9~10)
바울 사도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함께 하시며 보호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기적을 베푸는 도구가 됩시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고 그 권위를 지키면서 세속의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합시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하고 순종하고 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의 부귀영화의 종말, 예수 안에서 박해를 넘어 얻게 되는 성화와 믿음의 결말을 비교해 보고 바른 선택을 하는 지혜를 가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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