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법을 부정하고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실정법을 만들고 집행한다고 선전한다. 노동자들이 공산당에 권력을 맡기면 정의롭고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하지만 그들의 법집행은 절대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에 편파적으로 유리하게 자의적으로 해석되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법해석은 유연하고 신축적이어서 진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법체계라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던은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들이 소련의 전체주의적 독재와 강제노동수용소를 통한 압제에 진저리를 치며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념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기반을 두었지만 파리의 부르주아의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념과 삶은 심각한 괴리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법체계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시위와 충돌을 통해 전통적인 규칙과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사회적 비주류를 보호하는 것이 가장 큰 선이며 정의라고 선전한다. 이것은 공산주의가 억압받는 노동자와 농민을 보호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비주류들을 규합하여 자기들의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한 전략이다. 여기에는 노동자, 농민과 함께 성혁명의 다양한 지지자들을 포함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법 정의는 억압받는 성소수자의 해방이지만 그 결과는 창세기 1장의 생육/문화명령을 따를 수 없게 하며 기독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결혼과 가정의 제도를 약화시키는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포스트모던은 기독교의 절대적인 신법 뿐 아니라 현대사회의 실정법에 대해서도 파괴적 영향을 미친다.
뉴에이지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고, 브라만과 아트만의 합일을 방해할 수 있는 엄격한 법질서에 대해 반대한다. 큰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규범이 방해가 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에 대해 진실하기만 하다면 선택하는 어떤 행동도 합법적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 역시 신법뿐만 아니라 실정법의 필요성을 부정하며, 스스로가 법(self law)이라고 생각한다.
이슬람은 코란과 수나, 이즈마 그리고 키야스 등 네 개의 근원을 통해 형성된 법(샤리아)이 있다. 샤리아는 그들의 공적인 법일 뿐 아니라 가정, 회당, 경제, 사회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따라서 이슬람의 세계관은 삶의 전 분야에 대해 샤리아를 지키려는 일관성을 가진다. 문제는 그 절대적 기준이 모호하며, 해석의 권리는 극소수의 종교지도자와 왕족들에게만 있다. 무슬림 국가에는 3권 분립도 없으며, 국민들은 지도자들의 샤리아 해석에 대해 무조건 복종해야하기 때문에 독재적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님이 제정한 법의 정신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문자적인 법 준수에 머물기 때문에 형식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 못한 이스라엘이나 형식에만 얽매인 유교의 도덕률 혹은 율법적인 기독교처럼 권위적이고 위선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무신론적 세계관이나 뉴에이지 세계관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어서 문제이며, 이슬람은 기준은 있으나 그것을 자의적 독재적으로 해석하여 사욕을 채울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 세상에 기독교인이 주류가 되어 신법을 국민 모두가 지키는 국가는 없다. 현대 사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집권세력의 의도에 맞춘 실정법이 입법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국가 속에서 기독교인은 법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기독교인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갈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법이 시행되는 곳이다. 이 세상의 실정법이 어떠하건 간에,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대계명이 실행되는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자신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까지 그 법을 따라 지키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넓혀가는 것이 기독교인이 받은 지상명령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회로부터 지방의회까지 입법에 참여하는 기독교인은 신법의 정신을 실정법에 반영시킬 임무를 가지고 있다. 또한 신법에 반하는 내용이 실정법에 반영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시민으로서 기독교인은 신법의 정신이 실정법으로 반영되며 신법에 반하는 내용이 입법되지 못하도록, 또한 국가의 예산이 정의롭게 사용될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나 사회단체를 통해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
판관으로서 사법부에 참여하는 기독교인들은 실정법 조문의 내용에서 하나님의 신법의 정신을 발견해 내어 하나님의 공의가 사회에서 유지되는 방향으로 판결해야 한다. 하나님의 신법을 준수하는 자를 보호하고, 그것을 어기는 자에게는 법에 명시한 응징을 가하여 법질서가 지켜지게 해야 한다. 강한 자와 약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를 법 앞에서 같은 잣대로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재판관은 분쟁을 공평하고 신속하게 종결시키고, 법 위반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가해자가 배상하도록 함으로써 하나님의 질서가 회복되도록 도와야 한다. 또 재판관은 모든 범죄의 재판에서 진실이 명확히 드러날 때까지는 극히 신중해야 한다. 특히 극형에 해당하는 처벌은 공식적인 고소와 심문의 법적절차를 거쳐, 또 확실한 증거에 의해 명확하게 증명될 때까지 형 집행을 삼가해야 한다. 심증은 있지만 불확실한 경우에는 처벌을 강행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에 맡길 것을 성경은 권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진화론에 기초한 변화무쌍한 실정법 속에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한 확고하고 명확한 기반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 기반을 통해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 절대적인 인권을 국민들이 누릴 수 있게 보호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법체계로 인해 자기행동의 책임을 지게하고, 하나님의 질서가 회복되기를 기대하신다. 타락한 인간의 신법에 어긋나는 모든 죄를 불법으로 처벌하기를 원하지는 않으신다. 오직 정의를 촉진함으로써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고, 그 안에서 개인이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실 뿐이다.
묵상: 내가 있는 곳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방안은 무엇인가?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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