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람들에게 왜 악한 일이 생기는가? 하나님이 전적으로 사랑이시고 전능하시다면 왜 고통과 불의를 종식시키기 위해 그의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는가?”
종종 위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동요될 때도 있지만 이번 ‘KELLA’ EP3. ‘타락’ 파트를 공부하면서 해답을 얻었다. 이 질문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타락’은 죽음을 낳는다. 회개하지 않은 죄인의 결과 또한 ‘사망’이다. 이 ‘타락’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한다.
이제 이 질문에 대한 오류를 찾아보자. 혹시 오류를 바로 찾아낼 수 있는가? 축하한다. 당신은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아래 두 가지 부분을 함께 살펴보자.
첫째, ‘인간은 과연 선한가?’
이번 KELLA EP3. 발제를 맡아 준비하면서 ‘인간은 선한가’를 구글에 검색해 보았다. 그러다 한 사건을 찾아내었다. 2008년, 세계 평화를 증명하기 위해 유럽에서 중동까지 히치하이크 여행을 계획한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이다. ‘인간은 선하다’라는 ‘믿음’을 증명하기 위한 그녀의 무모한 도전이 끔찍한 결과로 나타났다. 그녀는 분명 좋은 사람들도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오류를 인정하지 못하고 시작된 이 여행의 끝은 비극이 되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우리는 이 명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은 타락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자유선택권을 사용해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을 하기로 선택했고, 생명과 선(善)이라는 하나님의 길을 거부하며 결국 세상의 죽음과 악의 길을 열어놓았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둘째, 왜 악의 문제를 하나님이 답하셔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당신의 천지창조를 직접 보시기에도 심히 좋다고 할 정도로 칭찬하셨다. 하나님은 선(善) 그 자체이시고, 선(善)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분이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이다. 칭찬받은 이 세계를 망쳐 놓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아담은 하와를, 하와는 뱀을 지목하여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려 했다. 결국 그 손가락은 하나님을 향했다. 그를 거역하고, 바라볼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바로 우리가 이와 같은 인간이다. 똑같은 존재이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우리의 죄성을 바라본다. 간혹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해 놓고, 결과와 상황에 따라 하나님을 탓할 때가 있다. 왜 자신에게 자유를 주셔서 죄를 짓게 하냐고 말이다. 필자도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있을 때 이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KELLA 스터디 도서 「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의 저자인 ‘찰스 콜슨’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유의지 또한 완벽한 ‘창조의 한 부분’이다. 그것은 신의 계획 아래의 완벽한 선(善)의 모형이다.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이다.’라고 말이다. 신성에 대한 완전한 믿음에 대해 흔들리지 말자. 하나님께는 악(惡)이 없다. 오직 선(善)이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교회에 다니기 전 늘 고민에 잠기곤 했다. ‘사람은 어디서 왔고, 나무는 어디서 왔고, 이 모든 것에 처음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사람이 원숭이에서 진화가 되었다는데 그럼 원숭이는 어디서 온 걸까? 우주가 폭발해서 시작되었다는데, 그럼 그 시작 또한, 어떻게 생긴 것일까?’라는 ‘기원’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그러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믿게 되었고 의문도 점차 사라졌다. 누구도 해소할 수 없었던 목마름을 나는 성경에서 해소할 수 있었다. 오직 성경만 내게 답을 주었다. 어떤 과학도, 어떤 철학도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였다. 주변에 많은 또래 크리스천을 만나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답을 찾지 못하거나 정리가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에게 성경 속에서 답을 찾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추가로 ‘찰스 콜슨’의 저서 「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를 통해 세계관을 정립시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는 항상 악의 얼굴을 의심해야 한다. 악은 가장 친근한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책의 ‘챕터 3’에 나오는 시나논 사건, 루소의 철학, 아인슈타인의 결정 등의 이야기들을 보면, 그들의 생각과 주장들이 선한 듯 아닌 듯, 알 듯 말 듯한 친근한 얼굴로 포장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꼭 그 포장지들을 먼저 펼쳐서 배울 필요는 없다. 진짜 돈을 감별하기 위해선 위조지폐가 아닌, 진짜 지폐를 수천 번 만져 위조지폐를 식별해내는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성경적 세계관을 먼저 배우고, 정립시켜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의 ‘세계관 정렬’이 먼저다. 올바른 성경적 세계관이 잡힌 자가 세상에서의 ‘위조 학문’을 식별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을 깨울 수 있다.
하나님께서 어둠을 허락하신 이유가 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다양한 시대적 묘수가 담긴 상자들이 조금씩 열리고 있는 때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선한 일을 위해 헌신하며 순종하며 이겨나가는 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은 이미 아셨다. 십자가에서 스스로 달리신 그 때에 모든 세계관이 완성되었다. 세계가 타락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통찰력과 진짜 사랑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이은경 (그리스도의 계절 회원, KELL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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