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주권자의 권리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주권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초자연적으로 얼마든지 사용할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고 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主權, Sovereignty)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자연법을 만들어 이에 따라 그들의 위치와 본질과 한계를 정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고 섭리하신다. 하나님은 충분히 이성적이면서 충분히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나아가 하나님은 모든 피조 세계, 즉 우주 만물들이 자신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그 목적을 설정하시고 만물들이 이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영원한 경륜(徑輪, Economy)을 펼치신다. 이 경륜으로 자연은 불변(不變)의 요소와 가변(可變)의 요소를 가지며 변동하지만 영원한 생명력을 유지한다. 이 자체가 하나님의 주권적 신비요 무엇으로도 침범당할 수 없는 고유한 권리이자 능력이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고유한 주권으로 자연 세계에 얼마든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이 기적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 자연 세계에 개입한 증거가 된다. 절대적 존재가 한시적 세계에 자신의 능력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초자연적 사건이다. 또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영원에서 영원으로 존재하시는 유일하고 참된 신이시다. 이 영적 세계는 인간의 자연적인 이성과 능력으로는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인간은 땅에 살면서 영적 세계들의 존재와 현상들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주의만을 고집하는 것은 초자연주의의 세계와 그 실체에 대해 의도적으로 부인하거나 무시하고자 하는 악한 마귀의 간계를 따르는 것이다. 워필드는 하나님의 초자연성은 “기독교의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못 박으며 “초자연주의를 거부하는 자연주의는 기독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독기(毒氣)”라고 선언했다.
다섯째, 성령의 개인적 적용과 헌신이 전제된다. 워필드는 자연주의적 사고가 교회에 미칠 파급력을 우려했다. 그는 ‘기독교를 ‘코’라고 할 때, 초자연성은 그 ‘호흡’이라 했고 자연주의는 ‘나쁜 공기’라고 비유했다. 그는 대부분 자연주의에 물든 교회들을 비판했다. 기독교의 초자연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연주의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기독교가 인정하고 요구하는 초자연주의가 어떤 초자연주의이고, 어느 정도의 초자연주의냐가 아니라, 초자연적인 것을 얼마나 적게 인정하고서도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초자연적 구원에 진심으로 헌신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초자연적인 구속을 성취하셨지만 이 초자연적 구속이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아무 유익도 없다고 했다. 반드시 우리를 사망의 잠에서 일으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교제하게 하는 초자연적 구속의 초자연적 적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적용이란, 성령이 우리 마음에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우리를 사망의 잠에서 일으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교제하게 하는 초자연적 구속을 말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적인 힘들의 산물이 아니고 자연적으로 진화된 존재도 아니며 성령에 의한 새로운 피조물이며 그 자체로 걸어 다니는 기적이자 살아있는 기적이고 하나님의 작업의 산물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절대적으로 초자연적인 것, 즉 초자연적인 하나님과 초자연적인 구원자가 성취한 초자연적 계시에 의해 해석된,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로 말미암아 적용된 초자연적인 구속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신앙을 전체로 온전히 붙드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대한 완전한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오직 이 사람만이 가장 교활한 공격 가운데서도 기독교 진리의 충만함을 보호하고, 선한 신앙고백을 증언하리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워필드는 이 중요한 강연을 통해 자연주의를 주창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신적 주권으로 무장한 칼빈주의라는 거목을 프린스턴의 교정 한 복판에 심어놓고 깊은 뿌리를 내리도록 했다. 이 강연으로 ‘펠라기우스주의’와 ‘소시누스주의’, 그리고 ‘이신론’과 ‘아르미니우스주의’, 리츨 신학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신학’은 강력한 역공을 맞고 휘청거렸다. 그러나 한 번 기울어진 배가 다시 회복하기 어렵듯이 프린스턴의 신학은 자유주의의 길을 떠나지 못했다. 이로 인해 프린스턴의 개혁주의자들은 프린스턴의 둥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1929년 워필드를 계승하는 메이첸과 그 일행은 필라델피아에 온전하고 경건한 신학, 성경 무오성과 초자연주의 신학을 수호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현재 한국의 개혁신학은 이 학교에서 수학한 박형룡, 박윤선 등에 정초하고 있다. (계속)
최더함(Th. D, 역사신학, 바로선개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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