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기천 교수
    시대가 공감할 수 있는 신약학 교육
    1995년부터 장로회신학대학교에만 인가되었던 신학대학원 과정이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모두로 확대 시행되어 온 지 벌써 2023년 현재 28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재 7개 신학대학교의 신약학 교과과정이 다양한 것 이상으로, 신약학 교수들의 관심사항도 다양하다. 이제 신약학 교과목에 대한 공동과목을 설정하여 각 신학대학교가 공동으로 체계적인 목사 후보생을 양성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 소기천 교수
    박창환 학장님께 바치는 추모사
    박창환은 필자에게 1977년 영락교회 교사 양성부 제18기에서 “신약개론”이란 과목을 통해서 가르침을 주신 첫 만남 후에, 헬라어 문법과 강독 그리고 신약석의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도 그 막대한 영향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필자가 1985년에 결혼할 때 그가 써준 휘호를 거실 한복판에 걸어두고 있으며, 2015년에 필자의 결혼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요한1서 5:1을 써주기도 할 정도로 ..
  • 소기천 교수
    평양신학교 재건의 갈등
    다음에 소개되는 평양신학교 재건에 관한 내용은 2013년 5월에 네 주에 걸쳐서 진행된 “역사와의 대화”에서 박창환이 직접 밝힌 생생한 증언이다. 박창환은 일제 강점기에 미국북장로교회가 평양과 황해도, 서울, 그리고 충청도와 부산까지 이르는 대각선 방향으로 전도에 힘쓰며, 평양 숭실학교와 평양신학교를 중심으로 신학교육을 장려하는 일을 하였다고 평가한다. 이와 달리 미국남장로교회는 함경도와 전..
  • 소기천 교수
    총회 신약학 백서(12)
    박창환 학장(이하에서는 박창환으로 칭한다)은 1924년 3월 17일에 황해도 황주군 청룡면 포남리 608에서 부친 박경구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1942년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1943년에 평양에 있는 장로회신학교 신학과에 동기 박맹술과 조남기와 더불어 입학하여 해방 후인 1948년에 졸업한 후에, 1952년에 홍익대 영문과를 졸업하자마자 1952년에 미국 New York Bibl..
  • 소기천 교수
    총회 신약학 백서(11)
    1938년 2월 평북노회가 가장 처음으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나면서 혼란은 시작되었다. 드디어 1938년 9월 9일에 제27회 총회가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열리게 될 때, 이미 당시 23개 노회 중에서 17개 노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한 상태였다. 이 때에 일본순사가 총회석상에 난입해 있던 상황에서 강압적이고 불법적인 절차에 의해 “당국에서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고 국가의식이라 선언하니 우리 총..
  • 소기천 교수
    총회 신약학 백서(10)
    남궁혁은 일제 해방이후에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던 시기에 한국교회에서 화해와 일치와 연합의 거목처럼 인식되었다. 1946년 9월 20일에 부산을 중심으로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옥고를 치렀던 한상동을 중심으로 고려 신학교가 개교되었다. 이후에 한국교회는 여러 차례 진통을 겪으면서 갈등하면서 분열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서 남궁혁은 언제나 한국교회의 하나 됨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몸 된 ..
  • 소기천 교수
    총회 신약학 백서(9)
    남궁혁은 한국의 본회퍼와 같은 신학자이다. 본회퍼가 나치 정권에 맞서서 신학자의 살아있는 양심을 유감없이 발휘한 인물이라면, 남궁혁은 구한말에 의지할 것 없던 민심을 달래고 조선독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3.1 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침한 공산군에 의해 납북되어 금식 기도를 하던 중에 순교한 위대한 신앙의 위인이다...
  • 소기천 교수
    총회 신약학 백서(8)
    여기에서 실제적인 가르치는 양은 첫 학기 동안에 10주까지, 두 번째 학기 동안에 당시 교과과정 2181시간 중에 헬라어, 히브리어, 영어의 비중은 전체 29.9%를 차지한다. 이는 신학교의 수준이 낮았다는 통설을 반증하는 부분이다. 전공별 시간을 비율로 분석해보면 성경 신학이 748시간(30.1%), 이론신학 551시간(22.2%), 실천신학 429시간(17.2%), 언어 746시간(29...
  • 소기천 교수
    총회 신약학 백서(7)
    1920-1924년에 교수진은 한국인과 선교사가 함께 하는 시대가 되면서 학제도 5년제에서 3년제로 바뀌었고, 연중 공부도 봄과 가을 학기로 나누어서 총 7개월간 수학을 하였고, 한 학기에 7-8과목을 이수하였다. 1923년 신학교 요람에서는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에서 가르쳤던 교육과정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 교육과정의 내용들을 통해서 당시 신학교의 특징에 파악할 수 있다. ..
  • 소기천 교수
    총회 신약학 백서(6)
    미국 시카고에 있는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한 마포삼열은 1890년 1월 20일에 서울 마포 나루에 도착하였다. 그 후 언더우드가 세운 고아원 후신인 예수교학당에서 일하면서 본 교단 최초로 신학사업을 시작하였다. 김인수에 의하면, “이 학당에서는 학생들에게 성경을 중심으로 가르치면서 후일 한국교회를 위한 복음의 역군을 길러내는 신학교로 발전시키려 했으나 이는 후일 서울이 아닌 평양에서 기초되고,..
  • 소기천 교수
    총회 신약학 백서(5)
    고린도전서 12장 12-26절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각 지체가 어떻게 교회 안에서 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25절은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한국초기교회에 연합과 일치에 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었다...
  • 소기천 교수
    총회 신약학 백서(4)
    방위량(W. N. Blair)은 1907년 1월 12일(토) 저녁 집회에서 고린도전서 12장 27절을 가지고 설교하였다. 이는 당시의 설교가 보존되지 않은 상황을 감안할 때, 대단히 유용한 지적이다. 방위량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토요일 저녁에 고린도전서 12장 27절인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각자는 그것의 지 체이다”라는 구절로 설교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