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섭 목사(그 사랑교회)
팀 켈러와 존 이나주 교수가 편집한 ‘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에서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미국 기독교가 어떤 문화적 자세를 가져야 할지에 대한 책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공동선에 대한 공통적 이해가 결여된 문화이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답을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무엇이 실용적인지 무엇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어지기 힘든 시대이다.
이런 문제는 특히 SNS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자신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키는 집단들이 많기 때문에 말 그대로 이런 뉴스들과 이미지들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점점 더 외골수로 변해갈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런 문화적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은 극심한 방향상실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 사회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도덕의 기준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교회는 세 가지 방향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게 된다. 제임스 헌터는 ‘기독교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에서 세상에 반대해서 기독교적 힘을 우위를 보이려고 노력하는 ‘방어적 태도’, 세상과 멀어져서 교회의 순결만을 강조하는 ‘정결을 추구하는 태도’ 와 세상과 하나가 되어 구별되지 않는 ‘적합성을 추구하는 태도’라 말하고 이런 세 가지 반응으로서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 경고한다.
제임스 헌터는 그 대안으로 ‘신실한 현존’(Faithful Presence)을 이야기 한다. ‘신실한 현존’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실하게 임재(Presence) 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분에게 신실하게 참여(Presence)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교회 공동체는 서로를 향한 사랑이 있어야 하고 그 흘러넘치는 사랑으로 세상을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희생하신 것처럼 섬기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고 또 권력이나 힘을 아래로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세상을 섬겨야 한다.
팀 켈러는 이 책에서 이 신실한 현존을 오늘 교회의 상황에 접목하기 위한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특정한 정당이나 강령과 지나치게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소속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인간 제도 안에서 책임있는 선택을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정체성보다 우위를 주장하는 모든 정체성은 다 우상숭배가 된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의 어떤 폴리스와 동일시하지 말라고 말한다. 세상의 방식은 언제나 하나님과 초월이 배제된 인간중심적 정책일 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정당의 정책은 성경적 기준에서 조금씩 이탈해 있다. 진보정치는 적합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개인의 윤리와 도덕이 위협을 받게 된다. 또 보수정치는 방어적 접근법에 가깝기 때문에 문화적 대립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양 진영 모두를 객관화 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사랑과 섬김의 자세로 세상에 다가가야 한다. 방어적 태도는 잃어버린 권력을 찾는데 집중하고, 정결을 추구하는 곳은 세상과 지나친 친밀함으로 거룩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컬쳐 케어’의 저자인 마코 후지무라는 “문화는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전쟁이 아니라 가꾸어야 할 정원”이라고 말했다.
셋째. 복음은 복음과 다른 경쟁에 있는 이야기들의 서사를 해체시키고 인간의 근원적인 갈망을 채우는 유일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백인 경찰과 흑인 청년의 갈등이 있다면 어떤 서사들은 도시 빈민가의 흑인을 사회적 희생자로 또 백인 경찰을 악당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서사는 경찰을 피해자로 또 흑인 청년을 악당으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복음의 관점은 인간은 죄인이지만 또한 하나님의 사랑받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존재임을 안다. 그 복음의 관점으로 사건을 재조명해보면 양측 행위자 모두 피해자며 또한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타락한 세상에서 인간의 영웅적 행위와 악행은 언제나 섞여 있다. 우리는 세상의 관점이 아닌 복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넷째는 그리스도인들이 겸손, 인내, 관용, 용서로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교회가 믿지 않는 사람과 접촉하는 할 때 필요한 것은 어떤 은사나 기술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인 신앙의 인격이다. 우리는 차이를 넘어 손을 내 밀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점점 정치적 이슈에 매몰되는 것은 미국 기독교 우파가 가는 '방어적 태도'의 길만을 유일한 대안으로 알고 따라가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상과 조우하는 방식에는 ‘방어적’, ‘정결적’ ‘적합성“이라는 단순한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좀 더 다양한 문화관들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동의하지 않지만 존중할 수 있고, 서로의 필요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또 다른 문화적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며 이 책은 그런 다양한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신학자와 목회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성경적인 원리를 이야기하고 모험가, 기업가, 작가, 가수, 스토리텔러, 번역가, 의료인등이 각자의 직업이라는 세속적 영역에서 어떻게 복음을 따라 살아갈 수 있을지를 잘 보여준다. 설교를 듣고 강의를 들을 때는 은혜롭게 결단하지만 막상 세상이라는 현장에서 살아갈 때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를 모를 때가 많다. 이 책은 그런 다양한 예들을 통해 복음이 어떻게 삶의 영역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내 삶에 적용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을 보면서 여러 가지로 부러운 생각이 많이 든다. 이제는 성경을 거울로만 삼아서 자신을 성찰하는 것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성경이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주어야 하는 것 같다.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문화적으로 세상과 어떻게 친구가 되면서도 고유한 믿음을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알려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혼란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더욱더 복잡한 시대 속에서 너무나 단순한 해답만을 내놓기 때문에 점점 더 세상으로부터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지만 다른 세계관을 가진 구별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이 책의 부제처럼 “차이를 품되 구별되어 세상을 섬기는 것”이 오늘날 교회가 취해야 할 세상과의 관계일 것이다.
요즘같이 세상과 교회의 관계설정이 혼란스러운 때에 ‘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은 오늘날 교회가 가야 할 성경적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한다. 한국교회에서도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날 한국사회를 어떻게 복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책들이 지속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TGC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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