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7살 또는 8살 때였던 같다. 성탄 이브 행사 때, 성탄 연극을 보았는데 그때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배우가 선물보따리 안에 있는 선물을 앞에 앉아 있는 관객들에게 나눠주는 연기를 했다. 물론 가짜 산타였고 선물도 가짜였겠지만, 그것을 알 수 없었던 어린 필자는 “산타 할아버지 나한테도 선물을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소리를 듣고 성도들이 웃음을 터뜨려서 연극에 방해가 되자, 한 배우가 “산타 할아버지는 잠자는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필자는 잠자는 척을 했다. 그런데 진짜 잠들어서 성탄이브 행사가 모두 끝나고 집에 갈 때 깨어났고 선물도 받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처음으로 새벽송을 따라갔다. 그때 눈이 무릎에 찰 정도로 많이 와서 어른들은 불편했겠지만 어렸던 필자는 정말 기쁘고 즐거웠다. 중고등부 때는 성탄이브 행사에서 성시 낭독 또는 찬양 등을 했고, 청년 때는 성극이나 행사 지도 그리고 교회 십자가 탑에 성탄 트리 전구를 장식하는 일을 보조했다. 보조를 한 이유는 십자가 탑에 한 번 올라갔는데 다리가 후들거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높은 곳에 잘 올라가는 친구의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 친구를 생각하니 글을 쓰는 지금도 고맙고 미소가 지어진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한국교회의 성탄절 문화와 전통이 실종되어 가고 있다. 성탄 이브 행사를 하는 교회는 점점 줄어들고, 십자가 탑에 성탄 트리를 장식하는 교회도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코로나19 사태로 정부가 집합 제한 명령을 내려서 성탄절 이브 행사뿐만 아니라, 성탄절 예배까지 위협당하고 있다. 한 때는 크리스마스 문화가 너무 상업적이라고 걱정했지만 지금은 차라리 그런 상업적인 문화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길 정도이다. 이런 현상은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데 큰 장애물이다. 한국교회가 힘을 모아 극복해야 한다.
성탄절 이브 행사와 성탄절 예배는 단순한 연중행사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반드시 물려줘야 하는 믿음의 전통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잘 모르고 참여했지만 목사가 되고 또 많은 세월이 흐르고 뒤돌아보니 성탄절에 맡았던 역할들이, 구경만 했던 것조차도 모두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깨닫고 감사하게 하고, 예수님을 찾고 만나게 하고, 또 주님을 위해 헌신하게 하는 믿음의 양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또한 성탄 트리는 누군가(가나안 성도)에게는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고 교회로 회귀케 하는 신앙적 본능이 된다.
필자는 유대교가 3,500년 동안 신앙을 이어가고 있는 비결이 그들이 어느 나라에 있든지 신앙적 전통을 소중히 지키고 전수하고 있기 때문임을 밝힌 바 있다. 한국교회도 신앙적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고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필자는 신앙의 선배들이 물려주었던 풍성한 성탄절 문화와 전통을 다음세대에게 물려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 19:4)라고 탄식했던 엘리야의 좌절감과 다음세대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2000년 전,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때에 메시아의 탄생을 알고 감사의 예물을 준비했던 자들은 동방의 박사들이 유일했음을 기억하면서 작은 소망을 갖는다. 2000년 전 이스라엘에는 가난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메시아로 세상에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들은 거의 없었다. 유대의 통치자들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고, 베들레헴 사람들은 예수님께 작은 방 하나도 내어주지 않았다. 결국 예수님은 구유에 탄생하셔야 했다(눅2:7). 그때 바벨론지역에서 유대인들을 통해 메시아 예언을 전수 받고 또 믿은 것으로 여겨지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만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다(마2:11)
어떻게 동방의 박사들만 예물을 준비하고 경배할 수 있었을까? 어떤 이들은 동방의 박사들을 점성술사들, 왕들, 심지어 중국이나 신라에서 온 사람들로 추측하기도 하는데 모두 근거가 없고, 성경을 충분히 연구하지 않은 허황된 얘기다. 동방의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라고 했는데 ‘유대인의 왕’은 메시아를 지칭한다. 즉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단순히 신기한 별을 보고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추측하고 온 자들이 아니라, 그 별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별인 것을 정확히 알고 또 믿고 온 자들이었다. 그들이 값진 예물을 준비하고 고생과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여행한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성탄 문화와 전통이 쇠퇴하는 시대 흐름과, 코로나19가 성탄절예배의 길목을 가로 막아서, 성탄절예배와 행사를 반기는 자들이 적다. 부담스러워하거나 오히려 미워하는 자들도 있다. 그 결과 2000년 전,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처럼 소수만 경배하는 성탄의 밤이 될 것 같다. 이런 우울한 상황이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정확히 알고 믿는 자들은 동방의 박사들처럼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예수님께 경배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진정으로 성탄을 경배하는 자가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성탄절 예배와 행사 전통이 동방의 박사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전수된 것처럼, 미움 받고 핍박당할지라도 진정으로 구주 예수님의 탄생을 감사하고 알리기 위해 힘쓰는 믿음의 사람들이 한국교회의 전통을 이어가고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것이며, 하나님은 동방의 박사들을 성경에 기념하신 것처럼 그분들을 기뻐하실 것이다. 현실은 우울하지만 2000년 전의 동방의 박사들과 같은 믿음을 가진 믿음의 용사들을 보게 될 기쁨에 마음이 설렌다.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이 교회에서 또는 마구간에서라도 예수님의 탄생을 감사하고 경배할 수 있길 기도한다.
김영태 목사(참빛순복음교회)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