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일복지재단이 설립한 다일천사병원은 병원 문턱이 높아 진료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무의탁 노인, 취약계층을 위한 최초이자 유일한 개신교 전액 무료병원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치유하시고, 사명 받은 우리들은 봉사하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가장 작은 자를 섬기는 다일천사병원 김현자 부원장을 만났다. 아래는 일문일답.
-다일천사병원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다일공동체는 1989년 무료급식 운영과 함께 무료진료를 해왔다. 이사장 최일도 목사님은 병들어 죽어가지만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을 등에 업고 병원에 갔다가 받아주지 않아서 되돌아오는 뼈아픈 경험을 자주 했다. 그들이 돈 한 푼 없고 아무 연고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느 날 혼자된 사모님이 중풍으로 쓰러져 최 목사님이 그분을 모시고 무료로 치료해 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성가복지병원에 갔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수녀가 "개신교 교회와 성도 수가 얼마나 많은데 왜 매번 이곳으로 옵니까?"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최 목사는 '병원을 운영하고 싶다'라는 소원을 품게 됐다.
그 후 1993년 11월, 청량리 뒷골목 직업여성과 주민들이 모아준 47만5000원과 다일공동체 가족들이 모은 1천100만 원이 병원 건축을 위한 최초의 헌금으로 드려졌다. 그리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천사(1004) 운동을 실시해 모금했고, 국내외에서 뜻을 같이하는 천사후원회원이 점점 늘어났다. 그렇게 10년의 천사데이 운동 끝에 2002년 10월 4일, 다일천사병원이 개원했다. 천사병원은 개미군단의 십시일반 정신으로 설립된 자선병원으로, 지금도 정부 기관으로부터 지원과 도움 없이 순수 민간 후원금만으로 유지되는 국내 유일의 전액 무료병원이다.”
-다일천사병원을 이용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초반엔 의료급여 1종·2종 수급권자, 기초생활수급권자 등을 모두 치료했다. 지금은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이들을 위한 의료혜택이 좋아졌다. 그래서 현재는 제도권 밖에 있고, 정말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 대상은 주로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 외국인 불법체류자, 노숙인, 행려자, 주민등록말소자들이다. 그 밖의 타당한 사유로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이들을 선별해 진료한다.
사실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은 보험이 있는 것이 더 손해다. 보험이 있으면 병원비와 약값으로 2천500원~3천 원을 내야 하는데 그 돈조차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상담 후에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개원 초기에는 우리나라 국민, 노숙인이 많았는데 지금은 외국인 근로자나 불법체류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외국인 중에는 평택, 안산 등 먼 곳에 사는 분들이 지하철을 타고 오기도 한다.”
-다일천사병원의 진료과목은 무엇인가.
“천사병원은 내과, 정신과, 산부인과, 치과를 기본과목으로 운영한다. 그리고 자원봉사의료진과 협력해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등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그 외에 천사병원 진료과목에 없는 내용은 감사하게도 전원 의뢰를 통해 환자들이 진료를 받고 있다. 개원 때부터 청량리역 5~10분 이내에 있는 개인병원 원장님들께서 무료료 진료를 봐주시겠다고 해서 의뢰서와 함께 환자를 그 병원으로 보낸다. 이 중에는 방사선과 CT 촬영까지 무료로 해주시는 의사 선생님도 있다. 환자를 보내면 다 검사한 후 의뢰서 밑에 코멘트와 약 처방 내용을 적어준다. 그러면 천사병원에서 약을 제조해준다.”
-다일천사병원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있나.
“이곳에 오기 전에 직업이 대학병원 수술실 전문 간호사였다. 수술실에 있으면서 심장수술과 뇌수술까지도 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천사병원에는 2004년 1월에 정식으로 입사했고, 그전에 아이를 키우며 6개월간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봉사할 때, 천사병원이 워낙 작은 병원이어서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보통 수술은 책임자가 있어야 하는데 봉사자만 있었고, 적합한 적임자도 없었다. 마침 수술실 전문 간호사를 한 명 뽑는다고 해서 집도 가깝고 한 번 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 입사했고, 벌써 16년이 흘렀다.
몇 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천사병원에 데려다 놓으시고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과거에 아버지가 미국인, 선교사님들과 함께 일을 하셔서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선교사님들이 하시는 일들을 보고 자랐다. 그때의 일을 잊고 살았는데, 네팔에 해외 의료봉사를 갔을 때 그 기억이 떠올랐다. 사무실에서 의료용품을 챙기고 있을 때 유리창에 아이들이 매달려서 뭐라도 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 모습이 어릴 적 내 모습이었다. 선교사님들을 쫓아다니면서 초콜릿 달라, 과자 달라고 했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찡했다. 그때부터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좋은 일이고, 사명을 다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열심히 감당하고 있다.”
-천사병원에서 일하는 분들은 다 사명감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맞다. 상주하고 계신 의사 선생님은 정말 천사 같은 분이다. 이분은 천사병원에 의사 면허가 들어가 있어서 다른 곳에서 활동을 전혀 못 한다. 원래 의사 월급이 엄청 많은데, 그것을 다 포기하고 오셨다. 인건비도 최소 교통비밖에 못 드리는데 그 비용마저 다 후원금으로 내시고, 해외 선교를 위해 몇 개월에 한 번씩 많은 후원금을 내시기도 한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도 오래 하시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 가서도 봉사를 많이 하시는 분이다. 나의 경우도 급여에 관해서는 들어올 때부터 일절 요구하지 않았고, 주시는 대로 받고 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다 채워주신다.”
-기억에 남는 치료 사례가 있나.
“2005년에 진행한 'BCP(뷰티풀 체인지 프로젝트)'가 많이 기억에 남는다. 이 프로젝트는 해외 어린이를 대상으로 구순구개열 수술을 해주는 사업이었다. 사업을 위해 해마다 캄보디아, 필리핀, 네팔 등에 있는 아이들과 보호자를 함께 데리고 왔다. 아이들은 대부분 호적신고, 주민등록이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들이 본국에서 호적부터 주민등록까지 완료하고, 여권을 만들어 비행기를 태워서 데리고 오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 프로젝트에 서울대 치대 학장님이 재능기부를 해주시겠다고 하셔서 천사병원 수술실에서 치과 수술과 성형외과 수술을 같이 했고, 약 153명 정도의 아이들이 수술을 받았다. 수술해야 할 아이들이 많아서 하루에 두 명씩, 밤 11시~12시까지 수술한 기억이 난다. 이렇게 힘든 과정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외모가 변하면서 인생까지 아름답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게 하는 프로젝트였다.
BCP 외에도 천사병원에서 수술할 수 없는 심장병, 척추측만증(옆굽음증) 등의 큰 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병원비를 모금해서 대학병원에 연계하기도 했다. 5~6살 때 심장수술 한 캄보디아 어린이가 있는데, 지금은 중학생 돼서 우리 꿈퍼(교육지원)에서 잘 생활하고 있다. 해외봉사를 가면 만나기도 하는데 이럴 때 많은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다.
천사병원 수술실에서 10년 정도 수술이 많이 이뤄졌다. 자궁 수술, 위암 수술도 한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정말 하나님 은혜로 의료사고 없이 모든 수술이 잘 마쳐져서 참 감사하다. 의료봉사를 오시는 분들은 서로 처음 수술을 해보시는 분들이다. 세팅을 미리 해놓으면 수술 30분 전에 와서 처음으로 얼굴을 보고 수술을 하는데도 손이 잘 맞아 무사히 끝났던 수술들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 운영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나.
“가장 먼저는 병원을 세워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이다. 그리고 후원자들의 후원, 기도, 사랑이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감동받는 것 중 하나가 전혀 알지 못하는 분들이 전화로 후원하거나, 이름도 안 적힌 봉투를 건네고 가는 일이다.
한번은 어떤 분이 병원에 오셔서 봉투 하나를 주고 갔는데, 뜯어보니 수표 2천만 원이 들어있었다. 사회복지사가 쫓아갔는데 정보를 남기고 싶지 않다고 해서 겨우 설득해 전화번호를 받아 왔다. 재단의 기록을 토대로 번호와 이름을 매치해서 전화를 했는데, 그분의 사연은 이러했다. 본인은 혈액신장투석을 받는 환자이고,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의료급여 1종에 해당한다고 했다. 자신의 딸이 심장병을 앓았는데 과거에 TV에 출연해 최 목사님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지금은 건강해져 직장도 다닌다며 은혜를 갚기 위해 10년 동안 일하면서 모은 적금 2천만 원을 후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연에 직원 모두가 정말 큰 감동을 받았고, 병원 개원 10주년 때 이분을 초청을 해서 뵌 적도 있다.
천사병원이 무료로 운영될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가 그 비용을 대신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후원자분들이 계시기에 천사병원이 지금까지 기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치료받는 분들도 후원자가 있다는 걸 알고 감사함을 많이 표현한다. 필리핀 사람 중에는 한국에 와서 의지할 곳도 없고 치료받을 때도 없었는데, 천사병원을 만난 것이 정말 감사하고 생애 최고의 행복이었다고 고백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이도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보람도 느끼고 행복하다.”
-운영 시 어려운 점이나 바라는 점이 있나.
“국가로부터 의사 인력이 지원되면 좋겠다. 현재 병원 내에 상주 의사 1명, 간호사 2명, 약사 1명이 있다. 인력이 많지 않은데, 특히 의사가 부족하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채용하기엔 경제적인 부담이 커서 대부분 의료봉사자의 재능기부로 운영하고 있다.
간호사의 경우 서울시에서 기간제 간호사를 한 명 파견해줬다. 간호사가 혼자였을 때는 잠시 자리를 비울 수 없을 정도로 분주했는데, 지금은 행사지원, 외근, 행정업무 등을 전반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서 정말 감사하다.
의사도 간호사처럼 공중보건의나 코이카 군대체복무 등의 인력을 이곳에 3년씩 파견해주는 등의 지원이 생기면 좋겠다.”
-앞으로의 비전과 사명은 무엇인가.
“천사병원은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사명과 비전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 소중한 달란트를 받았는데, 게으르다고 책망받지 않도록 열심히 사명을 다하는 것이 비전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때까지 천사병원과 함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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