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서울대 트루스포럼(대표 김은구, 이하 트루스포럼)이 15일 ‘백선엽 장군의 서거에 삼가 조의를 표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학내에 게시했다.
트루스포럼은 “백선엽 장군은 해방 직후 대한민국이 위태로운 시절에 군내 좌경 인사를 척결하는 숙군작업의 주역이었다”며 “6.25 전쟁에서는 가장 치열한 전투로 알려진 '다부동(경북 칠곡) 전투'에서 한국군 병력이 후퇴하고 무단이탈이 심해지자 ‘내가 앞장설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전투를 이끌었다. 국군이 38선을 넘었을 때에는 제일 먼저 평양에 입성했고, 1951년엔 '백야전사령부'를 만들어 지리산 빨치산 소탕을 주도했다”고 했다.
이어 “백선엽 장군의 간도특설대 활동을 문제 삼는 이들이 있다. 백 장군이 독립군을 잡아 죽였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백 장군이 간도특설대로 활동한 당시, 해당 지역에서 활동한 항일 독립군이 과연 누구인지 명확히 밝히길 바란다”며 “만주·간도 지역에는 공산주의자들이 독립운동을 빙자해 보급투쟁이라는 명분으로 같은 민족을 상대로 약탈과 방화, 살인을 일삼는 만행이 자행되었다. 이를 ‘항일무장투쟁’, ‘독립활동’이라는 숭고한 이름으로 미화하는 것이 타당한가?”라고 했다.
또 “김구 선생과 함께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도인권 목사는 만주지역에서 공비들에게 살해당할 위험에 처했다가 역설적으로 일본군 토벌대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 이야기를 남겼다”는 <감리회보 1933년 7월 10일자> 기록을 전하며 “이것이 당시 만주·간도 지역의 현실이다. 항일 무장투쟁이라는 공산주의자들의 고상한 선전 뒤에는 민간인에 대한 약탈과 학살이 함께 했다”고 했다.
트루스포럼은 “또한, 백선엽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근무한 43년 이후, 만주·간도 지역에서 독립군의 공식적인 활동은 포착되지 않는다. 독립군은 1921년, 소련공산당에 의해 자행된 자유시참변으로 와해됐다”며 “북로군정서를 이끈 김좌진 장군은 30년 만주 해주에서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당했고, 신흥무관학교 출신들로 구성된 서로군정서는 대한통의부에 편입된 뒤 1927년까지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어 “양세봉의 조선혁명군정부는 34년경 와해된 것으로 보고있다. 38년 결성된 김원봉의 조선의용대는 지금의 우한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42년 여기서 갈라져 나온 최창익의 조선의용군도 만주와는 멀리 떨어진 화북지역의 타이항산을 기점으로 활동했다”며 “36년 중국공산당에 의해 만주에 구축된 동북항일연군은 관동군의 대대적인 공세로 42년 소멸했으며, 김일성을 포함한 잔존 세력은 소련으로 도피한 뒤 북한 정권의 핵심이 되었다”고 전했다.
특히 “백 장군의 빨치산 토벌에 관해 민간인 학살을 운운하는 것도 다분히 악의적인 선동이다. 민간인의 무고한 죽음은 언제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사후적으로나마 진실을 규명하고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며 유가족을 위로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며 “하지만 이에 더 나아가 피·아가 제대로 식별되지 않는 준전시상황에서 생명을 걸고 교전단체를 진압한 군사활동을 악의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오히려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일각의 악의적인 비난과는 달리, 토벌작전 당시 백선엽 장군은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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