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교사는 “여호와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고 한다. 왜 하나님을 물로 표현하지 않고 불로 표현했을까? 물과 불의 차이는 무엇일까? 물은 담는 그릇으로 인해서 물의 형태가 정해진다. 네모에 담으면 물의 형태는 네모, 세모에 담으면 물의 형태는 세모가 된다. 물은 언제나 그릇 이상을 넘지 못하고 그릇 안의 그 형태를 존중한다. 그런데 불은 담는 그릇의 형태를 불이 좌우해 버린다. 불을 담는 그릇이 아무리 네모를 주장해도 불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고 소멸해버리면 그만이다. 하나님께 그릇인 내가 ‘내 인생은 네모입니다. 네모 이상을 가기 싫습니다’라고 해도 하나님이 담기시면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기에 그릇은 소멸해 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를 축복하시고 사랑해주시고 맞춰주시는 하나님은 환영한다. 세상이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기준과 잣대로,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빛으로 비춰주시기에 우리랑 안 맞는다. 우리는 하나님께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교회 가지 않습니다. 헌금은 예산대로 하겠습니다. 성경은 하루 한 장, 기도는 하루 10분, 몇 살까지는 무엇을 하고 난 뒤 여유가 되면 선교하겠습니다’ 하는 내 인생의 틀이 있다. 주님께서 내 인생에 담기려고 하는 그때부터 마찰이 시작된다. 주님이 우리 삶에 오셔서 제일 먼저 말씀하시는 건 ‘회개하라, 내려놔라, 헤어져라, 버려라, 자기 자신을 부인해라’이다. 그런 요구를 하는 분에게 어떻게 기쁨과 즐거움과 감격으로 환영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어 “신앙생활에서 많은 경우 내가 만들어내고 내가 원하는 예수님의 상과 교제한다. C.S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태를 상징하는 사자를 ‘길들여지지 않는 사자’라고 소개한다. 우리는 길들여진 사자, 길들여진 예수를 원하지만 예수님이 내 삶에 오실 때는 길들여지지 않은 모습으로 오신다. ‘그거 죄야 내려놔, 그거 버려, 네 삶을 바꿔라 회개하라.’ 그때부터 불편해 하고 내가 원하는 예수의 틀에 안 맞으면 거절한다. 내가 원하는 예수를 뛰어넘어서 예수님이 예수님 되심을 경험하면 그때부터 인생의 변화가 있다”며 “예수를 영접한다는 건 내려놓는다는 것, 명령을 받아들인다는 것, 회개한다는 것, 이별한다는 것으로 내 관계를 포기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제 결혼에 관해 물어보는 분들이 있다. 오래 전 ‘하나님 이런 자매면 좋은 짝이 될 것 같습니다’ 하는 자매를 놓고 기도한 적이 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 이게 주님 뜻이죠’ 하고 기도하는 건 예의상 점검하고 허락받으려는 것이지 내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때는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해주셔도 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도 나에게 맞춰서 해석한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네 짝 아니야 너하고 안 맞아’라고 음성을 주셨던 것 같다. 영어로 ‘hindsight is 20/20’이란 표현이 있다. 인생의 앞을 바라보는 시선은 희미하지만 뒤를 돌아보는 시력은 2.0 2.0이라는 미국 속담이다. 지금 돌아보니까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당시는 마음이 가니까 지금까지의 만남을 하나님 뜻으로 해석해버렸다. 돌아보면 그때 ‘하나님 듣기 싫어요’라고 했었다. 제가 듣기 싫어하니까 말씀하지 않으셨다”며 ”우리에게 가장 큰 심판 중 하나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에 소름 끼치는 경험을 했다. 설교를 준비하려고 말씀을 펼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리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다. 인격적인 관계는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All or Nothing’ 그 사람의 전체를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이다. 주님과 우리가 인격적인 교제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축복한다, 사랑한다, 귀하게 세우리라’만 받아들이고 내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가 설교할 때는 주님 말씀을 듣기 원하지만 교제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듣기 싫어하는 것은 인격적인 교제가 아니다. 설교를 준비하려고 앉았는데 하나님 음성이 들리지 않고, 말씀을 읽어도 심장이 뛰지 않고, 눈물은 메말라버리고 어두컴컴해서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 어떡하면 좋으냐고, 회복시켜 달라고 한참을 기도했다. 그 기도의 과정을 통해서 내 짝이 아니구나를 깨닫고 한참 회개기도를 했다. ‘하나님 이제 내려놓을게요, 다 정리할게요, 주님의 길 정통으로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고백하면서 왜 안되는지를 질문했다. 그때 주님은 ‘너 그 그림 기억나니?’라는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답해주셨다”고 했다.
이어 “제가 매일 그려왔던 그림이 있다. 목사안수를 받고 선교사로 파송 받아 간 중국에서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가난하고 외롭고 배고팠다. 그동안 가장 덥고 가장 추운 곳을 오가며 선교하다가 어느 날 한국에서 집회를 허락해주셔서 공개사역을 하게 되었다. 제 안에 정리된 것은 공개사역은 유효기간, 만료일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부르는 곳도 줄고 교회도 성도도 줄어들 거로 생각한다. 지금 말씀 전하는 것도 일할 수 있는 낮이기에 하는 것이지 반드시 일할 수 없는 밤이 온다고 생각한다. 5년 후든 10년 후든 더는 일하지 못하는 그 날이 오면 다 정리하고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가서 한 사람의 선교사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마지막 날까지 주님을 섬길 것이다. 그때는 양복 입을 일 없고, 선교사의 모습으로 배고프고 가난하고 춥고 끊임없이 머리 둘 곳 없이 이동하다가 주님을 맞이하는 것이 제 소원이고 매일 제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그림이다. 주님께서 그 그림이 기억나는지를 물으셨고, 기억난다는 저에게 ‘그 자매는 그 그림에 너와 함께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야’라는 이해되는 한마디를 하셨다. 선교지에서 함께 배고프고 목마르게 달려갈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날로 정리했다. 그때 내가 주님을 여기까지 사랑하시는구나 확신이 들어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존경하는 사모님이 계신데, 그분은 365일 추운 겨울에도 전도하시고 목사님과 밤새 철야를 하신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35년 동안 이 불이 꺼지지 않는다며 35년간 외치고, 전도지 뿌리는 것, 실제로 열매 맺는 것을 한 번도 그친 적이 없는 분이다. 결혼생활 동안 무엇이 먹고 싶다, 가고 싶다, 사고 싶다, 선물해달라 말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주님을 증거하는 전도자로서 사람들 앞에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깔끔함을 가지고 사역을 하시는 분이다. 가정사역에서도 제가 그리는 사모 상은 ‘내 남편은 내 남편이기 전에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니 먼저 주님을 섬기세요. 나는 뒤에서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하면 저더러 결혼 못 한다고 하는 분도 있다. 저는 결혼 안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제가 처음 부르심 받을 때 행복이 기준이었다면 이미 결혼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사역자는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 영광이 목적이다. 하나님 영광에 조금이나마 빗나가는 결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게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만 하지 말고, 영접한다고 기도하만 하지 말고, 신앙생활 한다고 영생을 얻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죄의 자리에서 떠나가는 것, 죄를 짓게 하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 부정한 그 자리에서 나오는 것, 매번 죄를 지을 줄 알면서 그 자리를 향해서 나가는 발걸음을 중단하는 것이다. 캠프에서 붕붕 안 뛰어도 되고, 다윗과 같이 춤 안 춰도 괜찮다. 나를 부정하게 하는 여자친구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 나를 더럽게 하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 내 정신을 혼미케 하는 게임중독 현장에서 피 터지게 싸워보는 게 영접하는 것“이라며 ”그것을 하기 전에는 예수를 영접했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당시 예수 영접한다는 것은 생명을 내려놓겠다는 고백이었다. 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는 부르심이다. 와서 죽고 참된 주님의 부르심 앞에 기쁨과 감격으로 환영한다고 하는 게 영접하는 기도”라며 “하나님 앞에서 정말 예수를 영접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기 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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