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목사(수영로교회)가 13일 ‘축제가 있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교회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이 목사는 “현대인들은 지쳐 있고 노래를 부르지만 애조를 띠고 있다. 즐거움을 위한 소품들은 많지만 금방 식상해진다. 소유했지만 존재는 불안하다. 미래를 위한 계획은 거창하지만 보장할 수 없다”며 “사람들은 우울한 세상에서 절망을 체험하며 살아간다. 그리스도는 탄식과 절망으로 채워진 세상에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2000년 전 주님의 탄생은 인류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다. 예수를 믿을 때 잃어버린 기쁨이 복원된다”고 했다.
이어 “주님은 기쁨으로 충만하신 분이셨다. 제자들에게 주신 선물은 기쁨이었다”며 “신앙은 기쁨이 넘치는 삶으로 초대받는다. 경건을 침울한 모습으로 연상한다면 오해다. 굳어지고 엄격해지고 어두워지고 있다면 무엇인가 꼬여있다고 보아야 한다. 매사에 너무 심각해 대화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결연한 투지는 있지만 자유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즐거움을 구하면 기쁨을 잃어버리기 쉽다”며 “세속적 즐거움은 영적 즐거움을 방해한다. 세상적인 안정이나 즐거움을 구할수록 불안해진다. 무엇인가로 채우려고 할수록 기쁨으로부터 멀어진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은 곧 ‘기쁨의 상실’로 이어졌다. 대신 엉뚱한 것으로 즐거움을 얻고자 몸부림을 치게 되었다. 말초적인 즐거움을 얻고자 몸부림을 치는 삶 자체가 일종의 징벌이다”고 했다.
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스스로 즐거움과 만족을 찾지만 결국 실패한다”며 “더 큰 절망과 슬픔에 사로잡힌다.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세상에는 기쁨의 훼방꾼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기뻐해야 하는 원천은 상황이나 조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주어진다”고 부연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며 “예수 믿는 사람은 기쁨의 축제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즐거움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누린다. 영성으로 깊어져 간다는 것은 우울과 절망이 서서히 물러나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풍성해져 가는 삶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님과 친밀함을 유지하면 주님의 기쁨이 나를 감싸게 된다”며 “예수 믿는 삶은 환희의 축제다. 예수의 첫 이적이 가나안의 혼인 잔칫집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기쁨이 소진되어 바닥을 긁고 있던 당시 유대교의 상황에서 그리스도로 인한 삶의 향연을 대조시켜준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 되게 하신 일은 기쁨의 환원이다.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돌아왔을 때 잔치가 벌어진다. 아버지는 온 동네 사람을 자신의 기쁨 안으로 불러들인다. 아버지는 춤꾼이었다. 빼앗겼던 법궤의 귀환에 춤추었던 사람은 다윗이다. 감정을 표출하는 법을 알았다. 그는 즐거워할 줄 아는 풍류 시인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규격화하고 정형화시키는 사람들은 즐거움이 무엇인지 모른다”며 “제도화된 종교생활은 삶이 어둡다. 축제의 삶과 거리가 멀다.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 신앙이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즐거움 안에 세상이 알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신자들이 모이면 거대한 기쁨의 파도가 일렁여야 한다. 즐거움에 파장이 높아지고 행복의 공명이 일어나야 정상이다. 구원의 삶은 ‘기쁨의 회복’이다”고 했다.
아울러 “축제가 벌어지는 곳에는 승리의 노래가 있다”며 “세상의 절망이 침투해 들어올 수 없는 곳은 그리스도의 기쁨을 소유한 사람의 마음이다. 복음은 가녀리고 옅은 행복이 아니다. 깊은 만족이고 풍성한 기쁨이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다. 막연한 미래가 아닌 지금 이곳에서 천국을 누리는 삶이다”고 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