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컨티넨탈싱어즈(이하 컨티넨털) 대표 이취임식이 오는 31일 저녁 6시 지하철 수내역 인근 핸딘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신임 대표로 김명식 교수(한국국제예술원 교회음악과)가 취임한다. 컨티넨탈은 천관웅, 박지영, 남궁송옥, 심종호 등 ‘CCM 스타들’을 대거 배출했던 국내 대표적 찬양사역 단체다. 이에 27일 김명식 교수를 만나 신임 대표로 취임하게 되는 소감과 향후 계획 등을 들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 먼저 취임 소감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기대됩니다. 하나님이 이 팀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고 이 팀만의 고유한 영역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이미 회장을 맡았던 경험도 있어서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누가 다시 하라고 한 것도, 제가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죠. 그렇다면 기도하면서 감당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교수님이 컨티넨탈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모태신앙인도 아니고 음악을 전공하지도 않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인생을 바쳐야 할 사명이 무엇일까, 어떤 길로 나를 이끄실까’에 대해 늘 하나님께 물었죠. 그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찬양사역에 대한 사명감을 주셨습니다. 그러던 중 컨티넨탈을 만났고,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 현재 활동하는 사역자들 중에서 컨티넨탈 출신은 누가 있나요?
“천관웅 목사님은 제가 오디션을 봤던 분이예요. 또 마커스 예배를 인도하는 심종호 형제도 막내로 들어왔었죠. ‘말씀하시면’으로 유명한 김영범 씨도 있고, 여자 보컬 중에선 남궁송옥, 그리고 제 아내인 송미애 씨도 있어요. 다윗의 장막 ‘나의 부르심’을 불렀던 윤미선 씨, ‘그리스도의 계절’ 박지영 씨도 빼놓을 수 없네요. 연주하는 분들 중에선 김진 교수, 이삼열 키보디스트, 국악인으로는 서하얀 씨도 있습니다. 이 밖에 온누리교회 예배를 인도했던 김창석 씨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정말 많습니다.”
- 앞으로 컨티넨탈을 어떻게 이끌어갈 생각이신가요?
“우리만의 공간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컨티넨탈만의 고유한 사명을 감당하려면 공간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거든요. 그 공간에서 정서가 탄생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다음 단계의 일들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아직 임시로 허락된 장소를 사용하고 있지만 언젠가 우리만의 센터를 꼭 마련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한국교회음악박물관 같은 것도 만들고 싶어요. CD 시대는 이제 거의 지나갔습니다. 지금 시대 아이들은 CD를 만져본 적도 없을 걸요. 그러니 그런 CD와 같은 것들을 모아서 정리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기독교 음악의 역사를 알 수 있고, 또 이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저와 컨티넨탈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이름을 ‘컨티넨탈미니스트리’로 바꾸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앞으로 영컨티넨탈, 컨티넨탈콰이어, 시니어, 앙코르, 아카데미 이런 브랜치들을 미니스트리 아래 둘 생각입니다.”
- 새 앨범은 언제 나오나요?
“아직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고, USB앨범 형식으로 만들어볼 계획입니다.”
- 컨티넨탈과 같은 찬양 중창단의 역사에 대해 간력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원주 노래사절단이 거의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고, 70년대부터 미션스쿨 중심으로 중창단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정신여고노래선교단, 대전동방노래선교단, 영광노래선교단, 영광보배찬양단 등이 있었죠. 70년대 후반부터는 대구의 굿라이프, CCC 위주로 팀들이 생겼습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최미 사모님, ‘날 구원하신 주 감사’ ‘가서 제자 삼으라’ 등의 곡들을 발표하신 최명자 사모님도 있고요. 80년대부터는 김석균 목사, 전용대 목사, 다윗과 요나단, 좋은 씨앗이 활동했고, 주찬양선교단이 86년에 음반을 발표하며 ‘그이름’이라는 곡으로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이때 예수전도단, 옹기장이, 컨티넨탈이 나왔습니다. 87년에는 두란노 ‘경배와 찬양’이 대한민국을 휩쓸기도 했었죠. 교회마다 두란노와 주찬양 악보집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후 어노인팅, 디사이플스, 마커스 등의 워십팀들이 차례로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금처럼 회중이 함께 찬양하면서 예배드리는 분위기는 예수전도단이 첫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찬양의 비중이 큰 예배모임을 드리고 있었죠. 이후 발표한 그들의 화요모임, 캠퍼스워십 앨범은 그들의 긴 시간의 예배의 열매라 볼 수 있을 것같아요.”
- 국내 CCM이 발전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누군가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서포트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교회들이 그들의 사역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일에 관심과 재정을 쏟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에 컨티넨털이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 보고 싶습니다. ”
- 찬양사역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역할이 있나요?
“찬양사역자는 내면의 정체성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저 음악이 좋아서 하는 아티스트, 목회자, 예배인도자, 그리고 선교사와 같은 순회음악 전도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순회음악 전도자에 가슴이 뜁니다. 하지만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습니다. 저마다 다 자기 색깔이 있기 때문이죠. 역할이 서로 다른 겁니다. 가령 아티스트는 예배나 부흥회를 인도하기는 어려워도 버스킹은 더 잘 할 수 있죠.”
- 컨티넨탈싱어즈에서 활동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어느 교도소에 갔을 때 약 200명 앞에서 집회를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저 뒤에서 문신한 사람들이 앞으로 오더니 맨 앞줄에 앉은 어느 분에게 90도 인사를 하고 가는 거에요. 그런데 집회 중간 쯤, 그렇게 인사를 받았던 분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것을 본 제가 말했어요. ‘여러분들 앞에서 말하기가 어려웠는데, 앞에 앉은 분이 웃는 모습을 보니 어린아이 같은 미소가 보이더라. 언젠가 저분도 어릴 때 부모 앞에서 지금처럼 웃었을 것 같다. 우리가 그 어린 시절의 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고 말이죠. 그리고 약 한 달 정도 지나서 편지를 한통 받았습니다. 미소를 보이셨던 바로 그 분이 보낸 거였어요. 그 분이 ‘동생들이 와서 인사하고 분위기를 흐려서 미안하다. 자기도 열심히 잘 살고 싶다. 기도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정말 뭉클했습니다. 컨티넨탈이 앞으로 이런 분들이 계신 곳을 더 많이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작고 어려운 교회, 교도소, 보육원, 아픈 사람들이 있는 시설… 그런 곳에서 많은 분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도록 교회들이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끝으로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컨티넨탈은 앞으로도 온 땅에 예수님을 전하는 사명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찬양을 만들어 낮은 곳으로 찾아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다음세대를 키우고 선교지를 도우며 교회와 동역할 것입니다. 시대가 바뀐 만큼 사역에도 변화를 주어야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언제나 변함 없기에 그것을 굳게 붙들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기사를 보고 컨티넨탈의 이 비전에 동참하고 싶다면, 주저 말고 연락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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