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故 옥한흠 목사의 생전 주요 설교를 요약해 [다시 읽는 명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화평을 사랑하시며, 평화의 왕이시다. 어떤 신학자는 창세기 1장 26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면서 우리의 형상에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 왜 우리라고 하셨을까. 이 신학자는 하나님은 본래 홀로 계시지 못하고 본성적으로 더불어 존재하시는 신이시다. 유아독존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서 아름다운 교재를 나누길 기뻐하시는 인격적인 존재라고 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하나님의 이미지를 문 밖에 서서 집 나간 자식을 돌아오기를 기다시는 아버지로 묘사했다. 우리 하나님은 많은 자식들로부터 사랑 받으시고, 자기도 많은 자식과 거느리고 사랑하면서 더불어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평화를 사랑하신다. 사람 만들 때에도 나하고 닮은 사람을 만들고자 했고, 그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 하나님과 똑같이 더불어 교재하고 사랑하면서 사는 존재이다. 싸우고 다투며, 미워하며, 원수 맺고, 등 돌리고,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만들었던 본래의 인간의 실존이 아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하나님과 같은 모습으로 인간을 만들려고 하셨다.
반면에 평화를 깨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원수지게 만들고, 서로 상처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많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과 닮은 부분이 없다. 그럼으로 사탄의 자식인 것이다. 죄를 가지고 우리 조상을 유혹하여 하나님과 원수지게 만든 것이 사탄이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구백 년이 넘도록 갈등하게 만든 것이 사탄이다. 그들 사이에 낳은 자식 가인과 아벨에게도 사탄은 충돌 질을 해서 형인 가인이 아우 아벨을 돌로 쳐 죽이는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다.
지금도 사탄은 마찬가지이다. 우리 주변을 보면 마음을 닫고 서로가 원수지간이 많다. 가까운 사이가 더 한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이전의 비해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틀림없지만, 점점 마귀를 닮아 이기주의자가 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운 모습이다.
미국의 대법관 워런 버그라는 분이 쓴 글 중에서 “왜 사람들은 판사들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소송을 많이 하는지…” 탄식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그 원인을 찾으려고 했고, 가정과 교회가 기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재 구실을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는 웬만한 이해관계가 얽혀도 서로가 양보하고 용서하면서 풀어 나가려고 했고, 할 수만 있으면 자기들끼리 해결하려고 교회 안에서 기도하면서 해결하기에 법정까지 가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가 이와 같은 도덕적인 힘을 가지고 사람들의 심성을 떠받쳐주지 못하니, 결국 문제가 일어났을 때 성도들이 이겨내지 못하고, 법원으로 끌고 가거나 소송을 건다. 미국 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그렇다. 사람들이 점점 사탄의 아들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될 수 있을지 오늘 이 시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는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십자가의 복음은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다. 마치 십자가의 형틀을 보듯이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화목하게 된다. 그리고 수평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사랑으로 함께 이어진다. 이것이 십자가이다. 그럼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면 그 진리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과 원수 된 자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고,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된다. 이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비로소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6~17절을 인용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과 십자가의 복음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원수의 담을 헐고, 멀고 가까이에 있는 자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화목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럼으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예수 믿으라고 사람들을 붙들고 호소해야 한다. 예수 믿고 하나님 앞에 죄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원수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그럼으로 복음을 전할 때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고, 우리가 복음을 담대히 전할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 아들을 닮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젊은이들은 주머니에 전도지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공허한 젊은이들에게는 예수 밖에 없다. 예수 믿고 천국을 맛보고, 아름다운 관계를 회복하신 분들이 많다. 하나님을 믿으면 가정에 평화가 온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원수도 사랑하게 된다. 그럼으로 복음을 전하면,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서로 용서해야 한다. 한번 금이 간 사이는 용서하지 않으면 회복이 어렵다. 어떠한 이유로 인해 마음에 갈등이 생기고 갈라지게 된다면 피차 용서해야 한다. 물론 잘못한 쪽에서 용서를 구해야 되지만 보통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이 없을 때가 많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먼저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고 화목하기를 힘써야 그럴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용서를 많은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 너무나 많은 용서를 받았기에 우리는 누구보다도 더 많은 용서를 해야 한다. 용서는 망각의 행동이 아니다. 예수님이 나를 용서하셨기에 나도 용서해보자는 모방의 행위이며, 내가 용서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자발적으로 옮기는 결단이다.
용서에는 희생이 따른다. 베드로 예수님을 찾아와서 형제가 잘못 했을 때 일곱 번만 용서하면 되겠는지 물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에 일곱 번, 이른 번도 용서해주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비유를 통해 용서란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을 말한다. 용서는 손해 보는 것으로 내가 받을 것을 못 받는 것이다. 내게 있는 좋은 것을 어떤 면에서 날리는 것이다. 한 푼도 손해 보지 않고, 한마디에 말도 나에게 불쾌한 것은 듣지 않겠다고 한다면 아무도 용서하지 못하고 용서 받지도 못한다. 내가 희생을 감수 할 때, 용서가 가능하다.
또 용서로서 끝나면 안 된다. 용서는 담을 허무는 것과 같다. 담과 장벽이 무너지면 그 잔해를 치워야 한다. 우리가 용서를 했지만, 여전히 마음의 앙금과 상한 감정이 남아있다. 그래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주님은 피차 용서한 다음에 그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하신다. 용서로 끝내지 말고, 더 가까이 교재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후속조치를 할 때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화평을 깨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 에베소서 4장 3절을 인용해 좋은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인간관계는 유리그릇 같아서 조금만 잘못하면 깨지기 쉽다. 한 몸이라 부르는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우정을 쌓는데 수십 년이 걸리지만, 깨지기는 1분이면 족하다는 말이 있다. 서로 잘해 줄려다가 원수가 된 자들이 많다. 인간관계가 얼마나 예민한지 모른다. 그럼으로 정성을 다해 깨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 없이는 화평하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제사 드리는 것 보다 형제와 화해하고 용서받고 돌아와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상한 감정을 그냥 내버려두면 나중에 악화될 때 어떤 피해와 고통을 받을지 모르기에 사전에 막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깨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깨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것은 더 보람된 일이다. 그럼으로 인간관계를 함부로 깰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정성을 다해 서로가 노력해야 한다.
아브라함에게는 조카 롯이 있었다. 재산이 점차 늘어나니 초장이 모자라 밑에 목자들이 자꾸 싸운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 싸우지 않도록 갈라설 것을 제의한다. 롯은 잘 됐다고 생각하고 좋은 땅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좋은 조건을 다 포기하고 아브라함은 간다. 왜 그렇게 했는가. 아브라함에게는 평화가 재산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한 것이 돈을 모으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을 좋아하셨다. 그리고 더 좋은 것을 약속하신다.
우리는 절대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 아닌 마귀의 자식같이 돈 하면 인정사정이 없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축복하실 수 있겠는가. 자신보다 마귀를 더 닮은 자에게 어떻게 축복을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가.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자. 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자. 그러기 위해 복음을 전하고, 서로 용서하며, 힘써 평화를 지키자.
가정을 돌아보라. 오늘 당장 가서 두 사이에 담을 허물어야 될 것이 없는지 돌아보라. 주변을 구석구석 돌아보라. 마음을 열지 못하는 형제자매는 없는지 보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신다. 우리 모두 마음을 열고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한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고, 서로가 손잡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축복이 우리에게 있길 바란다.
이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 응답을 주시며, 책임져 주시며, 사랑해 주신다. 남북이 반세기가 넘도록 갈라져 있는 이 땅, 동서가 지역감정으로 깊은 골이 있어 씨름하는 이 불행한 나라에 예수 믿는 우리가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면 이 땅에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다운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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