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연 변호사가 지난달 28일 ‘또 다른 죽음의 바이러스, 디지털 성범죄를 극복하려면’이라는 제목으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 기고했다.
우 변호사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 사회에 두려움과 혼란이 가득했던 지난 3월, 전혀 다른 종류의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며 “바로 n번방·박사방 사건이라 불리는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이라고 했다.
이어 “n번방·박사방 사건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개인 신상정보를 이용하여 협박하여 각종 성 착취 사진 및 영상을 촬영하도록 하고, 그것을 해외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대대적으로 판매·배포·공유한 디지털 성범죄(또는, 사이버 성폭력, 인터넷 성범죄) 사건”이라며 “n번방은 2018년 하반기부터, 박사방은 2019년 7월부터 운영되었고, n번방이라는 명칭은 1번부터 8번까지(이후 n개로 확산) 각각 다른 이름의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서 범죄가 이루어진 것에서, 박사방은 ‘박사’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인물이 운영한 것에서 기인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피해자들을 유인하고 협박하는 과정에서의 비열함, 피해자들에게 강요한 성 착취 및 학대 내용의 잔인함과 폭력성, 이를 통해 획득한 성 착취물을 유포하는 과정에서의 치밀함과 영리 취득 등, 반인륜적인 범죄 수법과 그 형태를 볼 때 죄질이 매우 악하고, 특히 피해자가 미성년 아동과 청소년에게까지 이른다는 점에서 피해 정도가 극심하다. 또한, 익명성과 강한 전파성을 지닌 디지털, 인터넷, 사이버 공간을 매개로 하므로, 광범위한 범죄 가담자 양산, 성 착취물의 기하급수적인 복제와 유포, 그에 따른 2차, 3차 추가 피해 발생 및 확산 등, 사실상 피해 회복이 불가능한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아울러 “범죄가 자행된 비밀 대화방(성 노예방, 지인 능욕방, 연예인 능욕방 등)의 내용과 운영 방침(대화방 접속 및 성 착취물 공유의 대가로 금전 지급, 성희롱 및 모욕적 발언, 추가적인 성 착취물 요구 등)을 보면, 26만 명에 이르는 성 착취 대화방 참가자들이 공범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점은 더 큰 충격을 주었다”며 “바로 내 옆의 누군가가 이런 끔찍한 범죄의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염려와 불안이 생겼고, 나와 내 가족, 지인들도 이러한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었거나 될 수 있다는 걱정을 떨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우 변호사는 “이번 n번방·박사방 사태는 우리나라 안에서 국민이 다른 국민을 성노예로 전락시킨 충격적인 사건이다”며 “이것은 결코 단순한 음란물 시청이나 유통과 동일시 할 수 없는 문제이다. 여성을 폭력과 협박으로 저항할 수 없게 하여 자신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노예로 삼고자 한 극악무도한 범죄”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n번방·박사방은 어느 날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며 “왜곡된 성 인식과 성 문화가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 있었고, 법망을 피한 성매매와 성범죄가 만연해 있으며, 텔레그램 대화방 이전에도 수년 전부터 동일한 범죄가 소라넷을 통해 자행됐다”고 했다.
이어 “불완전한 수사와 경미한 처벌로 인해 이런 범죄는 플랫폼만 이동해 가며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성 노예로 전락하는 피해자들이 계속 생겨났고, 성 착취에 가담한 가해자들 역시 급속히 늘어갔다”고 덧붙였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듯이, 성범죄를 양산하고 부추기는 현실 공간과 사이버 공간의 플랫폼, 그리고 성 착취 영상물에 대해서도, 시민의식을 발휘하여 고발하고, 접근을 막고, 격리해야 한다”고 했다.
또 “정부와 지자체가 시민의 안전을 위해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구하듯이, 입법부와 행정부는 강도 높은 규제와 감시를 통해 성범죄로부터 공동체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며, 질병관리본부가 코로나 19의 감염 경로 추적을 위해 역학 조사를 하듯이, 수사 기관은 구조적·조직적·집단적 성범죄의 실태를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하듯이, 법원은 성범죄 가해자를 그 범죄의 심각성에 상응하도록 엄격하게 처벌하고, 회복적 정의를 실현하고, 범죄를 근절해야 한다”며 “건강한 시민의식을 통해 공동체 내에 건전하고 올바른 성 인식과 성 문화가 자리 잡게 될 때, 누구도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억압하고 노예화하지 않게 되며, 그 죽음의 바이러스는 극복되고야 말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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