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들으며 기사읽기 : https://qrco.de/bbTDYu
'아 하나님의 은혜로'는 다니엘 휘틀(1840-1901) 목사가 작사한 가사에, 제임스 맥그라나한(1840-1907) 목사가 곡을 붙여 생키가 편집 발행한 복음 찬송가 ‘Gospel Hymns, No. 4, 1883’에 처음 발표한 것이다.
휘틀은 남북전쟁에 참전하여 소령으로 제대하였는데, 그는 부상으로 오른팔을 잃고 포로수용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심심하여 읽을거리를 찾던 그의 눈에 신약성경이 보였고, 읽어보니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많았지만, 그 순간 그리스도를 영접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밤, 그가 자고 있는데 간수가 와서 한 병사가 죽어가며 자기를 위해 기도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휘틀은 자기는 그럴 사람이 못 된다고 거절하였지만, “당신은 크리스천이 분명하오. 나는 당신이 열심히 성경 읽는 것을 보았소”라고 간수는 다그쳤다. 하는 수 없이 휘틀은 죽어 가는 병사 방으로 갔다.
그의 회고를 보면, “나는 병사의 손을 잡고 무릎을 꿇었다. 짤막한 말로, 먼저 내 죄를 고백하고 용서해달라고 그리스도께 기도하였다. 나는 즉시 주께서 내 죄를 용서해주셨음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소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다. 두려움에 울부짖던 소년은, 내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게 해 주소서, 하고 기도하자 순간 조용해지더니 내 손을 꽉 잡았다. 내가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자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의 눈물 어린 얼굴에는 평안이 가득하였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지만 굳게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리스도를 알려주시기 위해 나를 강제로 이끄신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을 선포하신 것이다. 나는 하늘나라에서 그 소년을 만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난 후 휘틀은 시카고에 있는 Elgin Watch Company의 경리로 취직하였다. 하지만 10년이 채 못 되어 일을 걷어치우고, 그는 복음전도단에 가입하였다. 거기서 그는 필립 블리스와 이 찬송가의 작곡가인 제임스 맥그라나한 등 당대의 유명한 복음 찬송가 작가들을 만나 평생을 함께 하였고, 그의 딸 메이 무디도 그의 가사에 곡을 붙였다.
복음전도자로 헌신하게 된 동기에 대해 휘틀은 이렇게 말하였다. “죽음 같은 적막이 흐르는 둥근 천장이 있는 방에서 나는 하나님께 ‘뜻대로 써 주소서’ 하고 나의 모든 삶을 맡겼다” 무디 전도집회가 끝난 깊은 밤중에 집회장소에 홀로 남아 기도하던 휘틀은, 비록 팔 하나가 없는 불구의 몸이지만, 온 생애를 하나님께 바쳐 큰 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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