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진 박사
정교진 박사

작년 광복절 100주년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의 통일을 2045년으로 내다보았다. 이 시기가 어떻게 산출된 것일까. 혹시, 중국이 중국몽(中國夢)에서 설정한 ‘두 개의 100년’에서 차용된 것은 아닐까. 중국은 2021년을 샤오캉(小康, 중국식현대화) 사회 실현으로 설정하였는데 이는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00년을 기념하는 시간 기획이다. 또한, 2049년의 다퉁(大同, 현대화 강국)사회 실현은 1949년 신중국 건설, 100년을 기념한 시기 설정이다. 중국은 2078년을 세계 최강국 건설 시기로 제시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통일시간, 3·1운동 정신과 배치

문 대통령의 통일시간인 2045년도 일제에서의 해방(1945) 100년을 기념한 시기 설정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3·1운동 정신을 모토로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헌법에 크게 배치된다. 대한민국 헌법정신이 전혀 담겨있지 않은 개인의 신념적 통일 담론이다. 담론이라기보다 사견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남북분단을 기정사실화 하지 않고 있다. 헌법 제1장 제3조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선언하고 있다. 이것이 3.1운동 정신을 계승한 대표적 흔적이자 기독교 정신과 부합되는 지점이다. 즉, 3·1운동 정신에 기독교 사상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3·1(기미)독립선언문’중에 아래와 같은 내용들이 들어있다.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 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덕의 시대가 온다. 지나간 세기를 통하여 깎고 다듬어 온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새로운 문명의 찬란한 빛을 인류 역사에 던지기 시작한다.”

일제 강점하에 있지만 새로운 날이 곧 올 것으로 염원하고 기대하고 있다. 먼 훗날이 아닌 바로 곧 도래할 날로 선포하고 노래하고 있다. 그러면서, 당시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독려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분연히 일어나는 것이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고,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전진하니 남녀노소 구별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뛰쳐나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룩할 것이다.”

양심과 진리를 기치로 함께 분연히 일어날 것을 독려하고 있으며 해방의 날을 즐거운 부활로 승화시키고 있다. 위에서의 ‘새 하늘과 새 땅’, ‘즐거운 부활’은 성경적 표현으로 기독교 색채가 뚜렷이 나타난다.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한 이가 최남선인데, 그는 천주교인이었다. 33인의 민족대표 중 기독교인이 16명 그 중, 목사가 8명(길선주,이필주,김병조,양전백,신선구,오화영,정춘수,최성모)이었다. 3·1운동 정신에 기독교 사상이 녹아있음을 보여주는 주요한 근거다.

3·1운동 정신에 담겨진 부활사상

그렇다면, 3·1운동 정신에 담겨진 대표적인 기독교 사상은 무엇인가. 바로 부활 사상이다. 기독교의 부활 사상은 이 민족의 해방 및 독립의 필연성을 담보해주었다. 여기에서 제시되는부활의 주체는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성경은 부활의 주체를 둘로 나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요. 또 하나는 예수 안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다. 또한,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동시킨다. “그러나 각각 (부활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고린도전서15:23)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그리스도인의 부활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재림의 믿음이요, 부활 신앙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핵심사상이 민족의 독립과 백성의 자유를 일체화시킨 3·1 운동 정신의 기반이 되었다.

‘종말론적 통일관’을 통일 담론으로

앞서, 제시한 ‘재림의 믿음’, ‘부활의 신앙’을 우리는 흔히 ‘종말론적 신앙관’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에 속한 것으로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지향해야 할 자세이다. 사도바울은 이 종말론적 신앙에 철저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재림의 때를 먼 훗날로 상정하지 않고 곧 도래할 날로 인식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고전15:5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룰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데살로니가전서5:1-2). 한국교회에서 큰 무리를 일으켜왔던 ‘시한부적 종말론’은 반드시 경계해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알고 늘 깨어 경성하는 자세는 그리스도인들의 본분이라 하겠다.

기독교 부활 신앙이 담겨진 3·1운동 정신을 계승한 통일관은 어떠해야 할까. ‘종말론적 통일관’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 담론에는 이미 통일의 필연성이 내포되어 있다. 즉, 한반도의 통일을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먼 훗날이 아닌 곧 도래할 날로 상정하는 것이다. 과거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통일의 날을 바로 그 해로 상정했고 그 해에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큰 책임감을 느끼며 바로 다음 해를 통일의 원년으로 삼았었다.

“지난 1년 동안도 전 민족이 염원하여 마지아니하는 ‘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상 우리에게는 하나의 악몽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악몽에서 깨어나 새로운 희망을 갖고 새해를 맞이한 것입니다. 연연히 새해가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이해 중에는 반드시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룩하겠다고 맹세합니다.”(조만식 선생의 최측근이었던 김병연 선생(월남기독교정치인)의 1957년 글 중에서)

오늘날 우리에게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이러한 정신과 자세가 없어 보인다.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안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동북아 정세, 한반도 상황, 남북관계 추이를 통일의 시계로 받아들이기 일쑤다. 교회 안에서 ‘종말론적 통일관’은 너무나 생소한 용어이지 않은가. 사회적으로도 ‘통일 담론’이 ‘평화 담론’에 밀린지 오래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통일에 대한 헌법적 책임을 지고 있는 문 대통령이 통일의 원년을 2045년으로 설정한 것만 보아도 알만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제1장 제4조)고 명시해 놓았다. 또한, 분명히 대통령의 직무에 대해 제66조 3항에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였다. 헌법적 명령인 ‘통일에 대한 성실한 의무’를 명심했다면 과연 2045년을 통일의 시간으로 설정했을까.

이제 한국교회부터 ‘종말론적 통일관’을 기치로 내세우며 통일 담론으로 이끌어가자. 이것은 매우 성경적이면서도 헌법적 명령이다.

정교진 박사(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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