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감자'라고 말하는 목사가 있다. '반장'이라고도 한다. 왜 감자냐 하면, 한 알의 감자처럼 성도들 속에 파고들어가 함께 일하고, 울고 웃고 싶기 때문이다. 또 왜 반장이냐 하면, 정말로 마을 총회에서 반장으로 뽑혔기 때문이다.
강원도 홍천 두메산골 도심리에서 '도심리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고 있는 홍동완 목사의 이야기다.
소박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그의 목회 이야기가 에세이집 『들풀 위에 깃든 소망』에 엮어져 나왔다.
홍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학부와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호주에서 4년 간 선교 훈련차 머물렀다.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그곳 선교사들은 연합하기는 커녕 서로 비방하며 반목했다. 내 교회만 부흥하면 된다는 개교회주의가 반목을 키웠다. '공동체성'이 살아 있는 교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귀국 후 2002년 도심리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갈릴리선교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교회 없이 해외선교 지원과 중보기도에 힘쓰는 한편으로, 홍 목사의 주요 임무는 마을을 돌보는 일이었다. 군청에서 컨테이너를 얻어다가 물 새는 집에 설치해줬다. 모터펌프가 고장날 것에 대비해 사비로 장비를 사서 출동했다. 보이는 곳에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전도를 한다'는 생각보다 예수님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한다는 생각이었다. 주민들은 처음에 그를 경계했지만, 점차 그를 마을의 일원으로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자신을 위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 목사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급기야 마을 반장으로 선출되기에 이르렀다.
마을에 들어온 지 7년째 되던 해인 2008년 교회를 세우고 첫 예배를 드렸다. 이후 교회는 마을 주민들의 사랑과 신뢰를 한몸에 받는 곳으로 발전해 갔다. 마을 주민 절반이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에는 나머지 절반도 함께 모여 감사예배를 드린다. 성도들은 섬김의 본을 보이는 홍 목사를 따라, 주일이면 주민 집 한곳을 골라 허드렛일을 집중적으로 도와준다.
농촌 목회의 현장에서 그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본다. 밭둑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막걸리 한 병 놓고 한 숨 쉬는 농부들,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여전할 것이라는 절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선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겼던 성직자들에게도 추악한 탐욕을 발견하고 진리에 대한 희망을 걷어 찬 사람들...
그들에게 다가갈 때 "발에 끌리는 치렁치렁한 인위적 권위라는 옷"을 입을 수가 없다. 그저 "한 알의 감자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그들 속에 들어가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울고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그들이 예수님의 위로와 사랑을 받고 다시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러면 사랑하는 주님이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빛 은실로 만든 참 권위의 옷을 입혀 주실 것입니다. 참 권위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책은 농촌 목회의 다소 시골스러우면서도 정겨운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은 서울에서 온 청년들과 밭일 봉사를 마치고 닭을 잡아먹기로 한다. 그런데 그냥 잡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 나와 있는 속죄 제사를 체험해보기로 한다. 작두를 잡은 청년이 성경말씀을 외친 후 닭의 목을 내리치기로 했다. 덩치 큰 청년은 용기가 없어서 '피 흘림.. 죄 사함, 죄 사함...'만 반복한다. " 이윽고, "정말 미안하다!"고 외치더니 작두의 두 날이 서로 갈리는 소리가 나고... "지켜보던 자매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닭의 목을 친 청년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눈물을 훔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책은 도심리교회의 에피소드를 에세이로 이야기한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 속에, 그의 목회철학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성찰이 녹아져 있다. 1부 '하늘'에서는 신성의 거룩함을, 2부 '땅'에서는 인간의 존재 본질을, 3부 '물'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시적 자연을, 4부 '벗'에서는 삶 속의 희로애락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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