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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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브라함은 어느 시대의 인물인가?

아브라함은 어느 시대를 산 인물일까? 한 인물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그가 살았던 시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사람이 살아온 내력과 함께 그가 살았던 시대를 알아야 그의 인물됨과 업적을 제대로 알 수가 있다. 한 시대를 따로 떼어놓고는 그 시대의 인물을 논할 수가 없다.

아브라함은 wn전 2000년경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서 태어나 자란 인물이다. 그러한 연대 산출이 가능한 것은 중요한 사건들에 대하여 성경이 비교적 자세하게 그 시대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시대 추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성경내용에 근거를 두고 있다. (1) 출애굽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이 시작된 것보다 480년 앞선 때였다는 점(왕상 6:1), (2)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머문 기간이 430년이라는 점(출 12:40), (3)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에서 야곱의 애굽 이주까지의 기간이 대략 200년 정도라는 점(창 12:1; 21:5; 25:26; 47:9) 등이다. 최근에 고대 근동지역에서 이루어진 고고학 발굴 성과도 그와 같은 아브라함의 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발굴 결과로 아브라함과 관련된 성경 내용은 당시 그가 살았던 시대적 정황을 정확하게 반영해주는 것임이 밝혀졌다. 아브라함이 지나간 여행 경로나 사회적 관습들, 그가 보여준 종교적 신념과 생활 모습 등은 wn전 2000년대 초 고대 근동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잘 부합되었다.

1. 주전 2000년경 고대근동은 어떤 시대였는가?

아브라함이 살았던 주전 2000년경 고대 근동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최초의 도시문명을 이룩한 고대 수메르시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이 살던 당시는 고대 수메르 제국의 뒤를 이은 '우르 제3왕조'(주전 2112-2004)가 전성기를 뒤로 하고 서서히 몰락하는 때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세력인 '고대 바벨론 왕국'(주전 2004-1595)이 등장하는 과도기이고 하였다. 우르 남무에 의하여 시작된 우르 제3왕조는 '새로운 수메르의 르네상스 시대'라고도 불릴 정도로 수메르 시대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는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이었다.

수메르 사람들이 남부 메소포타미아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주전 3500년까지 소급할 수가 있다. 그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에 관하여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산이 많은 메소포타미아 동북부의 카스피바다 인근 지역에서 온 비 셈족 계통의 사람들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이들은 세계 최초로 남부 메소포타미아에서 도시국가문명을 이룩한 창의성 높은 사람들이었다. 특히 이전에 사용하였던 상형문자를 음절문자인 설형문자로 만들어 사용함으로 커다란 문화적 업적을 이룩하였다.

주전 2900년경에 시작된 수메르 시대는 도시국가 체제를 확립하여 이를 통치의 전형으로 삼았다. 대표적인 도시국가로는 키쉬(Kish), 우룩(Uruk), 우르(Ur) 등을 꼽을 수 있다. 수메르 도시국가는 시의회 제도와 학교제도 등을 도입하여 오늘날의 민주주의 제도와 공교육 제도에 대한 기초를 놓기도 했다. 수메르의 도시국가는 신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신정정치제도였다. 도시에 속한 영토는 모두가 신의 영지였고, 신전은 영주로서의 신이 거주하는 저택이었다. 그러므로 선출직이었던 수메르의 통치자 '루갈'(Lugal)은 도시국가 신의 대리자에 불과하였고 실제 권한은 제사장 '엔시'(Ensi)에게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권한이 점차적으로 정치 지도자 루갈에게로 옮겨갔고, 직무도 선출이 아니라 세습으로 전환되면서 도시 국가 중심의 여러 왕조가 생겼다. 그렇지만 수메르 시대에는 도시국가들이 연합하여 하나의 통일국가를 이루지는 않았다.

주전 2500년경에 이르러 수메르 도시국가들 사이에는 그동안 유지되었던 평화로운 분위기가 깨지고 세력을 다투는 경쟁구도가 발생했다. 도시 국가의 세력이 커지면서 영토를 확장시킬 필요성과 함께 토지의 생산성을 높이는 관개수리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란기를 틈타 아카드의 장군이었던 사르곤은 다른 도시들을 점령하여 주전 2350년 아카드 제국을 세웠다. 그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페르시아 만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을 지배하는 중앙집권제를 확립하였다.

사르곤은 수메르의 서북지역에서 이주해온 셈족 출신이었다. 주전 4000년경부터 수메르 지역으로 점차 유입하였던 이들 셈족 계통 사람들은 2500년경부터 수메르의 북부지역에서 크게 우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카드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고 다만 바벨론 근처라고만 추정하고 있다. 아카드인은 설형문자를 채용하여 보급시키는 등 수메르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180년 동안 계속된 아카드 제국시대에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은 서로 융합하여 수메르 문명을 더욱 발전시켰다. 따라서 아카드 제국의 확장과 더불어 수메르 문명은 먼 지역까지 전파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카드제국의 세력이 급속하게 쇠퇴한 것은 주전 2200년경 자그로스(Zagrod) 산맥 근처에 살던 구티(Guti)족의 침입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후리족(Hurrians)은 동부 티그리스 유역으로 침투하였고, 아모리족(Amorites)도 상부 메소포타미아에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90년 정도 지속된 구티족 통치는 강력한 것이 아니어서 아카드 제국의 하에 있었던 수메르 도시들은 반 독립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에렉의 우투-헤갈은 구티족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리고 그의 신하였던 우르-남무는 우르의 지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얼마 후 우르-남무는 에렉의 지배를 벗어나 옛 수메르 제국의 전 영토를 통치하는 지배자로 부상했다. 그가 우르 제3왕조의 창시자이다. 이렇게 시작된 우르 3왕조의 왕들은 자신들을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들' 혹은 '온 세상의 왕들'이라고 부르면서 이전 수메르시대의 정통성을 강조하였다. 구티족은 아카드의 세력을 몰락시킴으로 수메르 문명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셈이다.

우루남무는 우르 도시의 성벽을 재건하고 궁전과 거대한 계단식 지구랏(ziggurat)을 건설하였다. 그와 그의 후계자들은 건축 활동과 더불어 문학적 활동도 활발히 전개하였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우루남무 법전'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이 법전은 함무라비의 법전보다 300여년이나 앞선 것이다. 비록 우르 제3왕조가 수메르 시대의 번영을 다시 일으켰지만, 그것은 마지막 불꽃에 불과하였다. 우르 제3왕조의 운명과 함께 수메르 문화는 쇠퇴기를 맞아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수메르 언어는 일상 언어가 아닌 비문의 언어나 학문 혹은 법전의 용어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 대신에 아카드어가 일반 대중의 언어로 자리를 잡았다. 약 100여 년간 유지되었던 우르 제3왕조는 지난 1000여 년간 발전하였던 수메르 문명을 이어받아 그 절정기를 이룬 다음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아브라함이 등장한 것이다.

우르 제3왕조의 통치권은, 과거 수메르 도시국가 체제가 그러했듯이, 엄격한 중앙집권체제가 아니고 각 도시의 군주들이 상당한 독립을 누리는 형태였다. 우르 제3왕조의 권력이 약화되자 지방 군주들이 이탈해 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동부의 엘람과 티그리스강 상부의 앗수르, 그리고 유프라테스강 중류의 마리가 새로 독립한 대표적인 도시국가들이다. 우르 제3왕조 말기에 이르러 그러한 이탈 사태는 더욱 급증하여 우르 제3왕조의 마지막 왕인 입비-신(Ibbi-sin)은 우르만을 다스리는 지방 군주에 불과하였다.

우르 제3왕조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시킨 것은 동쪽에 있던 엘람인들과 서쪽에 있던 아모리 인들의 침입이었다. 이들 중 아모리인들은 서북 셈어를 사용하면서 메소포타미아의 서쪽 지역에 거주하던 반 유목민들을 지칭한다. 아카드 언어로 아모리인들을 '아무루'라고 하였는데, 이는 '서쪽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단일 혈통을 지닌 민족이 아니라 서북 셈어 계통의 다양한 방언을 사용하는 여러 민족들의 연합체였다. 이들 중에는 후에 히브리인과 아람인의 조상이 되었던 종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3000년대 말부터 고대 근동의 비옥한 초승달지역으로 유입하여 가나안 땅과 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한때 우르의 속국이었던 마리도 이들 아모리인들이 지배하는 도시국가였다. 이들은 우르 제3왕조의 몰락으로 생긴 공백을 틈타 메소포타미아 전역으로 몰려들었다. 그로 인하여 메소포타미아의 국가들은 차례대로 아모리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고,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아모리인 출신 왕들이 메소포타미아 전체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다. 우르 제3왕조의 뒤를 이어 남부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게 된 고대 바벨론제국도 이들에 의하여 세워졌다. (계속)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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